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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첩보 활동의 본질이라는 게 알고 보면 돈을 주고 필요한 정보를 사는 것입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역시 전 세계에서 엄청난 첩보 활동비를 쓰고 은밀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관건은 적발되면 결코 안 된다는 거죠.”
최근 만난 국가정보원 출신 전직 고위 관계자는 해외에 나가 있는 요원들의 첩보 활동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동맹국인 미국에서 CIA 출신 대북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포섭하는 과정에서 고급 식사와 명품 의류 및 핸드백, 고액의 연구비 등을 제공한 사실이 미 검찰 당국에 들통나 외교적 파장이 상당한 것을 두고 한 얘기다.
외신들은 실정법 위반이 반복될 정도로 금도를 넘어선 국정원의 과도한 첩보 활동에 대해 미국이 강력한 경고장을 날린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외교 전문가들은 국가 정보기관으로서 정교하고 세련된 첩보 활동 방안을 국정원이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첩보 참사의 본질은 따로 있다고 지적한다. 미 검찰의 공소장은 테리 선임연구원이 수년간 국정원으로부터 6000만 원이 넘는 자금을 수수했다고 명시하면서 증거 사진을 첨부했다. 단 한 명을 포섭하는 데 수천만 원의 돈이 쓰였는데 자금 출처가 어떻게 되고 통제를 받는 예산이었는지 국민은 전혀 알지 못한다.
국정원은 공식 예산인 안보비 8500억 원, 예비비(국가안전활동경비) 7800억 원 등 한 해 1조 6300억 원이 넘는 국가 예산을 가져다 쓰고 있으니 그 일부일 것이다.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는 국정원 예산을 사전에 알지도, 통제하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반면 CIA는 무한대로 돈을 쓰지만 미 상·하원 정보위원회가 예산의 쓰임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내부 활동 상황 역시 상당 부분 파악하고 통제까지 가능한 점은 시시하는 바가 크다.
이번에 논란이 된 주미대사관 공사참사관(국정원 3급)은 외교관 신분인 ‘백색 요원’으로서 통제받지 않는 예산으로 CIA 흉내를 냈지만 외교적 망신만 초래했는데 문책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목숨을 내걸고 신분까지 바꿔 활동하는 ‘블랙 요원’의 자긍심에 악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우려스럽기도 하다. 국정원의 첩보 참사에 징계를 포함한 실효성 있는 감사는 물론 ‘깜깜이’ 첩보 활동비에 대한 통제 가능한 근본적 해법을 마련할 시점이 도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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