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재선에 나선 가운데 선거 기간 그의 가족 구성원이 맡은 역할과 중요성이 과거와 달라져 눈길을 끌고 있다. 대통령에 처음 도전했던 2016년에는 부인인 멜라니아 트럼프, 딸 이방카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이번 재선 과정에서는 트럼프의 셋째이자 차남인 에릭 트럼프의 아내, 즉 트럼프의 둘째 며느리인 라라 트럼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라라 트럼프는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공동의장을 맡으면서 선거 자금을 담당하는 것은 물론 선거 전략을 총괄하고 있다.
달라진 트럼프 가족의 역학관계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확인됐다. 트럼프가 2016년 공화당 전대에서 대선 후보 지명을 수락했을 때, 멜라니아는 남편을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 4년 후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일 때도 멜라니아는 백악관 장미 연설에서 트럼프에 힘을 보태는 연설을 했다. 하지만 15일(현지 시각)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대에서 트럼프가 세 번째 공화당 대선 후보 지명을 수락할 때, 멜라니아는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이날 트럼프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차남인 에릭 트럼프, 라라 트럼프 RNC 의장, 둘째 딸 티파니 트럼프가 현장을 지켰다.
여기다 라라 트럼프는 전통적으로 대선 후보의 아내가 하던 전대 기조연설을 했다. 라라 트럼프는 공화당 전대 이틀째인 16일 황금시간대인 오후 10시, 미 전역에 생중계로 송출되는 연설을 통해 “TV 속 모습이 아닌, 제 아이들의 훌륭한 할아버지이자 남편의 아버지이고 제가 시아버지로 부르는 도널드 트럼프를 봐 주길 바란다”라며 “트럼프는 가족을 위해 희생한 사람이며, 나라를 위해 진정으로 희생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에 트럼프는 라라 트럼프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멜라니아가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트럼프의 가족 안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뚜렷한 변화의 일환이며 그 변화는 공화당 전대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라라 트럼프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CBS에서 프로듀서로, 2021년부터 폭스 뉴스에서 일했다. 2008년 뉴욕 맨해튼의 한 술집에서 에릭을 만나 2014년 결혼했다. 라라 트럼프는 2022년 12월 폭스 뉴스를 그만뒀고, 올해 초 트럼프의 요청으로 공화당 전국위원회 공동의장이 됐다. 2016년과 2020년에도 트럼프 선거 캠프에서 일했지만, 당시에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것과 달라진 모습이다.
백악관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쓴 케이트 앤더슨 브라우어는 FT에 “대선 후보의 배우자가 전대에서 연설하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2016년 전대 연설에서 미셸 오바마의 연설을 표절했다는 비난을 받았던 멜라니아는 연설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트럼프 선거 캠프는 멜라니아가 공화당 전대 말미에 등장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멜라니아가 무대에 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다만 멜라니아는 지난 14일 트럼프가 피격당했을 당시 국가적 통합과 치유를 촉구하는 공개 성명을 발표했다.
트럼프 1기 시절 백악관 수석 보좌관을 맡았던 이방카와 그의 남편 재러드 쿠슈너의 존재감도 사라졌다. 이방카 역시 공화당 전대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알려졌지만, 공개 연설은 잡혀 있지 않다. 이방카와 쿠슈너가 재선 과정에 어떤 역할을 맡을지, 두 번째 트럼프 행정부에 참여할지도 불확실하다. 이방카는 트럼프가 재선에 나선다고 발표한 이후 성명에서 “어린 자녀와 가족을 위한 내 생활을 우선시하기로 했다”며 “나는 아버지를 항상 지지할 것이지만, 앞으로는 정치 무대 밖에서 지지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브라우어는 멜라니아와 이방카가 공화당 전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트럼프의 첫 번째 임기가 그의 가족에게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방카는 백악관에서 아버지를 달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방카가 원하지 않았든 할 수 없었든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다만,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가족 중 일부를 또다시 백악관에 들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트럼프의 백악관 수석 보좌관 대행을 맡았던 믹 멀베이니는 FT에 “트럼프는 항상 가족에게 의지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두 번째 임기에서도 그의 자녀는 수석 고문을 맡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트럼프가 가족을 주요 직위에 앉히는 것을 보고 놀란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라라 트럼프는 16일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한 인터뷰에서 “가끔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가족뿐”이라며 “트럼프의 경우 슬프게도 대개 그랬다”고 했다.
한편, 라라 트럼프 외에 트럼프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의 역할도 부각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J.D. 밴스 공화당 상원의원이 트럼프 러닝메이트로 지명되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은 거의 매일 통화하거나 문자를 주고받는 절친한 친구 사이로 알려져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