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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즈·노실버·노교수·노20대…’노○○존’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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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아이들과 분리되고 싶은 어른들을 위해 필요한 공간.”

노키즈존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묻자 한 학생이 대답했다. 이 말에 다수의 학생이 고개를 끄덕인다. ‘시끄럽고 통제되지 않는 아이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공간, 노키즈존을 바라보는 어떤 시선이다. 노키즈존을 시작으로 노○○존의 등장은 어떤 의미일까? 노○○존은 단순히 ‘○○에 해당하는 이들로부터 침해받지 않는 공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안을 채우는 누구나(Sombody)에 해당하는 집단을 하나씩 나열하다 보면 그 밑에 깔린 차별의 인식이 보이기 때문이다.

– 노시니어존(“76세 이상 입장 불가..대구 호텔 헬스장 방침에 노실버존 재점화”, 이데일리, 2024.07.15.)

– 노중학생존(“대전 노중학생존 스터디카페 등장..민원 때문에 vs 억울해”, 대전일보 2023.04.24.)

– 노장애인존(“노장애인존?…장애인 예약 거절한 홍대 음식점”, 2015.12.23.)

노○○존은 어떤 공간에 들어갈 수 없는, 즉 배제되는 ‘누군가(sombody)’를 구분 짓는 언어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를 결정하는 기준은 오롯하게 그들과 다른 지형에 서 있는 사람들에 의해 정해진다. 아이들이, 노인이, 청소년이, 장애인이 내가 있는 공간에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 그들은 각자의 논리를 들어 자신이 그 공간을 안온하게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배제된 이들에게 ‘예스○○존’을 찾아가면 되니, 이것은 차별이 아닌 선택과 기호의 문제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노키즈존에서 시작된 노○○존 담론은 명백한 차별의 일상화 현상이다. 누구에게나 평범한 일상생활 속 가게, 식당, 호텔, 운동 시설 그 한 편에 자그맣게 써 붙여진 노○○존 표시는 인간 등급화라는 잘못된 인식의 결과이다. 사람은 결코 등급화될 수 없다는 인권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사라진 것이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헬프> 속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을 살펴보자. 영화는 백인과 유색인종의 화장실을 분리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이 흑인 당사자들에게 어떤 모욕으로 다가가는지, 그 당시 백인 사회의 맹목적인 우월적 인식과 차별 정서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또 다른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도 유색인 전용 화장실은 같은 영화적 장치로 작동한다. 두 영화를 보며 인종차별에 대해 분노감 혹은 잘못되었음을 인식했다면, 노○○존 역시 흑백 분리를 주장하던 인종차별과 다를 것이 없다는 점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노○○존과 흑백 분리는 그 공간에서 환대 될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을 권력을 가진 이들(백인)이 배제 여부를 결정하고, 특정 조건을 가진 집단(유색인종)의 배제를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노○○존을 살펴보자. 아동·청소년, 장애인, 노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 즉, 청년, 비장애인, 성인 등 우리 사회에서 일정한 권력을 가지고, 사회의 정상 기준에 해당하는 이들 집단이 노○○존을 요구하고, 설정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연령, 성별, 출신, 장애 여부 등에 따라 다르게 대우하거나 배제하는 노○○존 담론은 이것을 차별이 아니라 충돌하는 양자의 이해관계 문제, 혹은 개인적인 기호나 선택과 같은 사소한 문제로 축소한다는 문제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노키즈존에 대해 차별 판단을 내렸음에도 우리 사회의 노○○존 담론은 이제 더 날카롭게 혐오의 정서를 담아 확대되고 있다.

– 노교수존(“대학가에 ‘노교수존’ 술집 등장… 진상 손님 때문에”, 동아일보, 2021.12.8.),

– 노20대존(“골칫거리 ‘카공족’ 예방법?..’노20대존’ 카페 등장”, 헤럴드경제, 2023.08.09.),

– 노중장년존(“40대 이상 커플 예약 불가…노키즈존 이어 노중년존 등장”, 서울신문, 2021.12.02.)

진상 손님이 주로 교수였기 때문에 노교수존을 하겠다, 공부한다고 죽치고 돈 안 되는 20대가 싫어 노20대존, 노카공존을 하겠다, 중장년 커플은 불륜이어서 노중장년존을 하겠단다. 이유도 참 구체적이고 다양하다. 그러니까 내가 싫어하는 이유를 붙인다면, 소위 ‘민폐’라고 불리기만 하면 누구나 배제되고 차별받아도 정당하다는 논리가 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다음 노○○존에 들어갈 집단은 누가 될까?

“저는 결혼 생각이 없고 아이를 출산할 계획이 없어서 노키즈존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노실버존을 오늘 처음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언젠가 저도 노인이 될 테니까요.”

노실버존에 대한 학생의 발언을 되짚어본다. 누구나 나는 ○○에 해당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것이라 생각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아이/노인이 되기 때문에 그 누구도 현재의 차별과 배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학생에게 “학생도 한 때 아이였던 적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해줬다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다.

‘인간의 기본적 조건은 환대’라는 박주영 판사(<어떤 양형 이유>, <법정의 얼굴들> 저자)의 말을 다시 새겨본다. 환대를 경험해도 살아가기 이 힘든 세상에서 우리 사회는 특정 집단 배제를 정당화하는 노○○존 담론에 깊게 빠져있다. 명확하게 현실을 들여다보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조용하게 카페를, 식당을 이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키오스크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외부 활동에 제약 없는 사회적, 신체적, 경제적, 정서적 여건을 가진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기억하자. 그들이 결정할 때, 당신 역시 ‘노○○존’에 포함될 수 있음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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