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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먹사니즘’을 들고 나왔다. 그러면서 세제 3종 세트(상속세·종합부동산세·금융투자소득세)의 완화 방침을 꺼냈다. 야당 실세의 갑작스러운 전향이 한편으로 반가웠고 다른 한편으로 불쾌했다.
일단 불감청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인 것은 디테일의 정치가 살아나는 계기기 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했다. 지난 1995년 나온 이 베이징 발언이 아직 회자되는 것은 많은 이들이 이 평가에 동의한다는 뜻일 테다. 여러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우리 정치가 팬덤에 기댄 정치, 박제화된 자기 진영만 의식하는 정치에 몰두해온 결과가 아닐까 싶다.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선악의 대결 구도, 도식적 사고로 단순화할 수 없다. 그래서 법과 제도를 만드는 정치권은 룰 메이커로서 디테일을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다양한 층위의 무질서한 사례에서 균형을 잡으려면 공부해야 하고 상대방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런데 국회에는 단순 구호 정치에 물들어 목소리만 큰 이들이 가득하다. 이념의 비호 속에서 과거에 머물고 있는 이들의 가장 큰 병폐는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데만 특화돼 있다는 점이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단 금기와 선입견에 사로잡힌 채 갈등을 조장해 자기 진영의 확산에만 온 신경을 쏟는다. 4류 정치는 이런 행태가 누적된 결과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전 대표의 감세 카드는 그 자체로 평가할만하다. 당장 금투세만 해도 자본시장 육성이 절실한 시점에 동학개미의 엑소더스를 제도적으로 조장할 리스크가 있다. 반기마다 원천 징수하는 후진적 납부 방식부터 양도소득세 적용 시 장기 보유에 따른 특별 공제가 없어 부동산과 다른 역차별까지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상속세와 종부세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증세가 심각하고 이중 과세와 징벌적 성격도 강하다. 올해 나라 살림이 74조 원 적자(관리재정수지 5월 기준)인 판에 세제 완화에 얼마만큼 성과가 있을 지는 미지수지만 이런 논의 자체가 혁신이요 진보라는 생각이다.
특히 종부세는 노무현, 금투세는 문재인 정부때 도입됐다. 피아 구분에 몰두해온 단세포적이고 살풍경한 우리 정치 풍토에서는 신선하기까지 하다. ‘집토끼(극렬 지지자)는 확실하니 산토끼(중도층)만 잡으면 정권 탈환은 문제없다’는 이 전 대표의 정치공학적 계산도 나무라기 어렵다. 직업 정치인에게 외연 확장은 선거 승리를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 들어 국회 문턱에서 번번이 쓴 잔을 들이켜며 패배의식에 젖어있던 세제 당국에도 이 전 대표의 전향은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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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찝찝함은 남는다. 이 전 대표의 우클릭이 불쾌한 것은 숨은 의도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그는 대장동 개발, 쌍방울 대북송금 등 각종 의혹으로 재판받고 있다. 민주당은 이 전 대표를 수사하는 검사를 탄핵해야 한다며 삼권분립마저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혹여 다음 대선이 있는 2027년 3월 전에 이들 사건의 확정판결이 나오면 이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야당은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아 윤석열 정권의 탄핵과 결부시키는 상황이다. 이런 배경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면 유력 정치인의 표변(豹變)은 공공선 차원에서 매우 위험스러운 요소를 안고 있다.
먹사니즘은 어찌 보면 정치의 지향점, 알파요 오메가지만 그게 전부일 수는 없다. 이 전 대표의 ‘과거’는 중산층이 반길만한 전향으로 갈음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자신의 정치적 위기 속에서 반전 카드를 꺼내며 이른바 각자도생에 충실한 이 전 대표를 보노라면 눈은 자연스레 여당인 국민의힘을 향하게 된다.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다. 당 대표 경선에서는 누군가 마리 앙투아네트로 비유했다는 ‘그분’의 문자 등을 놓고 후보자끼리 배신자 프레임 씌우기에 날이 지샐 판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이런 갑갑한 형국에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우리 국민이 야당 실세처럼 영악했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먹사니즘에 충실하되 먹사니즘에 매몰되지 않는 국민이었으면 한다. 그래야 정치권의 각성도 유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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