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일본은 4년 만의 ‘마이너스’ 성장 위기에 놓여 있다. 1970~1980년대 평균 4.5%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자랑하던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인 1990년대(1.3%대)·2000년대(0.7%)를 거쳐 2010년대는 1% 정도로 성장 동력이 약화했다.
이렇게 일본 경제의 활기가 사라진 데는 도요타 등 대형 제조기업의 해외 투자 확충에 따른 국내 ‘설비 투자’ 부진이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된 탓이 크다. 오늘날 일본 정부가 ‘U턴 정책’을 강화하는 움직임은 이런 문제의식을 방증한다.
우리나라의 최근 수입 감소가 ‘국내 투자의 구축(驅逐·투자 위축)’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는 한국은행의 분석이 나왔다. 최근 우리나라는 반도체 등 정보통신(IT) 중심으로 수출이 활황을 띠는 가운데, 수입도 대폭 줄어서 경상수지 흑자를 내고 있다.
당장엔 호재처럼 보이지만, 이런 원인이 구조적인 ‘자본재 수입 감소’에서 비롯된 것일 경우 한국 경제의 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경제학계의 지적이다. 일본이 지난 수십년간 겪어 온 모습과 ‘닮은 꼴’일 수 있어서다.
1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제무역팀 남석모·최준·정영철 과장, 조윤혜 조사역은 ‘최근 수출 개선에도 수입이 부진한 배경’ 보고서를 통해 이런 분석을 내놨다.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2022년 3월부터 2023년 5월까지 15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수출보다 수입액이 더 많은 것) 행진을 끊고, 2023년 6월부터 지난달까지 13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턴 수출보다 수입이 더 줄어 낸 ‘불황형 흑자’를 벗어나, 수출이 많이 증가하면서도 수입이 부진한 양상의 흑자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수입액의 경우 2023년엔 전년 대비 12.1%, 올해 1분기와 2분기엔 전년 동월 대비 각각 11%, 1.4% 줄어들었다. 이런 영향으로 상반기 무역수지는 231억달러 흑자를 나타내, 2018년(311억달러) 이후 6년 만에 최대 수준의 기록을 썼다.
보고서는 최근의 이런 ‘수입 부진’ 현상을 원인에 따라 달리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보고서는 “우리나라는 경제 구조 특성상 과거 수출이 증가하면 수입도 함께 증가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최근의 수입 둔화는 경상수지를 키우는 요인이지만, 그 원인에 따라서는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자본재 수입이 장기간 감소할 경우 우리 경제 생산 능력이 약화할 수 있다”고 했다.
자본재 수입은 국내 설비 투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반도체 제조 장비, 정보·통신기기, 반도체, 수송장비 등이 자본재에 해당한다. 자본재 수입액은 ▲지난해 1분기 -1.3% ▲2분기 -6.5% ▲3분기 -13.6% ▲4분기 -8.6% ▲올해 1분기 -4.2% ▲2분기 -1.6% 등 여섯 분기 연속 전년 동기 대비 감소세를 기록 중이다. 전체 수입액 감소율에서 자본재 감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분기 18.1%에서 올해 2분기 38%로 껑충 뛰었다.
한은은 “원자재 수입 감소가 주로 단가 하락에서 비롯됐다면, 자본재는 물량 감소에 주로 기인했다”며 “자본재 중에서도 최근 반도체 제조용 장비의 수입이 줄어든 것은 지난해 업종 부진으로 설비 투자가 이연된 가운데 일부 업체의 생산라인 증설 공사가 일시 중단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와중에 해외직접투자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미국에 대한 직접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양상이다. 한은의 ‘2023년 지역별·통화별 국제투자대조표(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 대한 투자는 8046억달러로 전체 해외 투자액(1조9116억달러)의 42%를 차지했으며 증가 폭은 역대 두 번째로 컸다. 한은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 중심으로 미국 생산시설을 늘리면서 직접투자가 대미 금융자산 증가에 일조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이런 ‘대외투자의 증가’와 ‘자본재 수입 감소’가 동시에 장기화할 경우 국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 ‘제조업 공동화’ 현상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국내 투자가 부진해 생산시설이 줄게 되면 고용이 악화하고 소득 감소, 민간 소비 악화의 부작용을 낳게 된다”며 “우리 경제의 생산 능력 확대나 생산성 제고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설비투자지수는 작년 5월부터 지난 5월까지 단 한 차례(올해 1월)를 제외하고 모두 전년 동월 대비 감소세를 보였다.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올해 설비투자 지수는 ▲2월 -0.8% ▲3월 -4.4% ▲4월 -2.2% ▲5월 -5.1% 등 감소 폭을 확대해 가는 추세다.
☞제조업 공동화(空洞化)
해외의 생산 활동에 대한 비중이 높아지면서, 국내 생산 활동 규모가 축소돼 가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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