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세당국이 보일러 제조업체 귀뚜라미가 2019년 인적분할 직후 세금계산서를 잘못 발행해 매출 일부를 누락했다며 세금 약 20억원을 추가로 내라고 했다. 이에 귀뚜라미가 과세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1-1부(부장판사 심준보 김종호 이승한)는 지난 9일 귀뚜라미홀딩스(홀딩스)·귀뚜라미 등이 경산세무서와 아산세무서, 강서세무서를 상대로 제기한 부가가치세 등 부과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귀뚜라미그룹은 상고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귀뚜라미는 2019년 11월 21일 투자사업과 제조사업을 나누는 인적분할을 했다. 분할회사인 귀뚜라미는 투자사업을 전담하게 하고 사명을 ‘귀뚜라미홀딩스’로 바꿨다. 신설법인 ‘귀뚜라미’는 보일러 제조사업을 담당하기로 했다.
회사 측은 2019년 11월 발생한 매출·매입에 대한 세금계산서를 신설법인 귀뚜라미 명의로 발행했다. 홀딩스 매출이 ‘분할 전 귀뚜라미’로 진행한 사업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또 분할 후에 신설법인인 귀뚜라미가 홀딩스의 계약당사자 지위를 포괄 승계했으므로 세금계산서 발급 주체가 귀뚜라미가 맞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세무 당국 판단은 달랐다. 서울지방국세청은 2021년 4월~8월에 귀뚜라미홀딩스와 귀뚜라미, 계열사 나노켐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세금계산서 발급 주체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2019년 11월 1일부터 20일까지 ‘분할 전 귀뚜라미’에서 발생한 매출 1330억원과 매입 거래 약 40억원의 세금계산서는 홀딩스가 발급하거나 수취하는 것이 옳다고 봤다. 세금계산서를 잘못 발급한 결과 홀딩스의 일부 매출분이 신고·누락됐다고 판단했다.
서울지방국세청은 귀뚜라미그룹에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를 경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통보했다. 이후 경산세무서 등은 귀뚜라미그룹에 가산세를 부과하는 등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를 각각 경정·고지했다.
추가 세금을 물어야 할 처지에 놓인 귀뚜라미그룹은 지난해 1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올해 초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는 국세기본법에 따라 귀뚜라미가 홀딩스의 세금계산서 발급·수취 의무를 포괄 승계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세금계산서는 재화나 용역 공급시기에 작성되는 것이 원칙”이라며 “부가가치세 납세의무가 분할 신설법인(귀뚜라미)에 승계된다고 해석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항소심에서도 귀뚜라미그룹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의 사실 인정과 판단은 모두 정당하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이어 “주식회사 분할로 분할 신설회사가 일정한 권리 의무를 포괄적으로 승계하더라도 거기에 납세의무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며 “조세채무관계는 당사자가 그 내용을 임의로 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당시 국세기본법은 납세의무를 승계하는 경우에 관해 법인 합병과 상속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법인의 합병이나 상속의 경우 일방이 소멸 또는 사망함으로써 다른 일방이 권리 의무를 포괄적으로 승계해 이전하는 권리 의무 범위를 당사자가 임의로 정할 수 없다”며 “법인의 합병과 상속 경우에만 납세의무 승계를 예외적으로 인정하되 그밖에는 조세의 공익성과 공공성에 비춰 승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해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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