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레드카드를 준 담임교사를 교체해달라 수차례 요구한 학부모 행동에 대해 법원이 교권 침해라고 판단했습니다. 광주고법 행정1부 양영희 판사는 ‘학기 중 담임에서 배제되는 것은 교사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키고 불이익한 인사 처분’이라며, 학부모가 교권 보호 조치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패소 이유를 밝혔습니다. 지난 2021년 전북 전주 초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수업 중 페트병으로 소음을 내자, 담임교사가 칠판 레드카드 부분에 학생 이름표를 붙인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최근 일명 ‘레드카드 사건’ 관련 파기환송심 결과에 대한 한 언론사의 보도 내용이다. 많은 사람이 이 사건을 학부모의 부당한 간섭에 의한 교권 침해라 생각하고 있으며, 해당 학부모에 대해 전북교육청이 대리 고발한 뒤에는 전교조, 교사노조, 교총과 같은 주요 교원단체들이 일제히 환영 입장을 밝혔다.
이 사건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고, 여러 논쟁점들이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교권 보호’에 매몰된 사회적 시각을 되돌려 다각적으로 사건을 검토하기에는 그 온도가 너무 뜨거운 듯 보인다. 그럼에도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 적어도 둘 있다.
모든 것은 학교장에 달려 있다?
레드카드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오랫동안 어렵게 쌓아올린 학교 민주화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결정임에도 전교조와 같이 이를 위해 노력했던 세력들이 ‘교권 강화’에 시야가 좁아져 그 영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환영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 사건 판결문에서 “교원지위법 제15조 제1항에 의하면 교육활동 침해행위인지 여부를 판단하여 필요한 보호조치를 하여야 하는 주체는 각급학교의 장이며, 각급학교의 교권보호위원회는 심의기구에 불과하므로 학교규칙으로 보호조치의 시행을 교권보호위원회의 심의사항으로 정하였다 하더라도 그 결정에 구속력은 없다”라고 했다.
심지어 고등법원이 교권보호위원회의 절차적 하자(학부모의 진술권 보장 부족, 행정상 서류의 착오 등이 지적됨)를 지적하고 이로 인해 교권보호위원회의 결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밝혔음에도, 학교장이 교권보호위원회의 심의 결과는 참고만 하고 따로 잘 조사하여 사정을 잘 알고 결정했다면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마치 정부 부처나 국무회의에서의 논의나 근거 자료에 문제가 있었더라도, 대통령이 혼자서 잘 조사하고 잘 알고 있었다면 아무 상관도 없다는 논리하고 무엇이 다른가?
학교에는 교권보호위원회 말고도 법률적 근거가 있는 학교운영위원회, 성고충심의위원회, 학교폭력전담기구 등이 있으며, 학교장의 권한을 독단적으로 행사하지 않도록 견제하기 위해 교원단체들과 맺은 단체협약이나 조례 등에 근거를 둔 인사자문위원회, 규정개정심의위원회 등이 있다. 학교운영위원회는 교장의 독단적인 학교 운영을 막고 학교의 민주화를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표적인 심의(사립학교에서는 자문)기구다. 하지만 학교장의 의견에 쉽게 반대하는 경우를 만나기 쉽지 않게 되어 이제는 무늬만 심의기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래도 성고충심의위원회, 학교폭력전담기구 등은 교권보호위원회처럼 학교장에게 행정적 조치를 권고하도록 의결할 수 있어 그 결과는 실질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의 취지대로라면 이와 같은 기구들의 결정은 사실상 중요하지 않고, 그 엄밀성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된다. 그냥 교장에게 교권 침해, 학교장 자체 종결 사항, 성희롱이라고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고, 이 모든 것을 교장이 결정하고 집행한다는 것이다. 그럴 거면 그렇게 많은 복잡한 절차를 거쳐 실수를 줄이고자 노력하고 교장의 권한에 대한 견제를 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그리고 이번 사건은 교사들과 교장이 같은 이해관계였고, 상대적으로 약자라고 할 수 있는 학부모와 학생의 반발이 심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큰 반향이 없었겠지만, 만일 교장과 교사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사안에도 같은 논리를 적용하면 어떻게 될지 교사들은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언론들이 학부모와 학생이 상대적 약자라는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괴물 취급하고 학교를 무너뜨리는 주범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도 드러난다.
학생의 인권을 침해한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재판부가 이번 판결에서 인권 감수성의 부족을 드러냈음에도, 교권 보호에 매몰되어 그 문제점을 사회가 돌아보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다시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그러나 학기 중에 담임에서 배제되는 것은 해당 교사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키고 인사상으로도 불이익한 처분이며, 학교장에게는 학기 중에 담임 보직인사를 다시 하는 부담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설령 해당 담임교사의 교육 방법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교육 방법의 변경 등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먼저 그 방안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하였다. 즉 담임 교사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기 위해서, 담임 교체와 같은 분리조치는 시급하지 않고 일단 기회를 주고 잘못된 교육 방법을 변경하는 것이 먼저라는 뜻이다.
하지만 대법원이 판단해야 하는 것 중에는 그 잘못된 교육방법이 학생에게 실질적 위협을 주는지 여부도 있었다. 실제로 해당 학부모는 레드카드는 ‘벌점제’의 일종으로서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전했고 인권침해라는 판단까지 받았음에도 이에 대해 교사가 고치려는 의사가 없었기에 지속적인 항의를 했다고 주장한다. 문제의 발단이 된 ‘레드카드’ 제도란, ‘옆 친구와 이야기했다는 이유, 물병을 만지작거렸다는 이유, 다른 학생의 색연필을 밟았는데 사과를 안 했다는 이유 등으로 학생에게 레드카드를 주고 방과 후에 교실에 남아서 청소를 하게 한’ 것이었다. 학생인권 구제기구에서 이에 대해 사실이 인정되었고 다음과 같은 권고가 이뤄졌다.
“피신청인이 벌점제를 운영하여 학생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벌점을 받은 학생에게 방과 후 청소를 시키는 등 부적절한 방법으로 학생의 인격권을 침해한 것은 낮은 인권 감수성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학교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특별인권교육을 실시하고, 같은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별도의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한다.”
그럼에도 판결문에는 이에 대한 판단은 슬쩍 빼놓고 다루지 않고 있다. 교사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서는 담임교체(실제로는 분리조치라고 봐야 할 것이다)와 같은 신분상 조치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러면서 담임의 잘못된 교육방법에 의해 학생이 당할 수 있는 지속적 인권 침해나 2차 피해의 가능성에 대해선 아예 고려하지 않고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논리 아닌가? 성인지 감수성에 입각한 판례가 확립되기 이전 시대, 성희롱 가해자에 대해 직장을 잃게 되는 것은 성희롱의 죄질이 ‘크지 않은’ 것에 비해 과한 신분상 처분이라며 무죄 또는 감경 처분하던 사례들에서 보았던 논리 구조다.
만약 대법원이 인권 감수성에 입각하여 판단했다면 학부모의 행위 뒤에 있는 학생인권 침해를 막아달라는 호소를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학교와 교육청이 그런 학부모의 호소를 잘 받아주었다면 과연 그 학부모가 그렇게 지속적으로 억울함을 항변했을까? 물론 그 과정에서 학부모의 과한 행동이 있을 수도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선 학부모도 책임지는 모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학생이 당한 인권침해가 없는 일이 되지는 않는다.
교사들의 안전한 노동환경 조성은 정말 중요한 일이고 그런 측면에서 교사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학생이 안전한 환경에서 인권을 존중받으며 교육에 참여하는 일이다. 교사들이 안전하다고 곧 학생이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어렵게 쌓아올린 학교 민주화를 허물고서 안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자위하더라도, 민주주의가 저절로 세워지지도 않는다. 학교의 민주화와 학생의 교육권을 희생해가면서 얻어야 할 ‘교권’ 같은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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