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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지옥, 우리는 이미 한 발 들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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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은 지구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를 넘기지 않도록 전 세계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고 목표치를 제시했다. 섭씨 2도를 넘어가면 지구는 이른바 ‘티핑 포인트’를 지난다. 이때부터는 인간이 아무리 온실가스를 감축하려 한들 소용이 없다. 이미 뜨거워진 지구가 스스로 온도를 더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지구는 마치 금성처럼, 결국 온실가스로 인해 섭씨 수백도에 달하는 지옥별이 될 것이다. 일각에는 기후 위기가 지구에 저지른 사람에게 내려진 벌이라고 한다. 아니다. 모든 생명의 위기다.

이마저도 보수적인 추정치다. 현대 과학은 아직 지구 온난화 과정의 함수를 완벽히 풀어내지는 못했다. 현재 과학자들이 추정한 모델에 넣지 못한 변수가 많다.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녹아 표면적이 커지면, 현재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나머지 빙하가 녹아내릴 가능성이 있다. 동토지대가 녹아 분출되는 수십만 년간 응축된 메테인(메탄)의 양이 정확히 얼마나 될지, 이 초강력 온실가스인 메테인이 대기에 퍼지면 지금보다 온실 효과가 얼마나 더 빠른 속도로 일어날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런 불확실성을 전제로 과학자들이 지난 1년여 간 연구한 결론을 모아, 가장 보수적인 추정치로 ‘합의’한 결과물이 바로 1.5도 목표치다. 앞으로 과학 기술이 더 발달한다면, 실제로는 1.5도가 아니라 1.4도 목표치를 지켜야만 인류가 생존할 수 있다는 결과값이 나올지도 모른다. 티핑 포인트는 2도가 아니라 1.8도일지도 모른다.

이미 한번 무너졌다. 지난 7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기후 변화 감시기구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는 작년 7월 이후 지난 1년간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64도 올랐다고 밝혔다. 현재 인류가 마지노선으로 여긴 1.5도가 이미 무너졌다.

물론 ‘한번’ 넘어선 결과다. 1.5도 목표치는 10년 평균값이다. 앞으로 9년 더 지금과 같은 기온 수준이 유지돼야 1.5도 목표치가 무너진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 그렇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암울하다. 지난해 기준 최근 10년의 지구 연평균 온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1.48도 올라갔다. 우리에게는 0.02도가 남았다. 파리협정의 1.5도 목표가 이미 얼마 남지 않았다.

C3S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지구 평균 기온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높다. 아울러 작년 6월부터 올 7월까지 지구 월평균 기온은 매월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즉 최근 13개월 간 매월이 ‘인류 역사상 가장 더운 달’이었다. 지난달은 인류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6월이다. 이번 달도 그럴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 우리에게 과연 시간이 얼마나 더 있을까?

아마게돈은 가장 먼저 폭염과 함께 온다. 지난 20여년 간 기후 위기를 전문적으로 취재해 온 저널리스트 제프 구델의 <폭염 살인>(왕수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은 멸종을 향해 질주하는 우리에게 가장 먼저 오는, 아니, 이미 도래한 지옥은 폭염이라고 지적한다. ‘폭염 르포르타주’라 할 만한 이 책은 지금도 펄펄 끓어오르고 있는 지구 곳곳을 저자가 발로 뛰어 관측한 기록이다. 지난해 지구의 폭염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다룬 책이니, 오늘날 이 책은 ‘앞으로는 역사상 가장 시원했을 2023년의 기록’일 수도 있다.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그렇게 심각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 폭염, 즉 갑자기 훅 뜨거워진 살인적 더위가 며칠에 걸쳐 지속되는 초고온 현상이 일어날 확률은 산업화 초기 대비 150배 높아졌다. 매해 바다 온도는 역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2019년 전 세계의 48만9000여 명이 폭염으로 인해 사망했다. 이는 허리케인, 태풍, 수해 등 폭염을 제외한 다른 모든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 합계를 웃도는 수치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질병관리청은 지난해 한국에서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는 32명이라고 밝혔다. 이는 전년(2022년) 사망자 9명 대비 3.5배 수치다. 직접 기록만 이 정도이니 간접적인 사인을 고려하면 이보다 더 많은 이가 폭염으로 인해 사망했을 것이다.

저자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거주한다. 지난해 기온이 40.5도를 넘은 날이 40일을 넘었다. “다른 텍사스인들처럼 나도 더운 날에는 뱀파이어처럼 살아야 했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 그러니까 죽일 듯한 기세로 내리쬐던 햇빛이 비로소 자취를 감추었을 때나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이미 우리는 폭염 지옥에 한 발을 걸쳐놓았다. 폭염과 가뭄으로 인해 바짝 마른 나무는 불쏘시개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호주의 산불이 6개월에 걸쳐 생지옥을 만드는 초현실적인 상황을 경험했다.

인간의 몸은 한계치인 습구온도 35도를 넘으면 고체온증을 겪는다. 이후 순식간에 열 경련과 열사병이 다가온다. 2022년 미국에서 살기 좋기로 유명한 태평양 북서부 연안에 거주하던 일가족은 하이킹을 나선지 단 4시간 만에 전원 사망했다. 오전만 해도 선선하던 날씨가 갑자기 폭염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지난해 북반구 전역에 대기파가 생성되더니, 열돔(heat dome)이 만들어졌다. 그로부터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포틀랜드 시내 기온이 24.4도에서 45.5도까지 치솟았다.

폭염이 시작이다. 직접적인 피해자를 낳는데 그치지 않고 추가적인 피해를 생성하는 원인이 된다. 식량 위기는 이미 시작됐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한여름에 열악한 혹은 매우 열악한 상태에 처한 텍사스의 옥수수 경작지가 전체의 42퍼센트에 달했다. 상태가 매우 좋은 경작지는 단 3퍼센트였다. 2022년 프랑스의 옥수수 수확량은 30년 만에 최저치였다. 코넬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 전 세계 농업생산량은 기후위기 이전보다 21퍼센트 줄어들었다. 지구 평균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옥수수는 7퍼센트, 밀은 6퍼센트, 쌀은 3퍼센트씩 수확량이 줄어든다.

우리는 이미 인도 정부가 밀 수확량이 예상치를 크게 밑돌자 밀 수출을 금지한 사례를 최근 겪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밀 생산이 줄어든 가운데, 인도마저 밀 수출을 금지하자 우리 밥상에 직접적인 타격이 왔다. 지난달 28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발표를 보면 한국의 최근 3년(2021~2023년) 곡물 자급률은 평균 19.5퍼센트에 불과했다. 식량 안보 위기가 이미 현실이 됐다.

바다의 사막화도 이미 치명적 수준으로 진행 중이다. 전 세계의 산호가 떼죽음을 맞고 있다. 산호는 거친 바다로부터 해양생물을 보호하고 치명적 육식 어종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한다. 대부분의 해양 생물이 산호의 보호 아래에서 생활한다. 직접적인 보호장치만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극지방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차가운 민물이 세계의 바다에 대량 유입된다. 그 결과 바다의 순환 체계가 망가진다. 열대 지역과 남극을 오가는 대서양해류는 점차 약해지고 있다. 대서양해류의 순환이 멈춘다면 미국 동부 연안 해수면은 기존 예측치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상승할 것이다. 전 세계에서 태풍과 허리케인이 급증할 것이다. 북쪽에 자리했음에도 따뜻한 바다 덕택에 따뜻한 계절을 누린 유럽에는 기존보다 훨씬 추운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이는 유럽 곡창 지대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미칠 것이다. 유럽의 농업은 끝날 것이다.

경제도 망가진다. 평균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퍼센트 수준인 3000억 달러가 증발한다. 폭염 아래서 야외 노동이 불가능해지고 기계류의 고장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노동생산성은 극도로 떨어질 것이다. 2020년 극단적 더위로 인해 노동자의 생산성 저하가 1000억 달러의 손실을 불러왔고 이 손실액은 지금 추세가 이어진다면 2050년 5000억 달러까지 늘어날 것이다. 이는 가계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모든 소비품의 가격이 치솟을 것이다.

비극적인 사실은 지금도 전 세계가 더 많은 화석연료를 태우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미국의 석유와 가스 생산량은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2022년 4조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린 거대 석유 기업과 가스 회사는 생산량을 2배 늘렸다. 영국의 석유회사 BP는 당초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5퍼센트 줄이겠다던 약속을 슬그머니 취소했다. 엑손모빌은 바이오연료 생산 투자 지원에서 한 발 물러났다. 쉘은 지난해 이미 재생가능에너지 투자를 늘리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앞으로가 더 무섭다.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될지 모른다.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다시금 미국이 파리협정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미국이 이렇게 나간다면 중국이 가만 있을까? 유럽을 휩쓰는 극우 세력은 기후 대응에 피로를 느끼는 대중을 겨냥해 재생에너지 전환의 시계를 되돌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금 세상은 마치 영화 <돈 룩 업!>의 현실판인 듯하다. 인류에게 희망이 있을까.

저자는 놀랍게도 “이 책을 쓰기 시작한 4년 전보다 덜 비관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다. 저자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이상하게도 기후위기를 똑똑히 인식하고 나니 내 삶이 더 생동감 있게,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세상이 그렇게 쉽게 부서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여러분 눈에도 이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이다. 급박하게 변화하는 세상은 달리 말하면 잠시뿐인 세상이다. 오늘은 여기 있지만, 내일은 없어지는 세상이다. (…) 2023년이 내게 가르쳐준 게 바로 이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떤 아름답고 감탄스러운 것을 발견하든, 지금 이 순간 그 모습을 실컷 봐두라는 것. 어쩌면 그 풍경은 오래지 않아 사라질지 모르니까.”

돌이켜보면 인류에게는 긴 시간과 기회가 있었다. 그저 행동하지 않아 이제 우리는 바야흐로 종말을 이야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실낱같은 희망이 사라질지 모른다.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 100년 이상 잔류한다. 지금 지구를 데우는 이산화탄소 중 상당량은 20세기에 배출됐다. 당장 전 지구가 모든 탄소 배출을 중단하더라도 당분간 지구 대기는 가열될 지도 모른다.

지금 상황이라면 인공지능 개발은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 챗GPT-3는 질문 10개에 답하는 데 물 500밀리리터를 필요로 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지난해 탄소배출량은 30퍼센트 증가했다. 인공지능이 엄청난 전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인류 생존을 위해 규제해야 한다. 더 창의적인 규제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엄청난 탄소를 배출하는 항공기 이용을 줄여야 한다. 전 인류에게 해외여행 총량 규제를 적용해야 할 지 모른다. 지금도 각국의 수도를 뒤덮은 승용차가 엄청난 온실가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승용차를 함부로 타지 못하도록 당장 전 세계가 규제에 나서야 한다. 지금도 폭주 중인 러시아와 이스라엘의 미친 전쟁 놀음을 당장 막아야 한다. 전쟁은 탄소를 내뿜는 하마다. 자본주의는 잉여 생산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자본주의를 대대적으로 규제할 방안을 지금 당장 전 세계가 머리를 맞대 고민해야 한다. 국경은 국가간 경쟁을 낳는다. 기후위기 대응 노력이 국경이 있는 지금 얼마나 유효할지 의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더는 손 놓고 있을 시간이 부족할지 모른다.

저자가 이 책을 출간할 당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우리는 이대로 끝장인가요?’ 였다. 저자의 답은 항상 같았다. “지구가 살 만한 별이기를 바라는가? 그러면 팔을 걷어붙이고 싸워라.”

▲<폭염 살인>(제프 구델 지음, 왕수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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