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의언론=민경우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수학학원 운영)]
1980년대 중반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의 연사와 청중들은 전두환과 부인 이순자를 그들의 용모에 빗대어 가차없이 조롱하고는 했다. 80년대 초반 관악 캠퍼스의 관점에서 보면 전두환은 시대착오적인 폭군이자 일고의 여지조차 없는 어리석인 혼군이었다.
3S 정책도 그러했다. 영화, 스포츠, 섹스를 일컫는 이 말속에는 대중을 우민화시켜 권력을 영속화하려는 전두환 정권의 저열하고 정치적 의지가 내재되어 있었고 이에 무분별하게 동조하는 대중의 어리석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 정점에 88서울 올림픽이 있었을 것이다. 3S 정책에 대한 운동권의 혐오와 분노는 매우 커서 대학생이었던 나는 오랫동안 88올림픽 내내 심리적 도피처를 찾아 헤매 다녀야 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내가 또는 우리가 틀렸다. 1982년 시작된 프로야구는 2024년 현재 전 국민의 관심과 사랑 속에 절찬리에 진행되고 있고 88년 서울올릭픽은 그야말로 전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와 관심 속에 대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을 비판하는 ‘한국민주화운동사3’(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은 전두환 정권의 3S를 지적하면서 “통행금지 해제 조치와 함께 전두환 정권은 에로 영화에 대한 검열을 크게 완화하였다. 그리하여 ‘애마부인’, ‘엠마뉴엘’과 같은 도색영화들이 상영될 수 있었다”고 쓰고 있다.
이러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평가는 도덕적 엄숙주의 또는 강한 선민의식을 담고 있는데 이는 당시 운동권들이 갖고 있던 3S 정책, 나아가 전두환 정권에 대한 모멸적 평가와 맞닿아 있다.
경제적으로는 김재익과 안병직을 주목해야 한다. 김재익은 정부 주도 경제에서 민간 주도 경제로의 변화를 모색했고 안병직은 운동권의 식민지 타령에 일격을 가하며 중진국 자본주의론을 정초했다.
3S 정책은 전두환 정권이 정권 연장을 위해 취했던 일련의 공작이라는 측면과 한국 경제의 성장을 배경으로 중산층으로 성장한 국민들의 내적인 요구를 충족시킨 측면 모두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운동권은 주로 전자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고, 후자는 거의 고려하지 않았지만 시대의 추이는 후자가 옳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3S에 대한 평가는 전두환 정권의 평가와도 관련이 있다. 단적으로 전두환 정권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폭력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저질 정권인가, 아니면 나름의 정치적 맥락을 지닌 정권인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이후 진행된 6,29 선언에 대한 평가와도 관련이 있다.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중화학공업화는 고도 경제성장과 중산층을 길러 냈고 그렇게 해서 성장한 중산층은 정치적 민주화, 경제에서 민간 주도 경제로의 이행, 사회문화적 자유를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 민주화는 6.29 선언과 함께 직선제로, 사회문화적 자유는 3S 정책으로 나타났다.
6.29 선언은 다른 방식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나는 가끔, 꽤 가끔, 6월 민주항쟁이 유혈충돌이 아니라 정치적 타협으로 끝난 점을 감사드릴 때가 있다. 그만큼 6.29선언은 시민 항쟁에 의한 군부의 일방적인 굴복이 아니라 정치세력 간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고 정치 세력에는 군부-민간정치세력-재야와 학생운동과 시민들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군부독재, #전두환노태우, #6월항쟁, #1980년대운동권, #대머리, #주걱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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