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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김건희의 ‘가장 무도회’, 인질 잡은 보수정당 이제 그만 놓아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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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당에 오래 몸담은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있다. 보수정당의 특징은 일사불란이다. 당 내 위계 질서가 또하다. 불만이 있더라도 일단 ‘보스’의 뜻을 따른다. 민주화 이후 김영삼과 이회창의 보수정당은 이런 통념에 잘 부합했다. 변화를 싫어하고 대세를 추종하는 특질이다. 자유주의 계열 정당은 조금 달랐다. ‘제왕적 총재’ 김대중 시대를 지나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대중과 호흡하는 역동적인 당의 기풍이 체화됐다. 하지만 보수정당 특유의 ‘보스 정치’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까지 유지됐다.

변곡점은 박근혜 탄핵이었다. 리더십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2021년 당대표에 30대 이준석을 선출했을 때, 보수정당과 아무런 상관도 없던 윤석열을 대선 후보로 선출했을 때, ‘승리에 목마른 보수’의 선택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보수 정당이 ‘대중’과 호흡하고, 전략적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는 평도 나왔다. 자유주의 정당(민주당 계열)이 2002년 노무현 당선 때 받아들인 방식을, ‘탄핵의 폐허’ 위에 뚝 떨어진 보수 정당이 뒤늦게 체화하기 시작한 것일까?

그렇게 맞이한 윤석열 시대 3년차, 평가를 할 시간이다. 변화하는 듯 보였던 국민의힘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가장 구태적인 ‘보스 정치’에 인질로 붙잡혀 신음하고 있는 중이다.

정당의 ‘정’자도 모르던 윤석열은 어떻게 정치 입문 9개월 만에 보수 정당을 입맛대로 요리했는가. 어떻게 보수 정당을 타고 올랐고, 어떻게 집어 삼켰으며, 어떻게 작금의 분열 위기로 몰아 넣었는가. 지금 한국 보수 정당이 진지하게 던져야 할 핵심 질문이다. 국민의힘은 여기에 대한 답을 준비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을 키워내지 못하고,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을 외부에서 영입했다. 대통령은 자신이 절망에 빠진 보수정당의 구원자로 등판해 전국에서 ‘표’를 끌어왔고 결국 보수 정당을 ‘집권당’으로 만들었다는 영웅 신화에 스스로 취했다. 당과 자신(대통령)을 동일시했다. 대통령이 되자, 당의 ‘보스’처럼 굴었다. 그 힘의 원천은 한국 대통령제가 보장하고 있는 막강한 권력, ‘자리 배분(관직)’과 ‘예산권(돈)’이었다. 대통령은 이회창 때나, 이명박, 박근혜 때나 가능한 정치를 보수 정당에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밑에 작은 ‘보스(친윤계)’들을 두고 정당을 직할 체제로 운영하려 했다.

‘보스 정치’는 막스 베버가 근대 미국 정치를 분석하면서 쓴 말이다. 영국이나 독일과 달리 대통령제를 채택한 미국은 의회로부터 독립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권력’인 대통령이 막강한 힘을 가졌다. 그 파워의 원천은 미국식 ‘엽관제’다. 대통령 선거 승리의 보상은 관직에 따른 봉록의 형태를 띠었다. 베버가 활동하던 시대에 미국 대통령은 30만 명에서 40만 명에 달하는 관료 지명권을 손에 쥐고 있었다고 한다. 베버는 미국의 정당체제를 두고 아예 “정당은 순전히, 오로지 관직 사냥꾼을 위한 조직”이라고 규정한다. “선거 시에는 득표 가능성에 따라 정책 프로그램을 바꾸고”, “정당이 일관된 신념이나 원칙을 전혀 갖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막스 베버가 보기에 미국 정치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이념도 신념도 없이 ‘권력 그 자체’를 추구하며 벌이는 무규칙 경기였다. 왕정과 공화정, 혁명을 두루 경험한 유럽인의 눈에 ‘신대륙’의 새하얀 백지 위에 그려진 대통령제 민주주의의 모습은 그러했다. 이건 민주주의를 뒤늦게 이식받은 한국이나 일본식 ‘계파 정치’의 원형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정당 조직을 ‘표를 끌어올 수 있는’ 수많은 보스들에게 맡긴다. 그 보스들은 ‘대통령’이라는 최종 보스의 당선을 위해 뛰고, 그 추종의 대가로 ‘관직’을 내려받고 논공행상을 한다.

‘표가 될 만한 것은 뭐든지 한다’는 한국식 사생결단적 정치 문화는 원초적이다. 이런 특질은 독재에 억눌렸다 해방된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성과 빠른 성숙을 상징하는 장점으로 설명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극단적 팬덤 정치(민주당) 부작용이나 엉뚱한 포퓰리스트(윤석열)의 탄생을 가능케 하는 토양으로, 비판적 사유의 대상이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원 투표와 국민 여론 50대 50 반영 룰로 대통령 후보가 됐다. 여론조사에서는 밀렸지만 당원 투표에서 홍준표 후보를 크게 앞섰다. ‘본선에서 무난히 질 홍준표’보다 ‘잠재력을 지닌 정치 신인’을 택한 당원들의 ‘전략적 선택'(혹은 도박)의 혜택을 받은 셈이다. 대통령은 이때 ‘당심’과 자신을 동일시했는지 모른다.

대체 어디에서 학습했는지, ‘용병’ 출신 대통령은 아주 오래 전부터 당과 호흡해 온 것처럼 행동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지만, 주변엔 ‘직언’을 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이회창도 하지 못한 ‘5년만의 정권 탈환’, 이 업적에 짓눌린 당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납작 엎드렸다. 대통령은 ‘내부 총질’ 당대표를 총력을 동원해 내더니 ‘친윤’이 아닌 당대표 후보들을 하나하나 폭력적으로 주저앉혔다. 당의 우려를 무시하고 지난해 11월 보궐선거에서 범죄자를 사면하고 후보로 만들었다가 참패했지만, 또 다시 당대표를 쫓아냈다. 그리고 자신의 측근을 비상대책위원장에 세운 지 한 달도 안돼 ‘사퇴하라’고 겁박하는 이해 못할 일들을 서슴없이 행했다.

윤석열은 애초에 보수 정당에 대한 비전도 없었고, 애정도 없었다. 윤석열은 2021년 6월 29일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정치 도전을 선언했고, 같은 해 11월 5일 ‘백범 김구 기념관’에서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 선출됐다. 그러나 이후 독립 투사 홍범도 흉상을 육사에서 제거하려 했고, 백범 김구를 폄훼하는 이승만 추종 세력에 포획됐다. 윤봉길과 김구는 정치 입문을 위한 상징으로 소모한 그는 대통령이 돼 이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새가 날아가려면 좌우의 날개 방향이 같아야 한다’며 대한민국을 반으로 갈라치기 했다. 그의 경제 철학은 ‘밀턴 프리드먼’의 자유주의인가 싶었는데, 막상 하는 행동은 은행을 ‘이자 장사꾼’으로 공격하거나, 재벌 총수들을 병풍처럼 대동하고 다니는 일들이었다. 노조, 과학기술계, 교육계를 막론하고 실체도 불분명한 ‘카르텔’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안보는 어떤가 도심에서 벌어진 참사에 음모론을 개입시킨다. 대한민국 하늘은 북한의 정체모를 비행체에 번번 뚫린다.

지난 4월 총선 패배 원인은 대통령의 무능, 그리고 그 무능을 인정하지 않는 뻔뻔함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집권 여당은 ‘김건희가 사과했으면 총선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가설을 두고 총력을 다해 상대를 죽이려 들고 있다. 진단이 엉뚱하면 처방은 산으로 간다. 그러자 윤석열 체제 있던 당원들이 직접 나서는 모양새다. 배를 뒤집어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친윤 진영’이 ‘절륜’, ‘패륜’ 소리를 듣고 있는 한동훈을 때리면 때릴수록 한동훈 지지세는 더 강고해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YTN-엠브레인퍼블릭 여론조사를 보면 (7∼8일, 유권자 2003명 전화면접, 응답률 11.5%,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0%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 지지층 사이에서 한동훈의 당대표 적합도는 61%였다. 원희룡(14%), 나경원(9%), 윤상현(1%) 다 합해도 한 후보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배신자’에 61%의 지지를 몰아주는 걸 어떻게 설명하냐고? 여권 지지층이 한동훈을 ‘배신자’라 여기지 않는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즉 이건 윤석열-김건희 부부에 대한 당원들의 강력한 비토 여론이다.

보스처럼 굴던 윤석열 대통령은 궁지에 몰렸다. 당원들은 그를 ‘보스’로 인정하지 않기 시작했다. 이제 여권 권력 투쟁의 장에서 ‘반윤 투사’가 된 ‘한동훈 당대표’를 전제하지 않은 어떤 전망도 무의미해진 것 같다. 설사 만에 하나 그가 당대표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다져진 그의 지지도는 (그의 실력과 별개로) 향후 여권 권력 투쟁에서 불변의 상수로 자리잡을 것이다. 사사건건 대통령을 발목잡을 것이다. 단적인 예로 한동훈에겐 ‘매직 에이트’, 8표의 캐스팅보트가 있다.

물론 문제는 한동훈에게도 여전히 ‘보수 정당의 비전’이란 게 안 보인다는 점이다. 권력 투쟁에만 능숙한 ‘정치 초짜’가 당대표가 되는 것 역시 또 다른 ‘걱정거리’지만, 지금 보수 정당 당원들은 ‘윤석열 비토’에 더 방점을 찍은 것 같다.

애초에 윤석열은 보수 정당의 ‘객’이었을 뿐이다. ‘친윤 그룹’은 보수의 변방에서 대통령을 타고 중심으로 들어온 비주류였다. 윤석열이 보수 정당에 무슨 뿌리가 있는가. ‘윤석열 정치’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그는 어쩌다 대통령이 된 뜨내기였다. 이 사실을 윤석열과 김건희만 모르고 있었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정당의 주인인양 행세했다. 무슨 ‘당원 동지’ 의식이 있었겠는가. 많은 관전자들이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그걸 느끼고 있다.

윤석열과 김건희는 ‘가장 무도회’를 그만두고 이제 보수정당을 그만 인질에서 놓아주시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8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쉐라톤 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 하와이 심포니 오케스트라 현악 4중주 문화 공연를 관람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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