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주장하는 ‘전국민 민생회복 지원금’이 정치권은 물론 재정당국에서도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재정당국은 민생지원금을 전국민에게 지급하지 않고 지난 2021년 재난지원금 수준으로 선별 지원해도 10조원대의 국채 발행이 필요하다며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 소비 진작 효과가 없는 데다, 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부가가치세로 돌아올 금액도 많지 않다는 것 등을 반대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9일 정치권에 따르면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6일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민생 회복과 관련된 지원금 협상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다면 1인당 25만원씩 지급하는 내용을 담은 법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7일에는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을 국회에서 만나 민생지원금 지급 추진을 재차 강조했다. 박 원내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해 오는 9일 국민의힘 신임 원내대표가 선출되면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민주당은 소비 진작을 위해 전 국민에게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형태로 25만원씩 지원하자고 주장했었다. 다만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선별 지원’도 선택지 중 하나로 고심하고 있는 모양새다.
기재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기재부 한 관계자는 “2021년 재난지원금 지급 때처럼 소득 하위 88%에게 민생회복 지원금을 준다고 해도 10조원의 국채 발행이 필요하다”면 “당시 기준에 따르면 800만원 이상 월급을 받는 사람도 지원금을 받는데, 소비 진작 효과는 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해 지역화폐 예산으로 배정된 금액은 3000억원 수준이다. 이는 소비자가 지역화폐를 5~10%가량 싸게 살 수 있도록 할인해 준 금액에 한해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금액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1만원짜리 지역화폐를 9000원에 구매하면, 중앙정부가 1000원을 지원하는 식이다.
하지만 야당의 주장처럼 민생회복 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100% 지역화폐로 지급할 경우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13조원의 재정을 더 마련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기재부에서는 전 국민에게 지원금을 분배하는 것이 소비 진작 효과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먹을거리 등 실생활 소비로 전부 이어지지 않고 불황에 대비한 저축·투자용으로 쓰일 수 있어서다.
실제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2020년 5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한 1차 재난지원금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 지원금 사용 가능 업종에서 발생한 매출 증대 효과는 전체 투입 예산 대비 26.2~36.1%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야당이 지원금을 통해 국민이 소비하면, 추후 부가세 등의 형태로 다시 국고로 돌아올 수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선 “세수 재확보도 어렵다”는 게 기재부 입장이다. 국민이 받은 지원금을 모두 사용한다고 해도, 부가가치세 명목으로 걷히는 세수는 소비액의 10%인 최대 1조3000억원에 그쳐 사실상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또 다른 기재부 관계자는 “부가세율을 높이도 어렵고, 소비가 급격히 늘어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사실상 ‘돈 풀기’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우리나라 재정건정성은 빨간 불인 상태다. 지난해 국가채무가 사상 처음으로 1100조원대를 초과한 1127조원을 기록하면서 국내총생산(GDP)의 50%를 넘어섰다. 국민 1인당 2200만원 가까운 빚을 가진 셈이다.
기재부 한 관계자는 “10조원가량을 풀어도 이후에는 10조원에 이자까지 더해 미래세대가 빚을 짊어지는 것과 같다”면서 “더구나 물가상승률이 3%대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재정을 투입하면 되레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불경기에 서민들을 돕는다는 취지에서 저소득층, 사회적 취약계층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의미 있을 수 있다”면서도 “재정적자가 심각한 가운데 전 국민, 혹은 소득 상위계층 대상으로 재정을 푸는 것은 국가부채가 많이 늘어나는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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