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02조원 규모의 국고채 만기가 도래할 예정인 상황에서 야당이 민생지원금 지급까지 추진하며 재정당국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법안을 22대 국회에서 가장 먼저 발의하겠다고 공표했다.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하려면 국채 추가 발행이 불가피하다. 일각에서는 행정부의 예산 편성권을 뛰어넘는 야당의 입법 시도가 재정 건전성을 크게 위협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 “바이백? 장기물 확대?” 기재부 ‘만기 분산책’ 고민
9일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2023년 국채백서’에 따르면, 내년 국고채 만기 상환액은 101조7631억원으로 집계돼 있다. 만기가 한번에 100조원 단위로 몰리는 건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올해 만기 도래 물량인 85조7410억원보다 약 19%(16조221억원) 증가한 규모다.
전임 문재인 정부(2017~2022년)의 ‘확장 재정’ 정책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극복을 명분으로 거듭한 추경의 여파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건전 재정’ 기조로 전환한 윤석열 정부가 연간 국고채 발행량을 축소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런 흐름을 막지는 못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세수 펑크’가 발생하면서 이를 메우기 위한 적자국채 발행 규모가 코로나 시기(2021~2022년) 수준에 버금갔다.
그간 이렇게 발행해 둔 국고채의 만기는 공교롭게도 내년에 몰리게 됐다. 한번에 상환 부담이 몰리면 정부로선 국고채 발행을 통한 재정 운용의 폭이 좁아지게 돼 부담으로 작용한다. 만기 도래 분을 차환하기 위한 용도로 국고채를 발행하면, 그만큼 재정정책 수행을 위한 신규 자금 조달처로서의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국고채 재발행 등 발행량이 일시에 확대되면 시장 금리가 급등할 위험도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내년 만기가 100조원 넘게 도래하기 때문에, 만기를 분산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며 “개별 연물들에 대한 금리나 시장 상황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정부가 희망을 걸고 있는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마저 오는 9월 성사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대규모 국채 발행량을 소화하기는 더욱 버거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시급한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이에 재정당국이 2022년처럼 ‘바이백’(buy back·아직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국채를 정부가 매입해 채무 조기 상환)을 6월부터 일찍이 단행하거나, 만기물별 차환을 하면서 ‘장기물 배치’를 늘리는 방안 등에 대해 고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 “나랏빚 관리도 해야 하는데”… ‘처분적 법률’에 골치
당장 내년만 넘기고 말 문제는 아니다. 국고채 발행 잔액의 절대적인 규모도 급증하고 있어서다. 문 대통령 취임 전인 2016년 516조9000억원에 불과했던 국고채 발행 잔액은 7년 뒤인 지난해 말 998조원으로 2배 불어났다. 국고채를 포함한 국채와 차입금·국고채무부담행위를 합치면 ‘중앙정부 채무’로 계산되는데, 이는 결국 나랏빚이다.
이 와중에 야당에선 연일 ‘불에 기름 붓는 격’의 요구를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최근 MBC 라디오에 출연해 22대 국회에서 발의할 ‘1호 법안’으로 이재명 대표가 주장한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을 꼽았다. 예산 편성권을 가진 정부와의 협의 과정을 ‘패싱’하고, 야당 단독으로 지원금 지급을 결정하겠다는 의미다.
법안이 통과돼서든, 정부와의 협의가 이뤄지든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해선 당장 13조원 규모의 추경이 불가피하다. 이 재원 대부분은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해야 할 것이라는 게 내부 추정이다. 내수가 살아나 이번 민생회복지원금 논의가 잠잠해지더라도, 거대 야당 구도에 따른 향후 확장재정과 추경 요구는 앞으로도 빗발칠 것으로 보인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지난달 19일 미국 워싱턴DC와 지난 4일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각각 “전국민 대상 현금 지원보다는 사회적 약자나 민생 어려움을 타깃으로 지원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추경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한편 정부의 추경안 편성 없이 국회가 단독으로 지원금을 지급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선 ‘위헌’ 논란이 먼저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야당에선 ‘처분적 법률’(處分的 法律·행정부의 집행이나 사법부 재판과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민에게 직접적으로 권리나 의무를 발생시키는 법률)을 들어, 민생회복지원금을 비롯한 각종 총선 공약의 강행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헌법에선 “예산편성권은 행정부에 있고, 국회엔 예산 심의·확정권만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재 기재부 예산실에서도 ‘처분적 법률’로 해당 법안 추진이 가능한지, 만약 국회에서 강제한다면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 내부 검토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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