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치료제 오젬픽과 비만 치료제 위고비가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면서 두 약품의 핵심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를 개발한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유럽에서 가장 가치 있는 회사로 성장했다. 노보노디스크의 시가총액은 5700억 달러 이상으로 덴마크 국내총생산(GDP)보다 크다. 문제는 노보노디스크에 대한 덴마크 경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제2의 노키아’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노보노디스크의 자선 재단이 가진 자산은 빌 게이츠 재단의 두 배로 세계 최대 규모다. 지난해 덴마크에 납부한 법인세는 23억 달러로 덴마크 내 최대 기업 납세자다. 노보노디스크의 막대한 투자와 생산 증가로 지난해 덴마크 GDP 성장률은 EU 평균의 4배 이상인 1.9%를 기록했다. 이렇듯 노보노디스크가 없었다면 덴마크 경제가 정체됐을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노보노디스크는 덴마크 안에서만 2만8000명을 고용하고 있고, 노보노디스크가 생산 시설을 확장하고 있는 만큼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예정이다. 직접적으로 노보노디스크와 관련이 없는 덴마크 사람들도 이 회사의 영향권 아래에서 사는 중이다. 덴마크 중앙은행이 오젬픽, 위고비 인기에 따른 수출 호황으로 금리를 낮게 유지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은 저렴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렇듯 덴마크에서 노보노디스크의 영향력 밖에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다. 노보노디스크의 의제는 교육 및 연구 우선순위에 영향을 미친다. 덴마크 정치권은 이미 정책, 새로운 인프라 개발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노보노디스크의 입장을 고려한다.
하지만 반대로 노보노디스크의 성장에 따른 경고음도 나온다. 포천은 “노보노디스크의 모든 움직임은 언론의 집중 관심을 받게 되므로 대중의 반발과 규제 변화에 특히 취약하다”며 “회사의 전략적 실수는 과학 연구, 덴마크 대학 졸업 예정자의 일자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이것이 ‘노키아 리스크’?…덴마크 일자리·부동산에 영향
노보노디스크가 계속 성장한다면 덴마크에서 발휘하는 힘과 영향력도 커질 것이다. 그러나 노보노디스크 경영이 위험에 처하면 덴마크 경제와 사회도 영향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노키아 리스크’라고 부른다.
한때 세계 1위 휴대전화 제조업체였던 노키아는 전성기에 핀란드 전체 GDP의 4% 담당했다. 노보노디스크와 마찬가지로 노키아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가치 있는 회사였고, 핀란드 전체 법인세의 5분의 1을 납부했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대를 준비하지 못한 노키아는 애플, 삼성전자에 밀려 몰락했고 핀란드 경제는 위축됐다. 2009년 유럽 부채 위기로 핀란드의 GDP는 8.1% 감소했는데, 노키아가 약 절반 정도 기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키아에 의존했던 핀란드 경제와 기업, 대학, 공공부문 역시 타격을 입었다.
노보노디스크는 이미 덴마크 경제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군 장교로 지원하던 이들이 노보노디스크에 입사하고, 노보노디스크가 위치한 덴마크의 작은 마을 칼룬보르그에 직원 수가 늘면서 임대 주택을 찾는 것이 어려워진 상태다. 이로 인해 칼룬보르그에 살고 있던 노인들이 임대료가 싼 곳을 찾아 떠나고 있다.
◇ 노보노디스크 CEO “잠재적 영향 커” 우려
노보노디스크 역시 이런 위험성을 인지한다. 라스 프루어가드 요르겐센 노보노디스크 최고경영자(CEO)는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스웨덴 동화 ‘삐삐 롱스타킹’을 인용해 “당신이 초능력을 가지게 되면 당신은 엄청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며 “노보노디스크의 결정이 덴마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상할 수 없지만, 덴마크와 다른 지역에 미칠 잠재적 영향이 크다”고 했다.
이에 대해 포천은 “겸손이 너무 깊이 뿌리박혀 있어 화려한 성공을 과시하는 것을 막는 비공식적인 사회 규범이 존재하는 덴마크 문화에서는 이런 엄청난 영향력이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노보노디스크는 과도한 관심을 받는 것을 경계하는 중이기도 하다. 노보노디스크는 지난해 9월 코펜하겐의 티볼리 가든 놀이공원을 임대해 이틀 동안 사내 행사를 열었다. 하지만 외부에서 이를 비판할 것을 우려해 직원들이 소셜미디어에 관련 사진을 요청하지 말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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