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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예능 ‘사상검증구역’, ‘백곰’ 박성민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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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의 ‘백곰’  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사진=박성민 전 최고위원 제공.
▲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의 ‘백곰’  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사진=박성민 전 최고위원 제공.

지난 1월 방영된 웨이브(Wavve) 오리지널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이하 ‘더 커뮤니티’)는 ‘정치’를 앞세운 서바이벌 예능이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출마에 도전한 정치인들 두 명이 출연했다. 과거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 사례에 비해 ‘이미지 세탁용’ 방송이라는 비판이 집중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이례적이다. ‘사상을 검증한다’는 포맷 자체에 대한 평가, 소수자 혐오 발언을 여과 없이 내보냈다는 비판적 지적 등 가볍게 흘려보낼 수 없는 지점들도 있다.

더 커뮤니티에 대한 다양한 평가는 그 안에서 리더 자리를 놓고 경쟁한 백곰(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과 슈퍼맨(김재섭 서울 도봉갑 국민의힘 당선자)에도 집중됐다. 백곰은 ‘좌파-우파’, ‘페미-이퀄’, ‘서민-부유’, ‘개방-전통’으로 나눠지는 사상 코드에서 ‘좌파-페미-서민-개방’의 사상 코드를 가졌다. 성향의 ‘극단성’에 따라 1~3점을 매기는 체계에서 총점 10점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서로의 사상 코드와 점수를 맞추면 상대를 탈락시킬 수 있는 커뮤니티에서 점수를 가늠하기 수월한 고득점자 백곰은 ‘종신 리더’를 맡았다.

▲  박성민 전 최고위원의 사상코드와 점수. 웨이브 정치 예능프로그램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유튜브 영상 갈무리.
▲  박성민 전 최고위원의 사상코드와 점수. 웨이브 정치 예능프로그램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유튜브 영상 갈무리.

‘정치 예능’의 경험이 현실 정치인에게는 무엇을 남겼을까.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난 백곰에게 물었다.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과 최고위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청년비서관을 거친 7년 차 정치인으로서 박성민은 이번 출연 경험이 극단으로 갈라진 우리 사회에 ‘나와 다른 사람과도 대화해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준 “씨앗”이 됐다고 말했다. 박 전 최고위원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했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 예능에 출연한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주변에 95% 정도가 뜯어말렸다. ‘선거 앞두고 하는 거 아니다’, ‘쇼츠로 영원히 고통받을 일 있냐’, ‘예능은 어떻게 편집돼서 나갈지 모른다’는 등 걱정을 들었다. 내 호기심이 걱정을 이겼다. 주로 시사·토론 방송을 많이 하니까 연령대가 높은 분들을 많이 만나는데, 젊은 정치인으로서 좀 더 대중성을 갖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정치 뉴스는 피곤해서 안보는 사람들과도 만나고 싶다는 고민이 있던 찰나에 섭외 요청이 왔다.”

▲ 웨이브 정치 예능프로그램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유튜브 영상 갈무리.
▲ 웨이브 정치 예능프로그램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유튜브 영상 갈무리.

-본인과 사상 코드가 정반대인 출연자 마이클(윤비)과 점점 친해지는 모습이 방송에 담겼다. 함께 촬영한 유튜브 리뷰 영상에서 ‘마이클의 실제 첫인상이 안좋았다’고 했는데.
“첫날에 윤비를 별로 안 좋아했는데, 어느새 윤비를 놀리고 윤비의 푸념을 들어주고 달래주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인지부조화가 왔다(웃음). 나중엔 ‘마며들었다(마이클에게 스며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코드가 같아도 대립각을 세우거나 코드가 정반대인 사람끼리도 대화가 잘 통하는 순간들을 마주했다. 이 모든 과정이 내 안에 편견과 선입견을 인정하면서 깨는 일이었다.”

-본인은 이 프로그램에서 어땠던 것 같나. 본방송 보며 아쉬웠던 점이 있나?
“좀 더 밀어붙여볼 걸. 특히 (탈락위기에 처한 이들을 위한) 탈락면제권을 나 외엔 아무도 내놓지 않는 상황 속에서 ‘면제권을 내놓지 않으면 100% 세금을 걷어버리겠다’ 등 압박을 해볼 걸 그랬다. 종신 리더가 부딪히고 깨지고 넘어지는 과정들을 더 솔직히 보여드렸다면 어땠을까 후회했다.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도 더 솔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정치인들은 기자에게 곤란한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되지 않는 선에서 답하고 입장을 정제해 말하는 게 습관화돼있다. 가령 제작진이 ‘열받았던 순간’에 대해 질문해도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거다.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카메라 너머의 시청자들과 교감하려는 틈을 많이 못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5일차에 ‘이주민’으로 설정된 캐릭터 바누(코마시 키미야)가 입주했다. 공금으로 이주민 정착금을 줘야 하는 설정에 거부감을 보인 출연자들도 있었는데, 이런 설정을 어떻게 생각했나.
“천재적 기획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민자라는 소재로 바누가 소모되는 것 같아 유쾌하진 않았다. 그 사람을 의도적 포지션에 가둔다고 생각했다. 바누가 처음 들어왔을 때 슈퍼맨(김재섭)이 바누에게 ‘당신의 정착금은 우리가 모은 돈에서 준 것’이라고 얘기했을 땐 엄청난 불쾌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바누는 소모되는 상징 그 이상의 역할을 했다. 공금을 받고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본연의 역할을 했던 능동적이고 주체적 인물이었다.”

▲ 5일차에 ‘이주민’으로 설정된 캐릭터 바누(코마시 키미야)가 입주했다. 웨이브 정치 예능프로그램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유튜브 영상 갈무리.
▲ 5일차에 ‘이주민’으로 설정된 캐릭터 바누(코마시 키미야)가 입주했다. 웨이브 정치 예능프로그램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유튜브 영상 갈무리.

-커뮤니티 내 서로를 배신하게 만드는 ‘불순분자’라는 존재도 주요 설정이다. 프로그램 내에서 불순분자의 역할이 뭐였다고 보나?
“‘불순분자’라는 이름이 커뮤니티에 존재했던 것만으로도 이미 역할이 시작됐다. 불순분자가 죽으면 또 생겨나는 시스템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나는 불순분자가 누구나 될 수 있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불순분자라고 생각하면 배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상대적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에 대한 편견을 정당화하는 데 우리의 선입견이 작동하고 있지 않나 싶었다.”

-불순분자로 의심받아 가장 먼저 탈락한 인물이 하마(하미나)다. 본인과 사상 코드도 같고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면서도 지속적으로 견제한 이유는 뭐였나?
“일단 하마한테 미안하다는 전제를 먼저 두고(웃음). 하마가 사라졌다 나타나는 순간들이 많았다. 알고보니 촬영이 힘들어서 개인적으로 좀 쉬다 온 거였는데 제작진과 내통한다고 생각했다. (하마가) 마이클이 그레이(전민기)와 다크나이트(이창준)의 호감도 투표 여부를 의심한 이른바 ‘호감도 사건’을 내게 말해주며 탈락면제권을 본인에게 써달라고 할 때가 있었다. 그때부터 경계심을 쌓아갔다. (바누 등장 전에 하마가) ‘이주민이 올 것’이라는 등 번뜩이는 이야기를 많이 꺼내서, 제작진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얘기라고도 생각했다.”

-커뮤니티에서 ‘기자’를 맡은 낭자(이수련)는 불순분자 벤자민(임현서)과 손잡았다. 불순분자 정보를 입주자들에게 알려주지 않으며 ‘엠바고’(일정시점까지 보도 유예)도 걸었다.
“처음엔 낭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낭자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며칠 내내 보였고, ‘엠바고 사건’ 뒤로 우리와 멀어지면서 오히려 진실로 다가가기엔 너무 멀어져버렸다. 기자는 불순분자에 맞설 수 있는 우리의 유일한 ‘절대 반지’였다. 기자가 우리를 위해 써줄 수 있는 힘을 우릴 위해 쓰지 않았다는 게 뼈 아픈 지점이다. 나와 슈퍼맨은 유별나게 기자에게 매일 브리핑해달라는 얘기도 했었는데, 그 사람이 갖는 정보의 가치에 대한 책임이고 우리의 권리라고 생각했다.”

▲ 커뮤니티에서 ‘기자’를 맡은 낭자(이수련)는 불순분자 벤자민(임현서)과 손잡았다. 웨이브 정치 예능프로그램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유튜브 영상 갈무리.
▲ 커뮤니티에서 ‘기자’를 맡은 낭자(이수련)는 불순분자 벤자민(임현서)과 손잡았다. 웨이브 정치 예능프로그램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유튜브 영상 갈무리.

-종신 리더를 뽑는 과정에서 커뮤니티가 백곰-슈퍼맨의 양당 체제가 됐다.
“슈퍼맨(김재섭)은 자기 말에 확신이 있는 사람이다. ‘위선 떨지 않겠다’, ‘불편한 소리 대신해주겠다’는 말들은 입밖으로 못 내지만 다 한 번씩 해보는 생각들이다. 슈퍼맨이 그 본능과 이기심을 잘 건드렸다. 내가 선택한 건 생존 욕구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으로, 남을 죽이고 돈을 독식하는 이기적인 생존이 아니라, 다함께 살아남는 다정한 공존에 대한 공통의 의지와 가능성을 발견했다. 생존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면서 불안감을 느끼는 주민들을 포용해 마음을 얻고 나아가고 싶었다.

슈가(김나정)가 인터뷰에서 ‘밖에 있었으면 슈퍼맨을 선택했을 텐데 커뮤니티 안에 있어서 백곰을 선택했다’고 말한 게 기억에 남는다. 참가자들은 돈도 잘 벌고 사회적 지위가 어느정도 있는 분들이다. 생존이 간절해지고 두려움을 느끼고 돈이 없어지는 빈곤을 경험하면서 국가와 리더에겐 어떤 역할이 필요한지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부유한 출연자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정말 평범한 서민 목소리는 담기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방송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참가자들 면면이 구성된 게 아닌가 싶다. 배심원제처럼 외부인들이 참여하는 미션을 수행하게 하거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쓰고 평가를 받는 미션들이 시청자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부족한만큼 시청자분들이 남겨주시는 다양한 의견과 일상에서 하는 토론들이 저희 프로그램의 아쉬운 부분을 보강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제로 정치인들의 삶 자체가 평범한 사람들과의 삶과는 굉장히 거리가 멀다. 결국 유권자들을 만나는 노력과 연결된다. (평범한 시민들과) 만나서 대화하려는 노력과 일상의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는 고군분투가 더 좋은 정치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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