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견고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반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침체)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예상을 하회했지만, 1분기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지난해 4분기보다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에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쉽게 금리 인하에 나서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뉴욕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미국 상무부는 25일(현지 시각) 올해 1분기 GDP 증가율(속보치)이 연율 1.6%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4분기(3.4%)와 비교하면 성장률이 급격하게 하락한 것으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시장 전망치(2.4%)보다 낮다.
문제는 GDP 성장률과 함께 발표된 1분기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다. PCE는 올해 1분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 분기 수치(1.8%)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며, 최근 일 년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이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 부문을 제외하면 PCE는 1년 전보다 3.7%(예상치 3.4%) 상승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분기 경제 지표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는 연준의 노력이 정체돼 있음을 보여줬고 연착륙이나 경제 성장이 완만하게 둔화하고 있다는 금융 시장의 축하는 시기상조였음을 알 수 있다”며 “경착륙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LPL 리서치의 수석 글로벌 전략가인 퀸시 크로스비는 워싱턴포스트(WP)에 “시장이 걱정하는 것은 스태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있다는 암시”라며 “경제는 여전히 견고하지만, 예전만큼 뛰어나지는 않을 것이고, 문제는 경제가 계속 견고하게 유지될지 여부”라고 짚었다.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침체 이후 미국 경제는 예상보다 훨씬 강하게 반등했다. 실업률은 3.8%로 1970년대 이후 가장 오랫동안 낮게 유지되는 중이다. 임금도 오르고 있으며 그 덕분에 가계, 기업, 정부는 지출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인들이 지난해보다 더 많은 돈을 벌면서 더 많이 지출하고 저축은 줄였다. 1분기 가처분 소득은 1.1% 증가했으며, 소득의 평균 3.6%를 저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4분기 4%보다 감소한 것이다. 물론 여행, 레스토랑, 콘서트에 대한 지출이 늘면서 인플레이션 상승을 부추겼다.
◇ 연준 금리 인하 시점 지연 예상, 횟수도 2번 이하로 줄어들 듯
인플레이션이 완고한 것으로 확인된 만큼, 연준이 이르면 올해 9월이 아닌 11월이나 12월에야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금리 인하 횟수도 올해 3번이 아닌 2번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WSJ에 따르면 워싱턴 소재 정책분석업체인 LH메이어는 연준이 오는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1회 인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초 6월부터 3회 인하에서 9월부터 2회 인하로 수정했고, 인하 전망 시점 역시 뒤로 늦췄다. LH메이어의 분석가인 케빈 버겟은 “우리는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2%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연준이 금리 인하를 향해 가고 있고 올해 인하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하지만 올해 인하 횟수는 더 적어지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WSJ는 “일반적으로 경제 성장률이 저조하면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희망이 커지지만, 지속적인 물가 압력으로 전망이 복잡해졌다”고 봤다. NYT는 시장 전문가들의 견해를 토대로 “연준은 금리를 ‘더 오랫동안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금리를 더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KPMG의 다이앤 스웡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NYT에 “현재 연준이 통화 정책의 감옥에 갇혀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날 1분기 GDP와 인플레이션 지표 발표 후 국채 수익률이 급등하며 뉴욕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0.98% 내렸고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각각 0.46%, 0.64% 떨어졌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