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노동자들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외주노동자를 비롯한 출판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면담을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였다. 유인촌 장관은 이 자리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출판노동조합협의회와 면담을 약속했다.
출판노조협의회 등 출판·문화예술노동자 10명가량은 23일 ‘세계 책의 날’ 행사가 진행되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현장에서 유 장관에게 출판노동자들과의 대화를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열었다.
이날 행사를 앞두고 현장에 배치된 경비·경찰 관계자들은 피켓을 가지고 행사장 뒤쪽에 앉아 있던 출판노조 활동가들에게 “피켓을 들고 앉아있으면 우리가 불편하다. 나가있으라”고 했다. 문체부 관계자도 “유 장관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라며 시위 중단을 요구했다. 문체부 출판인쇄독서진흥과장은 ‘지금 만났으니 밖에서 이야기를 하자’고 말한 뒤 오는 5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면담을 약속하기도 했다.
피켓 시위는 유 장관 도착을 앞둔 정오무렵부터 본격화했다. “(유 장관이) 출판 현장 목소리를 듣겠다는 간담회에서 출판사 단체들을 만났지만 출판노조는 만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들과 마주친 유 장관이 “안 만난 적이 없다. 그런 걸 몰랐다. 출판노조가 이렇게 뭘 하는지는 몰랐다”며 “간단하게 얘기를 해 줘봐”라고 하면서 짧은 대화가 오갔다.
이 자리에서 안명희 출판노조협의회 의장(서울경기출판지부장)은 “출판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너무나도 열악한 상황이다. 그 열악한 상황은 문체부 실태조사에서 이미 확인됐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조는 노사정이 만나 대화해보자고 요구했다. 그런데 장관님께서 인사청문회때 ‘노사가 먼저 합의해오라’고 말했고, 그러고 난 뒤 문체부가 우리를 만나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장관님이 (출판 간담회에서) 출판단체를 만난 것처럼 노조를 만나 현장의 이야기를 들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에 유 장관이 “오케이, 좋다. 그건 만나서 얘기하면 된다”고 답하자, 안 의장이 “일정을 정해주면 좋겠다”고 구체적 약속을 요구했다. 그러자 유 장관은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이건 출판사와 여러분과의 관계이지 않나”라고 다시 반문했고, 안 의장은 “아니다. 정부와 관계가 있다. 표준계약서와 임금문제, 환경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피켓 시위에 참여한 김원중 서경출판지부 사무국장은 유 장관에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매년 내는 출판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몇 년 째 노동환경이 빠졌다”며 “문체부가 출판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돌아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출판 현장에서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가 잇따른 현실을 고려해 정부의 세종도서 선정에서 제외하는 조건(현 임금체불 여부)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도 했다. 안 의장의 경우 출판진흥법 개정 및 예술인권리보장법 등 출판노동자 노동권을 뒷받침할 제도 강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를 들은 유 장관은 다시금 “오케이, 알았어”라고 했다.
안 의장이 거듭 “이렇게 많은 분이 계실 때 장관님이 우리를 만나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으면 좋겠다”고 하자 유 장관은 “약속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시라. 여러분 다 들으셨다”며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을 정리해 의논하자”라고 했다.
유 장관은 또한 “내가 15년 전에도 이렇게 대문간에서 다 만났다”라며 “누가 문화부(문체부) 앞에 고생하고 1인 시위하고 이러면 나는 항상 만나서 진정성을 가지고 얘기했는데, (취재진을 가리키며) 꼭 이렇게 찍어서 나쁜 것만 잘라서 인터넷에 띄우는 거다. 그래서 협상이 잘 안 된다. 왜냐면 싸움이 돼 갖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문체부 산하 출판진흥원은 출판노조 요구 끝에 출판 ‘외주노동자 근로환경 실태조사’를 진행해 지난 2월 보고서를 발표했다. 조사에선 현재 신간의 33%를 맡는 외주 노동자들의 절반이 계약서 없이 일하고 작업단가 20여년 동결, 장시간 과로를 겪는 등 열악한 실태가 확인됐다. 출판노조는 사에 따른 후속 개선 논의를 위한 면담을 요구했으나 문체부가 응하지 않으면서 책의날 주간을 맞아 2주간 선전전을 벌여왔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출판계 표준근로계약서와 출판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단체교섭과 노사정 대화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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