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흔들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위시한 야당은 민심(民心)을 등에 업었다며 연일 압박 수위를 높이고, 여당인 국민의힘마저도 대통령 책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올해 주요 7개국(G7) 의장국인 이탈리아는 초청국 명단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했다. 또 ‘국민 뜻을 겸허히 받들겠다’며 시작한 국정 쇄신은 대통령실 안팎 잡음만 무성한 채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 지지율(국정수행 긍정평가)도 취임 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한국갤럽이 지난 16~18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상대로 한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의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23%에 그쳤다. 34%였던 직전 조사(3월 26~28일) 대비 11%포인트(p) 하락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한 전국지표조사(NBS)도 긍정평가는 27%에 불과했다. 이 역시 직전 조사(4월 1~3일)보다 11%p 낮은 수치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더 큰 문제는 공직사회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한 대통령실 수석비서관급 이상 참모진이 사의를 표명한 틈을 타 ‘밥그릇 싸움’이 시작됐다.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편성 권한을 둘러싼 이전투구가 대표적이다. R&D 예산이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의 ‘아킬레스건’으로 부상했던 것을 비춰보면 대통령실 입장에선 더욱 뼈아프다.
정부 예산안은 국가재정법에 따라 기획재정부를 통해 제출된 정부안이 국회에서 의결되는 절차를 거친다. 다만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R&D 분야 특성상 R&D 예산안 수립은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라 과기부 내 과학기술혁신본부가 맡는다.
그런데 총선이 끝나자 바이오분야 등 일부 R&D 예산 배분·조정을 과기혁신본부가 아닌, 국무총리실 산하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 등 전문위원회로 이관하려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과기혁신본부가 R&D 예산 전체를 맡으면서 분야별 전문성이나 현장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과기혁신본부에 필요한 R&D 예산을 신청한 뒤 승인을 받아야 하는 각 부처 입장에선 반색할 만한 일이지만, 기초연구 강화, R&D 예산 편성의 일관성은 무너질 수 있다.
여기에 관련 산업 규제개혁을 위해 구성된 총리실 산하 전문위원회가 예산에만 눈독을 들인다는 지적까지 제기된다.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부터 민간위원으로 국내 주요 바이오헬스기업 대표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어, 기업의 ‘나눠먹기식’ R&D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학기술계 한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지적하고 대통령실이 개선을 약속한 나눠먹기식 R&D와 카르텔, 부처 이기주의가 한꺼번에 나타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안팎에선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비서관이 이를 중재하고 바로잡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않다는 이야기까지 흘러 나온다. 박 수석은 총선 후 윤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대통령실 고위직 중 한 명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 반년동안 강조했던 R&D 혁신이 여당 총선 참패 후 흔들리는 셈이다.
이우일 과학기술혁신자문위원회 부위원장은 “정부 R&D는 국가의 발전 방향에 맞춰 융합하고 일관성 있게 가야하는데, 이러한 행태는 예산을 나눠먹겠다는 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면서“지금은 바이오 1개 분야에서 아이디어 차원으로 나온 얘기라지만, 다음에는 산업부, 농림부, 해수부, 환경부 등 모든 부처가 예산 권한을 달라며 달려들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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