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1일 조선일보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도 ‘86정치’ 청산과 세대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본격화되고 있다. 여권에선 ‘넥스트 라이트(Next Right·새로운 우파)’의 부상이 뚜렷하다”며 “1973년생인 한동훈 위원장”을 ‘넥스트 라이트’의 중심으로 거론했다.
1월2일 <‘한동훈 효과’ 현실화…2030 여성 44%가 “與 총선에 도움될 것”>에선 한 위원장이 여권 지지가 약한 2030여성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넥스트라이트는 기존 올드라이트와 뉴라이트를 대체하는 새로운 우파세력을 뜻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넘지 못하면서 총선을 앞두고 새로운 ‘얼굴’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반면 지난해 12월28일 <이준석 탈당, 희망 줬던 ‘청년 정치’의 결말은 결국 이렇게>에서 “(이준석이) 더 성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고, 이후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당시 개혁신당 정강정책위원장)에 대한 기사는 눈에 띄게 줄었다. 그동안 보수진영에서 새로운 세대의 유력 정치인으로 이준석 대표 주목받던 상황에서 올초 조선일보는 이준석을 지우고 한동훈을 띄웠다고 볼 수 있다.
[관련기사 : 이준석 지우고, 한동훈 띄우는 조선일보]
조선일보가 ‘넥스트 라이트’로 한동훈을 지목하면서 보수 진영의 새로운 리더로 띄웠지만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참패했다는 평을 받는다. 총선 다음날인 지난 11일 조선일보는 경기 화성을에서 당선된 이준석 대표를 인터뷰해서 12일자 지면에 실었다. 총선 직후 이 대표를 먼저 찾았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의미가 크다.
조선일보는 그 다음날인 13일 더불어민주당 강세 지역인 서울 도봉갑에서 당선된 김재섭 국민의힘 당선자를 인터뷰해서 지면에 실었다. 김 당선자는 국민의힘 강세지역인 강남이나 접전 지역인 한강벨트가 아닌 곳에서 당선됐고, 30대 정치인이기에 참패한 국민의힘 내에서 오히려 더 돋보이고 있다.
동아일보가 12일자 선거면에서 김재섭 당선자를 직접 만나 진행한 인터뷰를 톱기사로 싣고 같은면 하단에 이준석 대표와 전화 통화 내용을 짧게 실은 것을 보면 조선일보가 이 대표를 더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2일자 이 대표의 조선일보 인터뷰 내용에도 주목할 부분이 있다. 조선일보가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다음 대선에 출마하나”라고 묻는다. 이 대표는 일단 2년 뒤에 있을 지방선거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는데 중요한 건 대답이 아니라 이 대표를 잠재적 대선 후보로 명시한 부분이다. 예상 가능하듯 장기적으로 현재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이 연합 내지 합당한 형태의 대선후보를 전제한 질문이다.
해당 인터뷰에서 조선일보는 “앞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설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고 이 대표는 “차기 당대표가 선출되는 전당대회까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윤 대통령이 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어떤 교훈을 얻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변해야 연합 내지 합당이 가능하다는 예상 가능한 답변이지만 대선 출마 관련 질문과 연결해보면, 윤 대통령이 대선 이후 보수진영의 다양한 세력을 해체해온 것을 앞으로 모아서 연합해가야 한다는 게 조선일보의 관점이다.
조선일보가 이 대표의 개혁신당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교섭단체를 만드는데 이 대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현재 민주당과 더불어민주연합, 국민의힘과 국민의미래 등 거대 양당을 제외한 제3당이 20석을 모아 교섭단체를 꾸릴 것인지는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조국혁신당이 12석, 더불어민주연합에서 소수정당이 진보당 3석, 기본소득당 1석, 사회민주당 1석 등 5명,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명이다. 개혁신당을 빼면 범민주진보 진영의 의석만으로 20석을 채우기 어렵다. 개혁신당이 제3의 교섭단체를 만들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여의도 일각에서 더불어민주연합에서 시민사회 추천 2명(서미화·김윤)이 민주당으로 흡수되지 않고 조국혁신당 등과 교섭단체를 꾸릴 것이란 전망도 나오지만 더불어민주연합이 민주당에서 만든 정당이기 때문에 가능성은 높지 않다.
조선일보는 선거 직후인 지난 12일 선거면 톱기사 <12석 조국당, 민주 비명계 규합해 구성하나>에서 “이재명 대표의 연임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친명 일색’인 당 상황에 대한 이견과 피로감이 분출, 일부 현역이 조국혁신당으로 건너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지역구 1석을 확보한 새로운미래도 연대 대상인데 이렇게 되면 조국혁신당이 비명계 단독 교섭단체를 구성, 향후 야권 개편의 축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거대 양당을 제외한 나머지 당들의 교섭단체가 아닌 민주당 내부의 분열을 전제한 교섭단체 구성 전망이다. 선거 직후 보도는 향후 담론을 만들어가는데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데 조선일보의 이러한 보도는 이 대표가 ‘반윤석열’ 전선을 이유로 조국혁신당 등과 연대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면서 민주당 혹은 민주진보진영 내 분열을 언급한다는 점에서 전략적이다.
교섭단체 구성까지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선거 이후 10여일이 지난 가운데 겉으로 드러난 현상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 이 대표의 연대 행보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 이 대표를 포함해 6개 야당은 지난 19일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조사 외압 의혹 특검법 통과를 위해 정부와 여당을 압박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20일자 조선일보는 해당 소식을 전하면서도 이 대표가 “조국혁신당의 정책 지향을 모르기 때문에 섣불리 (교섭단체 구성에 대해) 섣불리 단언할 수 없다”며 “지향이 달라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는 발언을 함께 전했다.
여러 이유로 이 대표를 주목하는 사이 조선일보는 지난 12일 한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직을 사퇴한 이후 13일부터 20일까지 지면에서 한동훈이 제목에 등장하거나 그를 정면으로 다룬 기사는 1건 뿐이었다. 20일 <“이번엔 쉬어야” “여론이 부르면…” 與, 한동훈 재등판 놓고 와글와글>에서 한 위원장 재등장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과 조기등판 가능성을 함께 전하고 있다. 적어도 총선 직후 정치인 한동훈은 연초 조선일보가 점찍었던 ‘넥스트라이트’ 리더 자격은 상실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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