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윤철순 기자】 전쟁 같았던 총선이 집권 여당의 궤멸적 참패로 끝났다. 4년 임기의 국회의원 300명을 새로 선출하는 제22대 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와 비례정당을 합해 총 175석을 쓸어 담았다. 반면, 국민의힘은 108석을 얻는데 그치며 간신히 탄핵·개헌 저지선을 사수했다. 창당 한 달 만에 돌풍을 일으키며 12석을 석권한 조국혁신당은 ‘태풍의 눈’으로 부상했다. ‘제3지대’가 전멸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개혁신당은 3석을 확보하며 존재감을 드러냈고, 진보당과 새로운미래는 각각 지역구 국회의원 1명씩을 배출했다. 이로써 22대 국회는 ‘완벽한’ 여소야대(與小野大) 구도가 됐다. 정부여당 입장에선 단독 개헌 및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200석을 저지하긴 했지만, 정국 주도권은 야권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총선 압승을 동력으로 당장 ‘채상병 특검’을 전면에 세운 야권은 40여일 남은 21대 국회 마지막까지 윤석열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식물 대통령’이 돼버린 윤석열 대통령은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을 것인가. 총선 이후 정국을 전망해 본다.
총선 결과
4·10 총선 결과 민주당은 단독 과반을 훌쩍 넘겼고, 범야권은 전체 192석의 ‘거대’ 진영을 구축했다. 국민의힘은 직전(2020년 총선) 결과(103석)보다 5석 늘었지만, 극단적인 여소야대 상황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민주당은 지역구 161석과 비례(더불어민주연합) 14석을 포함, 총 175석을 확보했다. 엄밀히는 비례의석 중 시민사회 몫(2석)과 진보당(2석), 새진보연합(2석) 의석을 뺀 169석이다. 국민의힘은 텃밭인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 등을 석권하며 지역구(90석)와 비례정당(국민의미래 18석)을 합쳐 108석을 얻었다. 총선 한 달여를 앞두고 ‘혜성’처럼 등장한 조국혁신당은 민주당과의 ‘쌍끌이 전략’으로 비례 12석을 견인하는 기염을 토했다. 개혁신당은 합당·결별 등의 진통 끝에 지역구 1석과 비례대표 2석을 확보했고, 새로운미래는 ‘어부지리’로 지역구에서 1석을 챙겼다. 민주당 주도의 비례정당에 참여한 진보당은 비례 2석에 이어 지역구에서도 1석을 추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집권당에 유리한 선거
국민의힘이 얻은 지역구 의석(90석) 가운데 3분의 2는 ‘보수의 성지’로 불리는 대구·경북(25석)과 전통적 텃밭이라 할 수 있는 부산·경남·울산(34석)에 몰려 있다. 이 결과는 지난 21대 총선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는 집권당이 유리하다. 이를 반증하듯,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 직전까지 전국을 돌며 24차례의 민생토론을 통해 1000조원이 넘는 공약을 쏟아 부었다. 국민의힘 역시 ‘여당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 굵직한 토목 사업 등을 제시하며 표심을 공략했다. 그럼에도 집권당은 역대급 참패를 당했다. 이유가 뭘까.
“尹 오만과 불통이 총선 망쳐”
여론은 가장 먼저 윤석열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을 꼽았다. 조선일보는 총선 이튿날 사설에서 ‘정권 심판론이 선거판을 흔든 건 여권의 큰 정책 잘못이나 권력형 비리 때문이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 리더십 때문’이라고 규정했다. ‘이번 총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심판 받았다’고 명시한 조선일보는 대통령을 향해 ‘사면초가 상황에서 어떻게 국정을 해나갈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역시 마찬가지 스탠스였다. 이런 기조는 보수지는 물론, 레거시 미디어들의 공통된 논조다.
실제 여론조사도 여당의 총선 패배 책임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으로 나왔다. 미디어토마토는 총선 직후인 지난 13~14일 ‘국민의힘 총선 패배 책임’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68%가 ‘윤석열 책임이 크다’는 답변이 나왔다고 발표했다. 한동훈의 잘못을 인정한 비율은 10%에 그쳤다. 이 조사는 만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17명을 대상으로 실시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휴대전화 가상(안심)번호를 활용한 무선 ARS(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6.8%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레임덕 넘어 ‘데드덕’
정치평론가들은 한결 같이 정권의 레임덕을 우려한다. ‘정치컨설팅 민’ 대표 박성민은 지난 13일 “국민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평가했다. 언론 기고를 통해서다. 박성민은 “윤 대통령은 레임덕을 넘어 사실상 ‘데드덕’ 상황”이라며 “조국혁신당이 ‘3년은 너무 길다’며 윤석열 정권의 조기종식을 주장했지만, 남은 3년이 정말 길다고 느낄 사람은 어쩌면 윤석열 대통령일지도 모른다”고 논평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을 ‘총선 패배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하며 “역사상 가장 무력한 대통령으로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지난 2년은 총선을 앞둔 상황이라 당이 대통령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며 “관료와 권력기관도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는 신평(변호사)은 <시사오늘>을 통해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총선을 자신의 대권 예행연습으로 삼아 패배를 자초했다”면서 “여당이 특단의 획기적 돌파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지방선거와 대권 모두 야당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거국내각’ 구성을 촉구했다. 신평은 “기득권 집단들의 촉수를 풀어가는 과감한 정책을 실현해야 한다”며 “그것이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대통령으로 남는 최선의 방법이다. 할 수 있는 길은 그 길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정치평론가 박상병(인하대 교수) 역시 ‘윤석열 정부가 동력이 빠졌다’면서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나 장관 임명 강행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각 부처 공무원들도 말을 듣지 않을 것이고, 국민의힘도 대통령 눈치를 안 볼 것이다. 사실상 레임덕이다. 식물정부로 들어선 것”이라고 단정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국정 기조를 바꿔 미래를 위한 동력을 얻는 길밖에 없다”며 “여야정 협의체 같은 것을 구성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충고했다.
‘대권 놀이’…홍준표의 맹폭
당 안팎의 비판 목소리는 더 거칠다. 총선 직전부터 ‘한동훈 한계론’을 제기해 온 홍준표(대구시장)는 선거 직후 이번 총선을 총괄 지휘한 한동훈(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겨냥해 “탄핵의 강을 건너 살아난 당을 한동훈이 들어와 말아먹었다”며 “총선 기간 내내 대권놀이를 했다”고 직격했다. 홍준표는 “당원들 속에서 셀카 찍는 것만 봤다. 전략이 있었느냐”고 맹폭했다. 이보다 앞선 4월 13일엔 “총 한 번 쏴본 일 없는 병사를 전쟁터에 사령관으로 임명한 것”이라며 “출발부터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제2의 윤석열 기적’을 노리고 한동훈을 데려온 것이었는데, 국민이 한 번 속지 두 번 속느냐. 선거를 주도한 여당 대표가 책임을 져야 하고, 총선을 책임지게 한 국민의힘도 잘못된 집단”이라며 싸잡아 비판했다. 그러면서 “역대급으로 참패하는 선거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앞으로가 더 큰 일”이라며 “조국까지 (국회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제는 걷잡을 수 없게 됐다”고 우려했다. 한동훈은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선거 이튿날 전국 개표가 완료되기도 전에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개싸움’ 이전투구
홍준표의 한동훈 비판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지난 4월 18일엔 “(한동훈은) 윤 대통령의 그림자였지, 독립 변수가 아니었다”며 “주군(윤석열)에게 대들다 폐세자가 됐을 뿐, 당내외 독자 세력은 전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보다 앞선 4월 15일에도 “철부지 정치 초년생 하나가 셀카나 찍으면서 나홀로 대권놀이를 했다. 우리에게 지옥을 맛보게 한 한동훈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또다시 ‘한동훈 책임론’을 띄웠다.
그러자 이번엔 한동훈의 영입인사였던 김경률(회계사)이 화살을 대통령실로 돌리며 홍준표를 저격했다. 김경률은 같은 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대통령실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면서 “100을 놓고 본다면 전체 책임을 20대 80에서 30대 70 정도”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홍준표의 언행을 ‘개’에 빗대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김경률은 “홍준표 시장의 일련의 증상들에 대해 제가 굳이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라면서 “저건 ‘개통령’이라는 강형욱 씨가 답변하는 게 맞다. 강형욱 씨가 제일 정확히 알 것”이라고 홍준표를 정조준했다. 이에 홍준표는 “세상 오래 살다 보니 분수도 모르는 개가 사람을 비난하는 꼴도 본다”고 응수했다.
총선 참패 책임론이 ‘개싸움’으로까지 번지자 대중의 반응은 그야말로 싸늘하다. 관련한 포털뉴스 댓글 창엔 “개판”이라는 답글부터 “총선에서 대패하고도 정신 못 차리고 내부 총질이나 하며 자중지란 하는 꼴을 보니 나라의 앞날이 암울하다”, “차라리 정권 내놓고 다시 시작하자”, “개싸움은 투견장에서”라는 등의 비난 글이 쇄도했다.
예견된 참패
부산시장을 지낸 부산 북구갑 출마자 서병수는 낙선 이틀 만에 “국민의힘은 오만했다”며 당을 향해 “대통령실 뒤치다꺼리에만 골몰했다”고 맹폭했다. 서병수는 페이스북에 ‘자신이 부족했다’고 자성하면서도 “(이번 총선 결과는) 민주당이 180석, 국민의힘이 103석을 얻어 참패했던, 2020년 4월 국회의원 선거로 되돌아간 꼴”이라며 허망해했다. 그러면서 “그 4년 동안 우리는 2021년 4·7 보궐선거에서 승리했고,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고,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 그 모든 승리가 국민의힘이 잘했다고 국민께서 선택해주신 결과가 결코 아니었다. 그렇지만 국민의힘은 오만했다”고 지적했다.
정옥임(전 새누리당 의원)은 총선 하루 뒤 YTN에 나와 “심각한 위기상황”이라고 평가하며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경고음이 나왔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총선 결과는) 그 경고음이 제대로 반영 안 된 결과로, 결국 정권심판이 주요 화두가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선 “(대통령실 인사 교체 시) 대통령 입장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인사가 아닌, 야당도 환영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적극 등용해야 한다”면서 “야당과 협조를 모색하고 노력한다는 인식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박정훈 무죄’=윤석열 탄핵
윤석열 대통령에게 쫓겨나듯 국민의힘을 뛰쳐나와 당을 새로 만든 이준석(개혁신당 대표)의 평가는 더 가혹했다. 이번 총선 경기 화성을에 출마한 이준석은 당선 이틀 뒤 TV조선 유튜브 방송에서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언급하며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대령)이 무죄를 받을 경우, 윤석열 대통령은 탄핵 사유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준석은 “(무죄가 나온다면) 박정훈이라는 제복 군인의 명예를 그냥 대통령 권력으로 짓밟은 것이다. 젊은 세대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준석은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변하지 않으면 임기단축 개헌상황이 올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그는 자신이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발언한 ‘다음 대선이 3년 남은 게 확실하냐’고 했던 이유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께서 이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실지 모르겠다. 박근혜 (전) 대통령께서 2016년 총선이 끝난 다음, 물론 최순실 건이 터지고 했지만 국정을 반전시키지 못하고 특검에 탄핵까지 쭉 밀려간 것”이라면서 이렇게 전망했다. 특히 그는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남은 대통령 임기) 3년은 너무 길다고 발언했다. 명확히 탄핵하겠다는 것”이라며 “(국정을 반전시키기 위해) 결국 개헌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께서 변화가 없으시면 임기단축 개헌이라든지. (그런 사안을) 선제적으로 던지지 않으면 국민이 바라봐 주지도 않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건희 특검’, 전향적 검토”
당내에선 터져 나오는 비판과 함께 그동안 잠복해있던 ‘대통령실 책임론’까지 불거지며 당정 관계 재설정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총선 직후 사의를 표명한 한덕수(국무총리)와 대통령실 고위 참모진 사퇴로는 부족하다며 내각 총사퇴 주장까지 나온 상황이다. 경기 성남분당갑에서 4선 고지에 오른 안철수(국회의원)는 총선 이틀 뒤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작심한 듯 “모두 자진사퇴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번 총선 결과를 바탕으로 질책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인사도 인사지만, 국정 기조를 전면적으로 혁신하고 대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안철수는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 표결에 부쳐질 경우, “개인적으로 찬성할 것”이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국민의힘 험지인 서울 도봉갑에서 16년 만에 보수정당 깃발을 꽂은 김재섭 당선인은 대통령 부인(김건희) 특검에 대한 전향적 태도를 촉구했다. 김재섭은 “국민의힘이 그동안 정부와 대통령실에 종속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다”며 ‘김건희 여사 특검’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재섭은 “김 여사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국정운영에 많은 발목을 잡았다”며 “국민의 요청을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 전향적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다시’ 비대위
이런 가운데, 한동훈의 사퇴로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게 된 윤재옥(원내대표)은 당 수습을 위해 4선 이상 중진 당선자들과 4월 15~16일 연이어 만났다. 윤재옥은 “중진 간담회와 당선인 총회를 시작으로 최선의 위기 수습 방안을 찾기 위한 과정을 밟겠다”고 밝혔다. 그는 “108석이라는 참담한 결과에 어떤 변명도 있어선 안 된다. 국민들께서 주신 회초리는 달게 받아야 한다”면서 “총선 이후 국민들께서는 우리 당이 어떻게 거듭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뼈저리게 반성하고 재탄생하는 모습을 보일 것인지, 분열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일 것인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간담회와 당선자 총회를 거쳐 나온 대책은 ‘또 비대위’였다. 국민의힘은 이달 16일 당선자 총회를 열어 윤재옥을 중심으로 한 ‘실무형 비대위’를 꾸리기로 합의했다. 당헌·당규상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등을 실시하기 위해선 비대위 구성이 필수라는 명분이다. 윤재옥은 “혁신형 비대위를 할 상황이 아니다”고 설명했지만, 대책이 나오기도 전에 비관론이 먼저 터졌다.
‘영남자민련’ 우려 확산
당내에선 총선 결과가 21대와 마찬가지로 텃밭인 영남권에 치중되면서 ‘영남자민련’으로 쪼그라들었다는 우려까지 확산되고 있다. 4년 전 총선부터 인구 과반이 밀집한 수도권과 충청권을 잇달아 민주당에 내주면서 이런 양상이 굳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당의 향후 진로를 결정할 키를 영남권 의원들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4선 이상 중진들은 또다시 비대위를 꾸려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겠다지만, 윤재옥을 비롯한 이날 모인 중진 당선자 절반 이상이 영남권으로 이런 분위기로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제기된다. 지역구 당선자 90명 중 영남권 비중은 59명으로 70%에 가깝다. 이는 21대 때보다도 5%가량 증가한 수치다. 향후 당 운영이 영남권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란 예상이 가능해지는 대목이다. 영남권 당선자들은 ‘친윤석열계(친윤계)’가 주를 이룬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 남구에서 재선에 성공한 친윤 박수영은 페이스북에 “참패는 했지만 (4년 전 총선보다) 의석은 5석 늘었고 득표율 격차도 5.4% 줄었다”며 “싹 바꾸기보다는 의정 활동에 충실해야 한다”고 적었다. 이를 두고 ‘정신 못 차리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영남과 수도권 의원들 간 인식 차를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수도권 비윤계 당대표?
이번 비대위 결정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주호영·정진석·한동훈 비대위 등 세 차례나 임시 체제로 집권당이 운영된 만큼, 최대한 ‘관리형’으로 짧게 가져가면서 가급적 조기 전대로 당대표를 빨리 뽑자는 취지다. 이렇게 되자, 당정(黨政)·거야(巨野)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가늠자가 될 당권 경쟁에 관심이 쏠린다. 6월 말~7월 초로 예상되는 전당대회에 누가 출마하느냐에 따라 이 문제는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번 총선 참패로 친윤계에 쏠렸던 당내 역학 관계에 변화가 감지되면서 비윤계의 활동 공간은 넓어질 전망이다. 대표적인 비윤계로 분류되는 나경원(서울 동작을 당선인)과 안철수, 윤상현(인천 동구미추홀 당선인) 등은 이번 총선에서 거센 심판론 바람을 이겨내고 수도권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이들 모두 21대 국회서 친윤계 견제를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22대에서 비윤계를 대변해 목소리를 키울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16년 만에 민주당 텃밭에 국민의힘 깃발을 꽂은 서울 도봉갑 김재섭과 경기 포천·가평 김용태 같은 수도권 30대 당선자들도 비윤계 선봉에 설 가능성이 크다. 두 사람은 그동안 정부와 여당을 향해 ‘쓴소리’를 해왔던 인사들이다. 당내에서 수도권 비윤계 당선자들에게 당권을 주자는 주장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보수층에만 어필하면 당선되는 영남 지도부로는 수도권에서 선택받는 당으로 거듭날 수 없다는 얘기다. 다만, 출마가 거론되는 당사자들은 현재까지 신중모드다.
그러나 지역구 90명 중 19명에 불과한 수도권 당선자들에게 친윤계가 당권을 쉽게 넘겨줄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때문에 당권 경쟁 국면이 본격화되면 지금은 조용한 영남·강원권 친윤계 의원들이 직접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초선 의원은 “당내 강성 보수층에서는 이번 패배를 두고 어설프게 좌클릭을 해서 집토끼를 놓쳤다고 분석한다”며 “보수를 챙기겠다며 당권을 다시 쥐려는 세력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선 한동훈이 휴식 후 당권 도전에 나설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14명 이탈 시 ‘채상병 특검’ 통과
또 다른 변수는 ‘특검’이다. 먼저,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 특검’과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연루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을 두고 양 세력의 의견이 갈릴 수 있다. 21대 국회서 국민의힘은 공식적으로 특검법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했지만, 비윤계 당선자들을 중심으로 ‘총선 이후 특검 수용’ 목소리가 확산되는 중이다. 안철수와 조경태(부산 사하을 당선인, 국회의원), 김재섭 등은 두 특검에 대한 찬성, 또는 전향적 검토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하지만, 두 특검 모두 정치적으로 윤 대통령을 정면 겨냥하기 때문에 친윤계가 이를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그럼에도 비윤계 내에선 당정 관계 재정립과 총선 패배 수습을 위해선 친윤이 한 발 뒤로 물러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선 아예 비윤계 청년 정치인인 김재섭을 당 대표로 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영남당’ 이미지를 탈피하고 향후 수도권 중심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고강도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김재섭은 지난 4월 15일 “고민 중이지만, 아직 더 배울 게 많다”고 했다. 이처럼 비윤계가 정치적 볼륨을 키울 가능성이 큰 가운데, 친윤계가 당권 경쟁 국면에서 과거처럼 응집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의 압승
‘비명횡사’ 공천 파동 속에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표)은 총선 전날까지 재판에 출석하는 등의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 4·10 총선을 압승으로 이끌었다. 비록 부산·경남에서 지난 총선 때보다 한두 석 더 줄긴 했지만, 애초 이재명이 제시했던 ‘과반 의석’을 훨씬 웃도는 성적이다. ‘이재명 사당화’에 반발하며 탈당해 옷을 갈아입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한 비명계 의원들은 사실상 한 명도 생환하지 못했다. 이재명은 총선 이틀 뒤 당선자들과 함께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참배했다. 이재명은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밝힌 ‘국정 쇄신’ 입장에 대해 “꼭 실천해주시기 부탁드린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영수회담 가능성에 대해 “지금까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라며 “당연히 만나고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도 영수회담을 직접 제안할 것인지에 대해선 즉답을 피했다.
앞서 이재명은 총선 이튿날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선 ‘민생’과 ‘개혁’을 강조했다. 따라서 이를 구현할 공약 이행 방안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은 일단 총선 결과 평가에 들어가며 향후 정국을 어떻게 풀어갈지 구상할 전망이다. 민주당은 22대 국회서 윤석열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쟁점 법안들과 특검을 대거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태원참사특별법과 노란봉투법, 방송3법, 간호법은 물론 대통령 부인 김건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과 대장동 개발사업 관련 ‘쌍특검법’ 등을 재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총선 결과와 유사한 의석 구도인 21대 국회서 4년 내내 대치하며 ‘방탄국회’, ‘입법독주’ 비판을 피하지 못했던 만큼, 극한의 대여 공세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칫 정치 투쟁에 함몰되면 국정 혼란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우려도 크다.
조국혁신당과의 관계 설정
이 때문에 당장 윤석열 정부에 대한 강경 투쟁을 이어가며 선봉에 서고 있는 조국혁신당과의 관계 설정도 변수다. 원내 3당에 오른 조국혁신당은 일찌감치 김건희·한동훈 특검법 발의를 공언하며 민주당에 협조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도 법률안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 본회의에 상정하려면 180석이 필요해 조국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에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차기 정국 주도권을 놓고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선거는 정치 심판이 아닌 민생고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라며 “민주당이 22대 국회 시작부터 김건희 여사 등에 대한 특검으로 정국을 몰고 가면 2~3년 뒤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심판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당권 재도전? 추대?…이재명의 선택
이재명 체제에서 공천을 받은 ‘친이재명계’ 인사들이 22대 국회에 대거 입성하게 되면서 민주당은 명실상부한 ‘이재명의 당’으로 거듭나게 됐다. 그의 대선가도에도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이러다보니, 공고해진 당내 장악력을 바탕으로 당권 재도전 가능성이 당 안팎에서 관측된다. 이재명의 당권 재도전설은 총선 공천 파동이 극에 달하면서 수그러드는 듯 했다. ‘비명횡사’ 논란으로 수세에 몰리자 그는 직접 전당대회 재출마 가능성을 일축하기도 했다. 이재명은 지난달 “당대표는 정말 3D 중에 3D”라며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들이어서 누가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했었다.
그러나 공천 파동을 딛고 총선 결과가 압승으로 이어지면서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이 다시 열렸다는 분석이다. 한 친명계 중진은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 했고, 또 다른 친명계 재선은 “지금은 비상시국인 만큼, 강력한 리더십으로 당대표를 한 번 더 해주길 바라는 지지자들이 많다”는 의견을 밝혔다. 전남 해남완도진도에서 당선된 박지원은 대놓고 이재명이 당대표를 연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지원은 4월 15일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전당대회 출마 의사’에 대한 질문에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하면 당연히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연임)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당대표직 연임은 전례가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며 “지금 민주당의 당헌당규는 만약 대권후보가 되려면 1년 전에 당 대표를 사퇴한다. 그걸 지키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이재명이 ‘대리인 당대표’를 세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당내 주류를 완전히 교체하며 당권 장악력을 확실하게 다진 만큼 대표 연임 리스크를 짊어질 필요가 없다는 시각이다. 이 대표를 가까이서 보좌한 한 의원은 “전당대회 출마하려고 기다리는 친명 인사가 이미 여럿 있는데 대표가 굳이 직접 출마하려고 하겠냐”며 불출마 가능성을 예측했다. 오는 8월 전당대회 출마를 저울질 하는 후보군으로는 우원식·정청래 의원과 박지원 당선자 등이 거론된다.
이재명의 ‘사법리스크’
총선을 압승으로 이끌면서 유력 대권주자 입지를 탄탄하게 굳혔지만,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는 여전히 상존한다. 현재 이재명은 ‘대장동 의혹’ 등 3건의 재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이 중 가장 진척이 빠른 ‘선거법’ 재판에서 백만 원 이상 벌금형만 확정돼도 의원직을 잃게 됨은 물론 향후 5년간 출마도 제한된다. 사실상 ‘대권’ 꿈은 물 건너가게 되는 셈이다. 이재명은 세월호 참사 10주기인 4월 16일에도 재판에 출석했다. 그럼에도 민주당 내부에선 이번 총선 압승으로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는 끝났다고 보는 분위기다.
조국의 ‘배팅’…조국혁신당
조국(조국혁신당 대표)은 지난 3월 3일 ‘검찰독재정권 종식’을 기치로 내걸며 조국혁신당을 창당했다. 조국은 창당대회에서 “정치권과 보수언론에서 ‘조국의 강’을 얘기하고 있는데, 우리가 건너야 할 강은 ‘검찰독재의 강’이고 ‘윤석열의 강’”이라며 “조국혁신당은 오물로 뒤덮힌 윤석열의 강을 건너, 검찰독재를 조기에 종식하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 갈 비전과 정책을 제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조국혁신당의 당면 목표는 분명하다. 검찰독재의 조기종식과 민주공화국의 가치회복”이라면서 “검찰독재를 끝낸 후 민생과 복지가 보장되는 ‘제7공화국’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조국은 법무장관 재임 시 검찰개혁을 완료하지 못한데 대해서도 사과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책임자로서, 정치검사들의 준동을 막지 못하고 검찰공화국의 탄생을 막아내지 못한 과오에 대해 국민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그런 저를 향한 비판과 비난, 질책은 오롯이 제가 짊어지고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자해지 심정으로, 윤석열 검찰독재정권을 하루빨리 종식시켜야 하는 소명이 운명적으로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돌아갈 다리를 불살랐다”며 결기를 보였었다.
‘선명성’ 전략 적중
이때까지만 해도 정치권에서 조국당의 ‘성공’을 점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한동훈은 “조 전 장관이 병립형으로 3%를 어떻게 넘냐”고까지 했었다. 그러나 조국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란 한동훈을 비웃기라도 하듯 창당 한 달여 만에 아무도 예상 못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치밀했던’ 선거 전략도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비례 후보만을 낸 조국은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지민비조)’이란 선명 메시지로 선거판을 종횡무진하며 민주당과의 ‘양동작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비례 전문 정당인 조국혁신당의 성공 뒤엔 지금의 ‘준연동형 선거제도’가 자리한다. 여기엔 이재명의 ‘결단’이 절대적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물론 이재명이 조국당을 원내 3당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내린 결정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야권 전체 파이를 키운 선택이었던 건 확실하다.
“3년도 길다”…현실성은?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12석의 조국혁신당은 총선 다음날 곧바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찾아 검찰을 향한 경고장을 날렸다. 조국은 이날 당선자들과 함께 첫 공식 일정으로 대검을 방문, “검찰에 마지막으로 경고한다”면서 “김건희 여사를 즉각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조국은 총선 선대위 해단식에서도 “‘쇄빙선’ 12척이 우리에게 생겼다”면서 ‘검찰독재’ 조기 종식 의지를 거듭 피력했다. 조국은 “지금이 검찰독재를 끝낼 수 있는 가장 뜨거운 순간”이라며 “당 대표인 저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갖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자. 좌고우면 하지말자. 당선자 워크숍에서 향후 일정에 맞춘 마스터플랜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며칠 뒤엔 윤석열에게 ‘만나자’고도 했다. 조국은 페이스북에 “원내 제3당의 대표인 나는 언제, 어떤 형식이든 윤석열 대통령을 만날 수 있길 희망한다”며 공식 회동을 제안했다. 그는 “윤 대통령은 총선 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구속시킨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만나지 않았다. ‘국정 파트너’가 아니라 ‘피의자’로 본 것”이라며 “검찰을 이용해 정적을 때려잡으면 총선 승리와 정권 재창출은 무난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꼴잡’하고 ‘얍실한’ 생각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목표 달성은 무산됐고,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참패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공개 회동 자리에서 예의를 갖추며 단호하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 공개 요청에 대한 용산 대통령실의 답변을 기대한다”며 윤석열 대통령을 자극했다.
또 “차기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놓고 대통령실과 검찰 내부에서 긴장이 발생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와 김건희 씨 관련 혐의 처리 입장이 인선의 핵심 기준”이라는 ‘검찰 내부 상황’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그는 “윤 대통령은 곧 ‘데드덕’이 될 운명인 자신과 배우자를 위해 뻔뻔한 방패 역할을 하고 정적에 대해서는 더 무자비한 칼을 휘두를 사람을 찾고 있다”며 “국정 운영 능력이 ‘0’에 가까운 윤 대통령의 관심은 이제 온통 자신과 배우자의 신변 안전뿐”이라고 비판했다. ‘검찰독재정권 조기 종식’을 정치적 명분으로 내세운 그의 공약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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