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울먹)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압니다. 그 사람 대신…(잠시 침묵) 나를 보내달라고 울부짖어 본 사람은 압니다. 대부분의 아픔과 그리움은 세월 앞에서 희미해지기 마련이지만 아주 드물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16일 오후 3시 경기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10주기 기억식’ 추도사에서 이같이 말했다.
단상에 선 김 지사는 미리 준비한 A4 두 장 분량의 추도사를 읽어 내려가는 10여분 동안 여러 차례 울컥했다. 그런 김 지사의 추도사를 듣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은 물론,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비롯한 여야 정치인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어른이라 미안했습니다. 공직자라서 더 죄스러웠습니다”
세월호 유가족과 마찬가지로 자식을 먼저 ‘멀리 보낸 경험이 있는’ 김 지사는 목이 매여 몇차례나 추도사 읽는 것을 잠시 멈춰야 했다. 김 지사는 큰아들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1년 전인 2013년 백혈병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그때 큰아들의 나이가 28살이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인지 박근혜 정권 당시 국무조정실장으로 일하던 2014년 5월에는 한 일간지 칼럼을 통해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기도 했다. 집권여당의 장관급 인사가 세월호 참사를 추모한다는 게 당시 분위기로는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꽤나 큰 반향을 불러왔다.
당시 김 지사는 “병원 가는 길인 혜화역 3번 출구는 가슴 찢는 고통을 안고 걷는 길이 돼 버렸다. 서로 마주 보는 두 길이 이렇게 다를 수 있나 탄식이 나오곤 했다”며 “정말 꽃 같은 학생들이 세월호 사고로 희생됐다”고 심정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남몰래 눈물을 닦았다. 아내는 너무 울어 눈이 퉁퉁 부을 정도였다”면서 “떠난 자식에 대한 애절한 마음과 간절한 그리움을 누가 알까. 자식을 잃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알 수 없는 고통일 것”이라고 유가족의 심정을 통감했다.
김 지사는 이날 추도사에서도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조정실장으로서 세월호 참사를 겪은 소회를 밝혔다.
“10년 전 오늘 저는 국무조정실장 자리에 있었습니다. 참사 당일 국무총리는 해외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중이었습니다. ‘세월호 승객 전원 구조’가 오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즉시 중간 경유지인 방콕에 있던 총리에게 연락했습니다. 서울공항이 아니라 바로 무안공항으로 가시라고. 진도체육관으로 가서 세월호 탑승자 가족을 만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음 날 새벽, 이번 참사는 총리 사표뿐만 아니라 내각 총사퇴를 준비해야 할 심각한 사안이라고 총리에게 건의했습니다. 저는 별도로 계속해서 사의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두 달 뒤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어른이라 미안했습니다. 공직자라서 더 죄스러웠습니다.”
“다음 정부에서라도 끝까지 기억하고 함께 하겠다”
김 지사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의 사연을 하나씩 소개하면서 “지금도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웃으며 달려올 것 같은 그리운 이들을 가슴에 품고 유가족들은 열 번의 가슴 시린 봄을 버텨오셨다. 그저 따뜻하게 안아드리고 싶다”면서 “그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될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함께 수학여행을 떠났던 친구들보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생존자 여러분의 두 어깨도 가만히 감싸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 지사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10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변하지 않는 현실도 질타했다. 김 지사는 “아이들이 돌아오기로 했던 금요일은 어느덧 520번이나 지나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본다. 한없이 부끄럽다”며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권고한 세월호 참사에 관한 12가지 주요 권고 중에 중앙정부는 현재까지 단 한 가지만 이행했다”고 지적했다.
김 지사는 “책임 인정, 공식사과, 재발방지약속 모두 하지 않았고 세월호 추모사업, 의료비 지원 등 정부 예산도 줄줄이 삭감됐다”면서 “4.16 생명안전공원도 비용편익 논리에 밀려 늦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김 지사는 2022년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를 언급하며 “비극적인 참사는 다시 반복됐다”며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159명의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김 지사는 “어떤 사람들은 이제 그만하자고, 이제 그만 잊자고 말한다. 틀렸다. 그럴 수 없다”며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충분히 치유되고 회복될 때까지, 우리 사회에 안전과 인권의 가치가 제대로 지켜질 때까지 우리는 언제까지나 노력하고 기다리겠다”고 다짐했다.
김 지사는 “세월호의 교훈이 우리 사회에 온전히 뿌리내리도록 이번 정부에서 하지 않는다면 다음 정부에서라도 끝까지 기억하고 함께 하겠다”면서 “경기도는 다르게 하겠다. 경기도에서만큼은 안전이 최우선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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