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치기 괴롭다고 티 내지 않으면, 계속 기억하고 애도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나지 않으니까 사진전에 오긴 왔는데…너무 괴로운 일이라 사실 사진을 자세히는 다 못봤다.”
봄비가 내리던 15일 낮,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기억은 힘이 세지’ 사진전을 찾은 40대 중반의 문은정씨가 이렇게 말했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 아르떼숲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 사진전에서 기자를 만난 문씨는 이야기 도중 연신 눈물을 훔쳤다. 사진전에 기록된 세월호 참사 10년의 시간을 세세히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필요했다.
월요일 낮 시간대, 붐비지 않는 공간을 찾은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와 애도를 이어갔다. 시민들이 찍은 사진들로 채워진 3층 전시실에선 박아무개씨(75세)가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이름이 담긴 출석부, 가방에 달린 세월호 뱃지 등 본 사진을 보고 또 봤다. 10평 남짓의 작은 전시 공간을 몇 바퀴씩 돌면서 둘러본 그는 “(세월호 참사를) 완전히 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박씨는 과거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5분 차이로 피했다. 그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재난이었는데도 탐욕 때문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해 가슴이 아프다. 일반 시민들이 스스로 깨어나서 눈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인간이 막을 수 있는데도 막지 않아 직장에서 안전사고로 죽는 사람도 많다”며 “세상은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사는 게임이 아니다. 서로가 어울리면서 손을 내밀며 살아가는 거다. 이 사회가 좀 따뜻해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2014년 이후 급감하는 언론보도 “이것은 기억이 아니다”
‘기억은 힘이 세지’ 전시는 지난해 8월 4·16재단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언론을 통해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의 시간이 어떻게 기록됐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기억돼야 할지 풀어보자는 취지였다.
처음 전시 제안을 받은 이정용 한겨레 사진기자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세월호 참사는 언론사들이 공동으로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에 주변의 사진기자들에게 참여를 권유했다. 경향신문, 민중의소리, 시사인, 오마이뉴스, 한겨레까지 총 5개 매체가 전시에 참여했다. 기획 총괄은 이정용 기자가 맡았다. 각 회사에서 10년 간 보관해온 2만여장의 사진을 추리고 추렸다.
애초 참사 날짜에 맞춰 416장을 전시하려던 계획은 협소한 장소에 막혔다. 대신 주요 종합일간지 10개사의 보도 비율을 반영한 168장을 전시했다. 언론보도가 가장 많았던 2014년엔 ‘4월 한 달을 애도의 마음으로 채운다’는 뜻으로 30장을, 관심이 가장 적었던 2023년엔 5장의 사진만을 채워넣는 식이다. 전시된 사진의 30%가량은 그간 보도되지 않았던 처음 공개된 사진들이다.
이정용 기자는 15일 통화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전시를 공적인 공간에서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와 서울시에서 세월호에 호의적이지 않다 보니 장소를 잡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10주기 한 달 전으로 계획했던 사진전도 정치적 문제에 휩싸일까 총선 이후로 날짜를 잡았다.
전시관 입구엔 10년 간의 언론보도 비율을 보여주는 그래프도 설치했다. ‘이것은 기억이 아니다’라는 이름으로 설치된 그래프는 참사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는 증거가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에서 세월호 인양이 추진된 2016년을 제외하고는 언론의 관심은 지속적으로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다.
당시 세월호 참사 현장을 취재했던 이정용 기자는 전시를 준비하며 “아팠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사진전을 준비하면서 그때의 기억을 끄집어낸다는 것 자체가 아팠다”며 “시민들에게 현장을 적나라하게 다 보여줄 순 없어서 어느 정도 (감정적으로) 순화된 사진들을 선별했다”고 말했다.
매해 사진 옆엔 윤성희 작가의 글이 담겼다. 사진 하단에 따로 언론사 출처나 설명이 없는 점도 특징이다. 전시에서 만난 이미영 도슨트(61세)는 “도슨트의 역할이 크게 반영되지 않은 전시다. 전시를 찾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사진을 보고) 느끼게끔 하는 구성”이라며 “가서 얘기 드리기도 참 어렵다.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도 많고, 본인의 자녀를 데려와서 직접 설명해주는 부모님도 있다”고 전했다.
“전원 구조” 오보에서 시작해 이태원 참사 현장으로 끝나는 전시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전원 구조” 오보 화면으로 시작되는 사진전은 2023년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모습으로 끝난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나를 돌아보자’는 취지로 2층에 설치된 거울도 눈에 띈다.
박래군 세월호 참사 10주기 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은 15일 통화에서 “세월호 참사를 잊으면 이태원 참사같은 비극적인 일이 또 온다”며 “‘기억은 힘이 세지’라는 말처럼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사진전”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 재난 참사는 너무 쉽게 잊혀졌왔다”며 “세월호 참사의 문제를 푼다는건 다른 재난 참사를 풀 수 있는 열쇠를 만드는 것이다. 진실의 문 끝에는 안전사회가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기억하기 위해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층엔 보도가 아닌 시민들이 직접 찍은 사진들로만 채웠다. 올해 완공 예정이었던 경기도 안산시 ‘4·16 생명안전공원’ 설치가 예산 삭감과 사업비 상승 등의 이유로 2년 넘게 지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영상도 재생됐다. 이정용 기자는 “언론의 역할은 기록이자 기억에 대한 전달이지만, 실제로 이걸 끌어나가는 건 시민의 힘”이라며 “시민의 사진과, 생명안전공원에 대한 영상으로 전시를 마무리 지었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그 사건이 일어났다’는 기억에서 머물면 안된다”며 “기억하고 있다는 건 또다른 대비를 할 수 있다는 자세가 된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그런 잔상을 계속 기억으로 남겨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진보언론만 참여 “참사를 진영논리로 접근하는 한계 보여 아쉬워”
박래군 위원장은 진보 언론만이 전시에 참여한 상황에도 아쉬움을 표현했다. 박 위원장은 “진보 언론사들 중심으로 전시에 참여했다는 게 아쉽다. 보수언론에선 세월호 참사가 중요한 사안이 아닌가”라고 물으며 “아직까지도 (언론이) 세월호 참사를 진영논리로 접근하는 한계점을 또 보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언론이 현상만이 아닌 구조를 바라봐줄 것도 당부했다. 박 위원장은 “언론이 드러난 현장이 아니라 구조적인 시스템까지 파고들어 취재했으면 좋겠다”며 “시민들의 의식은 높아졌는데, 재난참사라고 하면 가장 많이 (기사를) 쓰는 게 안전불감증 이야기다. 국가의 잘못과 책임을 시민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민들이 끊임없이 요구하면서 국가로 하여금 재난참사를 대비하도록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자도 “세월호 참사는 다른 참사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참사의 시작부터 진행되는 모든 과정을 전국민이 생방송처럼 지켜봤기 때문”이라며 “그 과정에서 언론의 어떤 말들이 바뀌었고 선택됐는지 볼 수 있었다. 일방적 전달 과정에서 언론을 받아들이던 국민들이 언론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보게된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그는 “이번 전시회는 사진기자의 눈으로 현장을 지키고 기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주고, 언론 본연의 역할에 대한 한 부분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기억은 힘이 세지’ 전시는 오는 28일까지 갤러리 아르떼숲(서울 종로구 관훈동 인사동5길 12)에서 열린다. 내달 1일부터 31일까지는 재난피해자권리센터(서울 중구 창경궁로6)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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