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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정부도 못 지킨 ‘건전재정’… 야당 압승에 재정준칙 도입 물 건너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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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8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도시주택공급 점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도시주택공급 점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정부의 첫 ‘재정 성적표’가 나온 가운데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재정준칙 법안이 폐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선 윤 정부에서도 지난해 스스로 도입하자던 건전재정 원칙을 어긴 만큼 법안을 통과시킬 설득력이 떨어졌다. 여기에 제22대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둔 것도 법안 통과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재정준칙이란 정부가 나라 살림을 하면서 적자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내면 안 되도록 정한 규칙이다. 정부는 매년 생기는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지 않도록 법으로 규정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1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5월에 열릴 임시국회에서 재정준칙 도입을 골자로 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마지막 노력을 다할 예정이다. 재정준칙 법안은 21대 국회가 끝나는 5월 임시국회에서도 통과되지 못하면 자동 폐기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며 “만약 통과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국회와 상의하며 법안을 다시 만들 예정”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재정준칙 법안이 나랏빚을 늘리는 것을 막는 ‘안전벨트’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기재부는 재정준칙이 도입되면 국가채무에 대한 불확실성이 감소해 국채(외국환평형기금채권) 조달 금리가 하락하는 효과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정부는 지난해 재정준칙을 지키지 못한 상황이다. 정부가 발표한 ‘2023 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관리재정수지는 87조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4대 보장성 기금 수지를 차감해 정부의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3.9%를 기록했다. 적자 폭을 매년 GDP의 3% 이내로 제한하는 게 재정준칙 법안의 핵심인데, 윤 정부도 달성에 실패한 것이다.

내년에도 재정준칙 달성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기재부가 지난해 9월 국회에 제출한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내년 관리재정수지 적자 예상치는 72조2000억원이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2.9%로 재정준칙 법안 기준에 부합한다. 그러나 정부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대주주 양도세 완화, 자녀장려금 대상·지급액 확대로 인한 소득세 감세 등 잇따라 감세 정책을 내놓은 만큼 변수가 많아 재정준칙을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지난 2월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사무처에서 한 직원이 국회의원 배지를 정리하고 있다. /뉴스1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지난 2월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사무처에서 한 직원이 국회의원 배지를 정리하고 있다. /뉴스1

새롭게 꾸려질 22대 국회에서도 재정준칙 법안이 통과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범야권이 압도적 다수당이 되면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거나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21대 국회에서도 수차례 국회를 설득했지만, 야당 의원들의 반대에 재정준칙 법안 통과는 번번이 좌절됐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법으로 지출을 제한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큰 상황이다.

민주당은 재정준칙 법안 도입에 반대하는 이유로 ‘저성장 장기화’를 들고 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에도 재정준칙 법제화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관련 법안을 냈지만, 여당이던 민주당의 반발로 통과되지 못했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른 확장 재정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학계에서는 재정준칙 법안이 도입돼야 한다고 보지만, 실제로 국회 문턱을 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야 대립이 격해지는 와중에 국가부채를 관리하려면 재정준칙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라며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에선 이미 재정준칙을 도입해 나라 살림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준칙 법안을 도입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지만, 지금같이 세입은 적고 세출은 많은 상황에서 논한다는 게 모순적인 상황”이라며 “기재부가 과도한 권한을 쥐게 되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경제 위기가 고조될 때 재정준칙을 지키지 못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고 봤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경기 침체가 심한 상황에서도 정부가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잘 관리했다고 본다”라며 “경제가 어려울 때는 재정 적자가 단기적으로 늘더라도 경기 부양에 힘을 쏟아 민생 경제를 회복시키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조선비즈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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