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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예상치를 웃돌며 금리 인하 기대감이 후퇴하자 엔·달러 환율이 153엔대까지 치솟는 등 ‘엔화 가치 하락(환율 상승)’이 가속화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일본 통화 당국의 개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환율이 155엔대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0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장중 153.24엔까지 치솟은 뒤 153.16엔으로 마감, 엔화가치가 1990년 6월 이후 34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11일 도쿄 외환시장에서도 엔·달러 환율은 153.14엔으로 시작해 152엔 대 후반에서 움직이고 있다. 미 노동부가 10일 발표한 3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3.5%를 기록, 지난해 9월(3.7%)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내며 물가가 여전히 뜨거운 것으로 나타나자 시장에서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이 더 뒤로 밀릴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에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4% 이상 급등했다. 미국 금리 상승으로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가 부각되며 엔화 매도·달러 매수가 심화, 엔화 가치를 끌어내렸다는 분석이다. 미국 자산운용사 PGIM채권투자(PGIM Fixed Income)의 로버트 팁 수석 투자 전략가는 “일본과 미국의 금리 차가 좁혀지지 않는 한 엔저 기조는 계속된다”고 지적했다.
엔화 시세를 둘러싸고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달러당 155엔 대까지 엔화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야마모토 마사후미 미즈호 증권 수석 외환 전략가는 “3월 미 CPI로 연준의 6월 금리인하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졌다”며 “11일 발표되는 미국의 3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상승하면 엔화가 154엔대까지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미국 경제지표의 상승이 계속될 가능성을 감안할 때 4~6월 엔 시세의 하한선이 155엔대가 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현 시점에서의 일본 정부의 환율 시장 개입 가능성은 불투명하다고 봤다. 그는 “환율 개입을 실시해도 2022년처럼 엔저를 억제하고 엔고 기조로 돌리는 효과는 부족할 것으로 보여 현재로서는 통화 당국이 어느 정도 개입에 의욕적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22년 엔·달러 환율이 151.95엔을 기록했을 때 시장에 개입한 바 있다. 당시 일본은 엔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9~10월 세 차례에 걸쳐 9조 2000억 엔을 투입했다. 칸다 타쿠야 외환닷컴 종합연구소 조사부장도 “최근 3주간은 152엔 전후로 (일본 정부의 개입 경계감에) 달러 매수의 마그마가 쌓여 있었다”며 “(CPI 발표로) 환율이 152엔을 돌파하면서 로스컷(손절매)을 포함해 달러를 사야 하는 시장 참여자가 많아졌고, 이에 엔화 약세가 가속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 정부의 개입이 없으면 단기적으로는 155엔까지 환율이 전개될 수 있다”며 “11일 발표되는 미국 PPI와 이달 말 예정된 미국·일본의 금리 정책 회의가 초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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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2년 전 개입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미 중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일본 통화 당국이 1998년 6월 이후 24년 만에 ‘엔 매수·달러 매도’를 단행한 2022년 개입 때 기시다 총리는 유엔총회 참석 차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이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칸다 마사토 재무관은 당시 “비행기 안에서도 개입을 결정할 수 있다”며 시장을 견제하기도 했다. 이번 방미 기간 환율 개입 가능성에 주목하는 쪽에서는 ‘개입 전 미국 측 동의’라는 절차를 근거로 든다. 과거 환율 개입에 관여한 일본 정부의 한 관계자는 닛케이에 “환율 개입과 관련해 어떤 때도 미국에 사후 보고하는 일은 없다. 반드시 사전에 백악관에 (계획 안건을) 올린다”고 말했다. 환율은 두 국가의 통화 간의 강약을 나타내는 지표인 만큼 일본에 의한 단독 개입이라 할지라도 미국 측의 이해를 얻지 못하면 실행에 옮기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역사적 엔저·달러 강세가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달러 매도 개입에 미국이 선뜻 응할지는 미지수다.
152엔을 넘겨 개입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달러당 152엔’을 개입 수준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한 상황에서 이전(151엔대 개입)과 같은 정도의 엔저 수준에서 재차 개입을 단행하면 이 금액 대가 자칫 투기 세력의 타깃이 돼 엔 매도를 심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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