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진영 대결 양상을 보인 4·10 총선에서 무소속 후보가 단 한 명도 당선되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다.
과거 6대(1961년)와 7대(1967년), 8대(1971년) 총선에서도 무소속 당선인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으나, 당시에는 ‘정당추천제’를 채택함으로써 무소속 입후보를 완전히 차단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번 총선이 무소속 당선인이 없는 최초 총선으로 기록되게 됐다.
11일 오전 2시30분 현재 개표 결과를 보면, 이번 총선에 무소속으로 등록한 총 58명의 후보 전원이 당선권에 들지 못했다.
무소속 최경환 후보(경북 경산)가 선거운동 기간 각종 여론조사에서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하며 당선 가능성을 키워왔지만, 국민의힘 조지연 후보와 피 말리는 접전을 벌인 끝에 간발의 표 차로 고배를 마셨다.
과거 ‘막말’ 논란으로 공천이 취소되자 국민의힘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장예찬(부산 수영), 도태우(대구 중·남구) 후보도 ‘친정’이 내세운 후보들에게 큰 표 차이로 무릎을 꿇었다.
애초 이번 총선 무소속 출마자는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거대 양당의 대결 구도가 뚜렷이 형성되면서 4년 전(116명)의 절반인 58명에 그쳤다.
더구나 이러한 총선 구도를 넘어설 만한 경쟁력을 갖춘 무소속 후보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 ‘무소속 당선인 0명’의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무소속은 호남과 대구·경북(TK)에서는 통하기도 하는데 이번에 무소속 당선인이 아예 안 나왔다는 것은 인물 대결에서 밀렸음을 보여준다”며 “진영 대결이 극대화되면서 무소속이 있을 공간이 없었고, 국민의힘이 위기에 처하다 보니 TK에서도 여당 후보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0년까지 총 21차례 국회의원 선거를 통틀어 무소속 후보가 가장 많이 당선된 것은 제2대 총선으로 전체 204개 의석 가운데 무려 124개를 무소속이 가져갔다.
제헌국회 구성을 위해 실시된 1948년 제1대 총선에서도 200명의 초대 국회의원 중 무소속은 85명에 달했고, 총 202명을 선출한 3대 총선에서도 110석을 차지한 자유당 외에 무소속(70명)을 넘어선 정당이 없어 혼란스러웠던 당시 정치 상황을 반영했다.
이후에는 무소속 당선인 수가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6∼8대 총선을 제외하고 무소속 당선인이 나오지 않은 경우는 이번 총선 말고는 없었다.
2000년 이후에는 16대 총선 5명, 17대 총선 2명에 그쳤으나, 18대 총선에서는 무려 25명의 무소속 의원이 탄생했다. 당시 한나라당 ‘공천 내홍’ 과정에서 낙천한 ‘친박(친박근혜)계’가 대거 탈당, ‘친박 무소속 연대’로 출마를 강행한 데 따른 이변이었다.
이후 19대 총선에서 무소속 의원은 3명에 그쳤으나, 20대 총선에서 다시 11명이 당선되며 선전했다. 안철수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당이 ‘돌풍’을 일으키며 거대 양당 구도에 균열을 일으켰던 때였다.
21대 때는 5명의 무소속 당선인이 나왔다. 당의 공천 컷오프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중진 의원들이 ‘인물 경쟁력’을 앞세워 자신의 기존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이 중 전북 남원·임실·순창에서 당선된 이용호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보수 정당의 ‘무소속 4인방'(홍준표·권성동·윤상현·김태호)은 곧바로 ‘친정’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에 복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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