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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왜곡된 역사관을 바탕으로 막말을 쏟아내며 사회적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총선과 관련된 정치인들의 발언은 상대적으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국민들의 역사 인식에 잘못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유교문화선양회를 비롯한 안동 유림단체 대표 39명은 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 김준혁(경기 수원정) 후보는 있지도 않은 사실을 낯 뜨겁게 엮어 선현(先賢)을 욕보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퇴계 선생은 ‘겨레의 스승’으로까지 추앙받고 있는 선현이며 중국과 일본 제국주의 학자조차 존경을 표해 마지않았다”며 “이런 비뚤어진 사고로 국민의 선량(選良)이 되어 국정을 논하겠다고 국회의원 지위까지 탐내는 것은 더는 묵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후보는 지난 2022년 2월 출간한 ‘변방의 역사 2권’를 통해 “이황 선생이 성관계 방면의 지존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라며 “퇴계 이황의 앞마당에 있는 은행나무가 밤마다 흔들렸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는 함께 출간한 ‘변방의 역사 1권’에서는 “친일파가 만든 최초의 유치원은 경성유치원이며, 이를 만든 사람은 이완용”이라며 “한유총(한국유치원총연합회)은 정신적으로 경성유치원의 후예”라고 밝혀 한국유치원단체총연합회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역사학자 출신 김 후보의 막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 2022년 8월 유튜브 채널 ‘김용민TV’에 출연해 이화여대 학생들이 미군에 성상납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후보는 “종군위안부를 보내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한 사람이 김활란”이라며 “김활란은 미군정 시기에 이화여대 학생들을 미 장교에게 성상납시켰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총동창회도 이날 “내 이모 일”이라며 사실이라고 주장한 고은광순 씨의 증언이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정외과 총동창회 회원들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이모 일’이라고 주장한 고 씨의 고백은 사실과 전혀 다른 거짓”이라며 “13살에 이화여대 정외과를 다니며 성상납했다는 망언과 선동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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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후보 외에도 왜곡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한 발언을 한 정치인들도 다수 있다.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은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계속 해산시켜도 하룻밤 사이에 4~5번이나 다시 뭉쳤는데 훈련받은 누군가 있지 않고서야 일반 시민이 그렇게 조직될 수 없다”고 말해 자진 사퇴했다. 도태우 국민의힘 후보 또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북한 개입 부분은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충실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이 문제가 돼 공천 취소를 당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왜곡된 역사 인식이 거름망을 거치지 않고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간다는 것이다. 일례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 후보의 이대생 성상납 발언과 관련된 ‘김준혁 논란의 대반전 나의 이모는 김활란의 제물로 미군에 바쳐졌다는 증언 터졌다’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 링크를 올리고 “역사적 진실에 눈감지 말아야”라고 적었다. 그러나 비판 여론이 일자 게시글을 삭제했다.
전문가들은 정치인의 역사 왜곡 관련 발언이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잘못된 역사관을 가지고 이를 무차별하게 쏟아내는 정치인이 국회로 들어간다면 임기 기간 내내 저질스러운 논쟁으로 국회 내 민주주의를 해치고 생산성 없는 논의를 생산할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치인의 발언에 대한 단속, 규제는 사실 표현의 자유가 있어서 외부에서 하기엔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최소한 당 내부에서 자정작용이 있거나 개인이 본인의 말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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