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녹색정의당과 조국혁신당을 다루는 방식이 확연히 대비되고 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인 지난달 28일 이후를 기준으로 해당 신문의 진보정당 관련 보도 양상을 녹색정의당 중심으로 살펴봤다. 더불어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하고 있는 진보당과 새진보연합은 제외했다.
조선일보가 지난달 28일부터 9일 현재까지 선거기 중 녹색정의당을 거론한 기사는 7건인데 이중에서도 녹색정의당이 비례 5번이라는 사실을 소개하는 등 단순 언급한 기사를 제외하면 녹색정의당의 입장이나 활동을 다룬 기사는 3~4건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보도는 지난 5일자 <조국당 “대기업 임금 억제해 중기 인력난 해결”…녹색정의당 “지켜달라” 큰절 읍소>란 정치면 기사다.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녹색정의당은 이날(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지도부와 지역구 후보들이 ‘녹색정의당을 지켜달라’며 큰절로 읍소했다”며 “녹색정의당은 현재 6석이지만 최근 여론조사상으론 원내 진입이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해당 기사에는 녹색정의당 주요 인사들이 큰절하는 모습이 사진으로도 담겼다. 진보정당은 보통 ‘포퓰리즘이냐’ ‘사회주의 아니냐’는 식으로 공약이나 정책에서 보수진영의 비판을 받아왔기에 이러한 이미지 정치로 언론에 등장하는 건 이례적인 장면이다.
진보정당이나 그 지지층은 그동안 보수정당이 선거를 앞두고 무릎을 꿇으면 ‘정치적 쇼’, 좀더 심하게는 ‘유권자를 우습게 보는 처사’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원내진입이 어려워진 녹색정의당이 읍소 이벤트를 벌이자 그 모습을 지면에 담아낸 것이다.
선거 직전 무릎을 꿇는 장면은 주로 보수정당이 사용하던 읍소 방식이었다. 같은날 국민의힘에서는 홍준표 대구시장이 “사즉생의 각오로 마지막까지 읍소하라”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비판했다. 큰절이라도 해서 현재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인데 한 위원장은 지난 1일 부산 유세에서 큰절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하지 않았고 지난 3일 충북 제천 유세에서도 “범죄자와 싸우는데 왜 큰절을 하나”라며 거절했다. 녹색정의당의 큰절은 이와 대비되면서 더 극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녹색정의당 대표 정치인인 심상정 의원 얼굴이 등장한 기사도 있다. 지난달 29일자 정치면 <제3지대, 수도권 판세 가를 변수로>인데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1:1대 구도가 대부분인 지역구 선거에서 박빙인 지역에서 제3지대 정당이 변수로 작용할 만한 곳을 주목했다.
조선일보는 “녹색정의당과 제3지대 정당 후보들은 각 지역구에서 최소 한 자릿수 지지율을 얻고 있다”며 “당선권은 아니어도 거대 양당 후보의 당락에 영향을 줄 정도로 득표할 수 있다는 것이 정치권 관계자들의 시각”이라고 보도했다.
선거 하루 전인 9일에도 조선일보는 “녹색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3차례 당선된 경기 고양시 갑에선 심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김성회 후보, 국민의힘 한창섭 후보 간 3파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며 해당 지역구 상황을 전했다.
이 지역은 공식선거운동 기간에 진행한 여론조사가 없었다. 조선일보는 “이번에 정의당 지지율이 1%대로 떨어지면서 더 어려운 선거가 됐다는 평가”라며 “진보 유권자들의 표가 분산되면서, 윤석열 정부 첫 행정안전부 차관을 지낸 국민의힘 한창섭 후보의 상승세도 만만찮다”고 보도했다.
민주당 비판을 위해 등장한 녹색정의당
진보정당이 조선일보에 자주 소환되는 유형이다. 조선일보가 지난 4일 당내 비명 인사로 공천과정에서 세 번이나 배제당한 박용진 민주당 의원을 인터뷰해 민주당 주류·지도부를 비판하는 것과 비슷한 보도 패턴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3일 <“이대생 性상납” 김준혁에…이대 “사퇴하라”>에서 김준혁 민주당 경기 수원정 후보의 ‘이대생 미군 성상납’ 발언에 대해 녹색정의당 박지아 선대위 대변인의 발언을 인용했다. 박 대변인은 “자극적으로 우리나라 대표적인 여자 대학을 언급한 건 성적 대상화의 전형적 사례”라며 “성적 대상화는 성폭력의 근본적 이유”라고 했다.
종합하면 조선일보는 녹색정의당을 유의미한 정치적 주체로 다루지 않았다. 이번 총선은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이자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팽팽했던 지난 대선 구도의 연장전으로 볼 수 있다. 이준석 당 대표(현 개혁신당 대표)를 배척한 사건으로 상징되는 보수진영의 와해로 정부 출범 초부터 국민의힘 지지층이 이탈한 반면, 민주당 진영은 조국혁신당의 등장으로 이 대표 중심 민주당의 여러 실책에도 두 정당을 중심으로 지지세가 유지되고 있다. 조선일보가 조국혁신당을 어떻게 다뤘는지 보면 녹색정의당과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일단 사설과 칼럼에서 조국혁신당을 비판하는 경우가 많았다. 민주당을 주로 비판하는 글에서도 조국혁신당 비판이 함께 등장했다. <“검찰 개혁” 뒤로 거액 ‘전관예우’ “반미”라며 美 국적, 끝없는 내로남불>(3월28일 사설), <‘갭 투기’, 오피스텔 11채, 군복무 아들에 30억 증여, 그래도 당선권>(3월29일 사설), <22억은 피해자 돈 아닌가요>(3월30일 사회부기자 칼럼), <범죄 혐의 없는데도 “대통령 탄핵”이 너도나도 선거 구호>(3월30일 사설), <학생 딸 ‘사업 자금’ 대출로 강남에 영끌, 당선권 ‘대출 사기’ 후보>(3월30일 사설), <허경영 따라가는 조국 財産>(1일 정치부기자 칼럼), <“이대 총장이 이대생 성상납”, 이런 사람도 국회의원 된다니>(2일 사설), <국정 실패로 5년 만에 정권 넘긴 文의 다음 정부 품평>(3일 사설), <조 대표가 꿈꾸는 ‘조국’은 어떤 모습인가>(5일 논설위원 칼럼), <퇴직하자 피의자 방패로 나선 국수본부장과 검사장의 염치>(6일 사설), <‘깜깜이 기간’ 노린 ‘아니면 말고’ 네거티브는 범죄다>(6일 사설), <사전 투표율 역대 최고, 선거 수준은 사상 최저>(8일 사설)가 일례다.
이렇듯 조선일보는 선거기간 중 연일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후보들을 한 묶음으로 엮어 비판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녹색정의당은 사실상 외면받고 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한 큰절 소식도 부정 평가 한줄 없이 전했다. 조선일보의 이러한 보도는 보수진영에서 비판의 대상조차 되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을 잃고 쇠퇴한 진보정당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