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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건 의료 공공성 확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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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파업이 장기화하고, 대학병원 진료 시간이 단축되면서 시민은 제대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지 않을까 불안하다. 특히나 가족 중 누군가가 큰 병으로 입원이나 수술을 앞두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면담 후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비대위원장)은 “한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는 짧은 글만 남겼다.

우리 의료체계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전공의 입장에서 한국 의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맞다.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지금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 문제를 고치지 않고서는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서 의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현재 중대형병원이나 필수 의료 진료과에서는 의료진의 근무 과중 현상이 심각하며, 이는 신규 지원 인원의 감소로 이어져 근무 과중의 악순환을 낳는다.

“한국 의료 미래는 없다”

특히, 외과 계열이 문제다. 외과 계열 전공의들은 주 80시간 이상 초과 근무에 시달린다. 이는 전공의에 의존하는 대학병원 시스템, 필수 의료 붕괴, 전문의 지원 감소 등의 복합적인 영향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시스템 개선과 의사 정원 증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상황이 어렵다고 서두를수록 문제는 더욱 꼬일 수 있다. 작은 것부터 합의하고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정부, 전공의를 포함한 의료계, 국민 3자 간의 합의로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그 중심에는 의료 공공성 강화 방침이 자리해야 한다.

한국의 의료비 증가율은 지난 2021년 연간 19.3%를 기록했다. 2001년(20.9%) 이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20%에 육박했다. 2022년 국민 의료비는 209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9.7%에 달했다. 이 비율은 2022년 사상 처음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9.5% 추정)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더불어 의료비의 급증은 의료의 지속가능성과 공공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공병원 비중이 큰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독일의 경우 주정부가 지원하는 공립병원과 종교·복지재단 등이 운영하는 공익병원을 합치면 전체 병원의 63.2%(2020년 기준)를 차지한다. 병상수로는 81.8%에 달한다. 그만큼 독일의 병원 공공성 수준이 높다. 일본의 병원 중 약 27.2%가 공공병원(병상 수 기준)이며, 전체 병원 중 개인 및 의료법인이 설립한 병원 수는 70.3%에 해당한다. 공공병원과 공익형 민간병원을 합친 비율이 전체 병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미국도 공공병원이 22%를 차지한다.

반면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공공의료 비중 추이’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말 한국의 공공병원 비율은 기관수 기준 5.2%, 병상수 기준 8.8%, 의사인력 기준 10.2% 수준에 머물러 OECD 꼴찌였다.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목련이 핀 나무를 지나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공공성 확대가 절실하다

특이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의료기관 중 일정 자산을 요건으로 삼는 의료법인을 제외하곤 법인이 전무한 반면, 일본은 다양한 의료법인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의료의 공공성과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차례 의료법을 개정하는 노력을 기울인반면, 우리나라는 전혀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의료법인을 자산 조건으로만 인정할 것이 아니고, 자산은 적더라도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법인을 사회의료법인으로 인정하는 법률을 제정해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전공의의 열악한 근로 환경, 가파른 의료비 지출 증가도 우리나라의 의료 공공성 부족과 무관하지 않다. 과잉진료를 유발하는 현 행위별 수가 지불제도도 환자 중심 가치기반 지불제도로 전환해야 한다.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공공병원과 공익형 민간병원을 늘려야 한다. 의대 정원 증원 여부는 이 바탕에서 논의돼야 한다. 그래야만 전공의 근로환경 개선을 이루고, 의료비의 과다한 증가도 막을 수 있다. 물론 시민도 의료 과잉 소비를 줄이고, 주치의를 두고 평소 건강관리에 힘쓰는 등 의료 이용 행태를 합리적으로 바꿔야 한다. 불필요한 의료비 낭비를 줄이고, 이를 전공의 근로 환경 개선과 지역의료, 일차의료 환경개선에 써야 한다. 전공의 파업을 계기로 우리나라 의료의 오랜 병폐를 고쳐야 한다. 지금 고치지 못하면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

▲임종한 인하대 의대 교수(주치의제도 도입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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