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의사 2000명 vs 의과학자 0명] ②기초의학 교수는 ‘멸종위기종’
정부와 의사단체의 정면 충돌 틈바구니에서 관심 밖으로 밀려난 국정과제가 있다. 대통령이 여러 번 강조했던 ‘의과학자 양성’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와중 ‘K-방역’이 주목받았지만, 감염병의 게임체인저는 미국·유럽의 백신이었다. 의료 서비스는 앞섰지만 의학은 뒤처진 한국이 의과학자를 주목한 계기다. 그러나 연 2000명 의대 증원에 의과학자 몫은 없다. ‘임상과 연결된 의과학’ 언급은 현상 유지와 다름 아니다. 의료개혁 막판 협상에 의과학자 양성이 다뤄져야 할 이유다.
“기초의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멸종위기종’이 됐다.”
정부가 의과학자 육성을 두고 ‘별도 트랙이 아닌 기존 의대 교육 내에서 임상과 연결해 발전시키겠다’는 안을 내놨지만, 의과학자 교육의 바탕이 되는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등 기초의학을 가르칠 인력은 단 5년 후면 바닥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인겸 경북대 약리학과 교수(대한기초의학협의회 부회장)는 “기초의학 교수 부족 현상은 이미 여러 차례 보고된 일”이라며 “임상의에 비해 열악한 대우와 불확실한 장래 탓에 기초의학 기피 현상이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몸담은 경북의대는 대표적인 비수도권 국립 의대다. 이번 지역의료 확충안에 따라 경북의대 2025학년도 입학 정원은 110명에서 200명으로 90명 늘어난다. 하지만 현재 경북의대 교수 약 350명 중 기초의학을 가르치는 교수는 50명, 전체의 7분의 1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들조차 모두 50대 후반에 접어들어 은퇴를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기초의학을 가르치는 의과학자가 거의 멸종위기종이 됐다”며 “1990~2000년대 의대 졸업생이 대부분 임상의를 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의과대학·의과전문대학원협회(KAMC)가 지난해 11월 전국 40개 의대·의전원의 기초의학 전임교원 수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수도권 사립대의 학생 1인당 전임교원 수 평균은 0.79명이었다. 비수도권 국립대는 0.44명으로 가장 적었다. 특히 병리학, 예방의학 등 ‘전통 8개 기초의학’에서 5년 내 퇴직 예정인 교수가 전체의 60%를 차지했다. 반면 임상의학 교수의 46.1%는 40대로 비교적 젊은 편이었다.
보고서는 “향후 5년 안에 기초의학 교수가 충원되지 않으면 가까운 시일 내 기초의학 교수의 부족 현상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의들도 대학교수로 남기보단 미국 대학병원, 기관 등 다른 일자리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기초의학 연구 인력을 거의 양성하지 않는 교육 과정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의대 교육의 1차 목표가 의료 현장에 투입될 임상의를 양성하는 것인 만큼, 대학에서도 기초의학을 장려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임상의학 교수와 기초의학 교수의 급여 수준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이로 인해) 1990년 후반 이후 현재까지 소위 임상의 선호 현상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보다 이전에 의학 연구의 길을 선택한 이들이 현재 은퇴를 앞둔 기초의학 교수들이다.
이영미 고려대 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는 “현재 기초의학 교육은 ‘진짜 연구자’를 양성하기 위한 과정이라기보다는 기본 개념과 지식을 쌓는 과정에 가깝다”며 “이 정도론 의학 연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자신의 연구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특별한 트랙을 만들어야만 의대 교육 과정을 통해 의학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의대 교육 과정 내에서 임상과 실습을 똑같이 수행하면서 연구한다면 결국 교수 임용 등 특정 자리를 놓고 경쟁할 때 비(非) 의대 출신 연구자보다 가시적인 연구 성과가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만들어 학생들이 의과학을 택할 수 있게끔 장려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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