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번 4.10총선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과정에서 부각되지 않고 흘러간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민주당의 현역 교체율이 크게 높아졌다는 점이다.
공천관리위원회가 출범했던 지난 1월11일 기준 민주당 현역의원 167명 가운데 지역구 공천을 받는 이는 96명에 머문다. 더구나 이들 중 3분의 1가량은 경선을 거치고서 겨우 공천장을 받을 수 있었다.
민주당 공천에서 현역 교체율은 42.5%로 2020년 총선 때보다 14.6%포인트 높아졌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처럼 시스템공천을 도입한 국민의힘의 현역 교체율 34.5%와 비교해도 8%나 높다. 특히 민주당의 심장인 광주에서 현역 교체율은 88%나 됐다.
이를 놓고 기성 언론에선 ‘비명횡사, 친명횡재(비이재명계의 공천탈락과 친이재명계의 무난한 공천)’의 프레임으로 바라봤다. 당내 기반이 약한 이재명 대표가 친명 원외 원사를 대거 공천해 비명 현역 의원을 밀어냈다는 것이다.
물론 강북을의 박용진 의원을 비롯해 일부 사례를 보면 이런 의혹을 품을 여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비명 인사 중에서 단수공천을 받은 사례가 부지기수이고 친명 인사인데 공천에서 탈락한 경우도 여럿 있었다.
이런 점 때문에 민주당의 현역 교체율이 높아진 것을 놓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로만 단순하게 치부해선 안 된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특히 150여만 명에 달하는 민주당 권리당원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민주당 경선은 ‘권리당원 50%, 일반 국민 여론조사 50%’ 방식으로 치러졌는데 이 과정에서 지역구 기득권을 가졌던 현역 의원들이 대거 탈락했다. 텃밭 대구’경북에서 지역구 현역 의원이 대거 살아남은 국민의힘과도 대조된다.
이전 총선까지 정치 신인이 현역 의원을 이기는 일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현역 의원은 인지도가 있는 데다 권리당원 명부를 갖고 있었고 당원 추천 권한도 직간접적으로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민주당의 권리당원들은 버스에 실려 동원되던 과거 선거 관행 속의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 이번 공천 과정에서 나타났다.
정권 심판 여론이 대체로 우세한 이번 총선에서 정부’여당에 제대로 맞서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면 권리당원들은 가차 없이 현역 의원을 경선에서 내쳤다.
이해찬 민주당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지난 3월28일 유튜브방송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시스템 공천과 관련해 “2020년 총선에 처음 적용을 했으나 그때는 권리당원 숫자가 많지 않았다”고 짚었다.
이 위원장은 “그 뒤 대선을 거치면서 6개월 이상 당비를 낸 권리당원이 150여만 명으로 늘었는데 한 지구당에서 5천~6천 명씩”이라며 “그들은 지역위원장이고 그 누구도 관리가 안 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권리당원들이 자기 표로 직접 공천에 관여할 수 있다는 효능감을 느꼈고 이런 환경 변화를 모르고 옛날 식으로 하던 사람들은 다 떨어져 나갔다는 게 이 위원장의 분석이다.
과거 현역 의원들이 알음알음으로 선정했던 대의원 중심으로 운영되던 당이 권리당원의 뜻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당심과 국민 여론이 동떨어지지 않고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분석을 종합해 보면 민생 악화와 정부 여당의 이런저런 실책으로 현재까지 선거판세는 대체로 야당에 우세한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민주당에서도 조심스레 단독 1당을 목표로 삼고 있고 정치권에서 나오는 분석도 별다른 돌발변수가 없다면 22대 국회는 ‘여소야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현재까지 우세하다.
이런 현재 판세가 그대로 선거 결과로 굳어진다면 민주당 권리당원들은 직접 후보를 뽑았다는 효능감에 더해 국회 구성도 자신들의 힘으로 이뤘다는 엄청난 자신감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자신감은 후진적 정치 구조를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선 표를 얻기 위해 내놓은 공약을 지키라고 압박해 다음 선거에서는 ‘빌 공(空)자’ 공약을 내지 못하게 할 수 있다.
특히 엄청난 국회의원의 특권을 내려놓게 만드는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국민의 공복이면서도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전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연봉 1억5700만 원가량을 받는다. 이는 경제 규모와 국민소득을 고려할 때 세계 최고 수준으로 여겨진다. 더구나 죄를 지어도 구속되지 않고 확정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월급을 따박따박 받는다.
이뿐 아니라 9명이나 되는 보좌진과 사무실 지원 경비와 각종 국고보조를 받으며 공항 귀빈실을 비롯해 비행기, 열차, 각종 시설을 공짜로 이용한다.
모두 180여개나 된다는 국회의원 특권을 놓고 지금껏 문제 제기가 많았다. 일례로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6월 ‘국회의원 무노동 무임금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시민단체에서도 국회의원 특권폐지를 지속해서 주장했다. 지난 3월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는 나라사랑 공생시민운동을 비롯한 단체들이 집회를 열어 이런 자신들의 뜻을 알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중이 제 머리 깎지 못하듯’ 국회의원 특권 폐지와 관련한 논의는 지금껏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당 권리당원 사이에서 분 변화의 바람이 총선 이후에도 이어진다면 국회의원 특권 폐지를 향한 사회적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수 있다.
물론 현재의 후진적 정치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내각제라든가, 중대선거구제라든가 좀 더 거대한 담론을 꺼내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각에서 나온다.
다만 이에 앞서 국회의원 특권 폐지부터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국회의원 특권이 폐지되면 나라를 위해 법을 만들고 정부가 제대로 일하는 지 감시할 진정한 국민의 대표가 뽑힐 가능성이 커져 사회구조를 좌우할 권력구조의 개혁도 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정치가 좋아지기 위해서는 민주당뿐 아니라 국민의힘에서도 당 지도부가 아닌 권리당원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필요성이 크다.
거대 양당에서부터 당원들의 뜻이 원활하게 반영된다면 우리 정치에 국민들의 의사가 잘 담기는 그야말로 제대로 된 대의정치가 정착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박창욱 정책경제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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