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4월1일 동아일보가 창간했다. 1953년 4월1일 장준하가 월간지 사상계를 창간했다. 1980년 4월1일 조선일보가 ‘세대’라는 잡지를 인수해 월간조선으로 제호를 바꿔 발행을 시작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문화통치라며 민간신문 발행을 허용했다. 동아일보는 서울신문, 조선일보에 이어 세 번째로 오래된 일간지로 동아일보 창간호 사시는 ‘민족의 표현기관으로 자임’, ‘민주주의 지지’, ‘문화주의 제창’이었다. 초대 사장은 박영효였고 사실상 경영자는 호남 지주 인촌 김성수였다. 김성수는 전북 출생으로 1951~1952년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을 지냈다. 김성수는 창씨개명에 응하지 않았고 동아일보는 창간 이후 1940년 8월 강제 폐간때까지 정간 4회를 비롯해 발매금지처분, 압수처분, 기사삭제 등의 검열을 일상적으로 받았다.
동아일보는 1921년 민간신문 최초로 윤전기를 도입했다. 동아일보 구사옥은 1926년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 마코토가 설계했는데 지금은 일민미술관과 신문박물관으로 사용한다. 현재 본사는 서울 광화문 구사옥 옆 동아미디어센터다.
1953년 4월1일, 장준하가 전쟁 중 수도 부산에서 월간 종합잡지 사상계를 창간했다. ‘사상’은 전쟁 중 국민사상 통일, 자유민주주의 확립 등 사상운동을 주도하며 통권 4호까지 발행한 잡지인데 장준하가 이를 인수해 ‘사상계’로 제호를 바꿔 창간했다. 황석영, 김지하, 이청준 등 한국 현대 문인들을 사상계에서 발굴했다.
사상계는 1970년 5월 김지하의 ‘오적시’를 게재한 것이 문제가 돼 폐간 처분을 받아 통권 205호로 종간됐다. ‘오적’은 부패한 한국 권력층의 실상을 을사늑약 당시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 등 오적에 비유해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군 장성, 장차관 등을 도적으로 표현했다.
서울의 봄이라 불리던 1980년 4월1일 이낙선이 운영하던 월간지 ‘세대’를 조선일보가 인수해 제호를 ‘월간조선’으로 바꿔 발행하기 시작했다. 조갑제가 1991년부터 2004년까지 편집장을 지냈다. 2001년 1월 조선일보에서 ‘월간조선사’로 분리독립했고 초대 대표는 조갑제가 편집장을 겸임하며 맡았다. 월간조선사는 2010년 이후 조선뉴스프레스로 이름을 변경하고 주간조선, 여성조선 등 조선일보에서 나오던 잡지계열을 모두 발행하고 있다.
한편 2003년 4월1일, 홍콩 영화배우 겸 가수 장국영(당시 47세)이 홍콩 중심가 만다린 호텔 객실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 만우절이라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다’는 말이 따라붙었다. 장국영은 홍콩 누아르 대표작 ‘영웅본색’을 비롯해, ‘천녀유혼’ ‘아비정전’ ‘해피투게더’ 등 여러 작품을 남겼고, 그가 나온 ‘패왕별희’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천안문 6·4항쟁 관련해 중국 정부를 비난하는 발언 등이 논란이 됐고 1990년 은퇴를 선언했는데 당시 일부 팬들의 자살소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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