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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가슴에 칼을 꽂은 철거민, 대법원은 그 ‘칼’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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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 칼 가우스(Carl Gauss) 이야기

매일 저녁식사 후 산책을 가는 교수가 있었다. 그는 늘 산책을 나가기 전에 자기 책상 위에 문제 3가지를 메모해 올려놓고 제자에게 풀도록 시켰다. 어느 날 제자가 교수 책상 위 문제를 가지러 왔는데 2개밖에 없었다. 한참 찾다가 교수의 책 사이 끼어있는 메모지에 ‘컴퍼스 한 개와 눈금 없는 자로 정 17각형을 완성할 수 있을까’​라고 써진 것을 확인했다.

메모지 내용이 세 번째 문제라고 생각한 제자는 밤새 답을 풀어 제출했다. 그런데 책 사이에 끼인 메모는 제자에게 줄 숙제가 아니라 당시 수학계 최고 난제로서 교수 자신도 풀어보려고 끙끙대던 흔적이었다. 이를 제자가 하룻밤 만에 해결한 것이다. 그 제자의 이름은 훗날 위대한 수학자가 된 칼 가우스(Carl Gauss)다.

메모가 수학계의 난제임을 가우스가 알았다면 답을 낼 수 있었을까? 엄두도 내지 않았거나 대충 풀다 포기하고 틀린 답을 교수에게 줘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 수학자들 모두가 머리 싸맨 문제를 한낱 학생인 자신이 풀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자신하지 않았을 테고, 못 풀어도 누군가 자신에게 실망할 리도 없으니 대강 시늉을 하다가 오답을 제출하고 말았을 일이다.

‘저는 칼 가우스와 같이 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판사님도 그렇게 해주십시오’라고 준비서면에 쓰고 싶은 심정이다. 위 일화를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말한다. ‘어려운 사건에 직면했을 때 너무 당황하지 말자. 권위의 효과(authority effect)에 위축되지 말고 창의적으로 도전하자.’ 거대한 권위에 눌려 어려운 사건이 무엇일까? 대법원 판례의 반대 결과를 내야 하는 사건이다.

대법원 판례에 맞설 때의 고민

어느 날 법원 앞에 서서 생각했다. ‘대법원 판례가 옳지 않다고 생각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법률 위반인지 명확하지 않아 대법관들의 해석에만 따른 판례인데 그 분들의 해석에 이견이 생길 때 말이다.

의뢰인에게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설명하는 것이 첫째다. 그 판례에 대해 ‘변호사는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히는 것은 둘째인데, 꼭 의견을 밝히지 않아도 된다. 해고를 당한 경우와 같이 의뢰인이 더 포기할 무엇도 없이 벼랑 끝에 있을 때는 대법원 판례와 다퉈보자는 의사합치가 이뤄지기도 한다. 단 이때도, 다툴 만한 법리가 충분한 경우로 제한한다.

그런데 이제 1심 법원 재판이 시작되면 호기로운 각오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일들이 생긴다. “대리인이 잘 알다시피 대법원 판례도 있는 사안이고…”라며 드러내 놓고 화해 권고나 조정을 언급하는 판사는 오히려 고마운 경우다. 보통은 재판 첫 기일 또는 둘째 기일에 판사와 이러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러면 특히 노동 사건, 소수자·약자들의 사건인 경우 많은 고민과 함께 앞으로 반복될 큰 벽들을 보며 허탈함을 느낀다.

입속에서만 말이 맴돈다. ‘대법원 판례가 잘못되었으니 바로잡아달라고 재판을 시작한 것인데요?’, ‘대법원에 바로 갈 수는 없잖아요?’, ‘판사님은 기존 대법원 판사와 본질적으로, 그리고 법률상 독립된 기관이잖아요.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고 판사님도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시면 안 되나요?’ 그렇지만 이쯤 되면 재판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 왜 모르겠나. 법정에 오지 않은 의뢰인에게 오늘 재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답이 없다.

대법원 판례들은 훌륭하다. 그러나 그 역시 인간의 일이라 무결(無缺)할 수 없다. 가끔 사실관계나 법률을 오해해서 억울한 사람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대법원 판례도 있긴 있을 것 아닌가. 그래서 입 밖으로 내어 말하고 싶다. ‘판사님들, 대법원 판례가 있더라도 처음부터 잘 한 번 살펴주세요’, ‘말하고 청할 정당한 기회를 주세요’, ‘저는 칼 가우스와 같이 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판사님도 그렇게 해주십시오’라고 준비서면에 쓰고 싶은 심정이다.​

▲ 대법원 전원합의체(자료사진). ⓒ연합뉴스

장위동 철거민 사건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 간부에게 전화가 왔다. 서울 강북구 장위동 재개발구역 철거민 대표자가 자기 가슴에 칼을 꽂았다는 것이다. 용역 철거인부들의 급습에 맞서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었으나 크게 다쳤다.

그 지역 철거민들을 위해 몇 가지 소송과 법률자문을 좀 맡아 달라는 부탁을 듣고는 며칠 뒤 퇴근길에 차를 몰아 그곳으로 갔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15년 전 대학 시절 연대 활동을 갔던 철거촌들의 모습과 똑같았다. 버석거리는 유리파편들, 철물골재가 그대로 삐죽이 드러나 흉물이 된 건물들, 전쟁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피폭 후 민간인 마을의 모습과 전체적으로 유사한 풍경 말이다.

개중에 꽤 멀쩡한 건물 2층에 철거투쟁 중인 원주민들이 모여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장 상황을 공유받고 진행 중인 소송, 법적 문제를 들었다. 역시 예상했던, 알고 있던, 겪어 봤던 일들이었다. 철거민 투쟁은 ‘공룡’같다고 나는 표현하곤 한다. 자본주의가 태동한 이래 문제의 본질은 물론이고 싸움의 겉모습도 거의 변하지 않는 현장이라는 뜻이다.

순서는 이렇다. 원주민들이 모여서 산다. 자연스레 상권, 교육환경, 교통권 등이 생겨서 살만한 곳이 된다. 땅값이 올라간다. 건설자본이 땅을 산다. 국가가 재개발을 허가해 준다. 더 많은 건설자본이 마을로 들어온다. 원주민에게 헐값을 제시하며 나가라고 한다. 원주민이 말을 안 들으면 건설자본이 감정 평가한 금액 또는 국가기관인 수용재결위원회가 결정한 금액만큼을 법원에 맡기고(공탁) 토지 및 건물 인도소송, 퇴거 가처분소송을 제기한다. 건설자본이 승소한다.

원주민은 ‘이 돈으로는 주위에 어디 이사 갈 수가 없다’며 버틴다. 건설자본과 용역 철거인부, 경찰 이렇게 세 조직이 힘을 합쳐서 밀고 들어온다. 강제집행이다. 집이 무너지고 가족들이 질질 끌려 나간다. 버티기로 결의한 원주민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고 튼튼한 고층건물 하나를 지정해서 투쟁 기지를 만든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투가 시작된다.

이렇게 투쟁하던 중에 수많은 용산참사가 일어났었다.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대체 언제 적 이야기란 말인가. 그런데 이 이야기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래서 이 투쟁은 ‘공룡’이다. 야밤에 장위동 주민들과 첫 만남 이후 돌아오면서 고민에 빠졌다. 조력을 하기로는 했는데 과연 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까. 우리에게 불리한 대법원 판례가 이미 있는 상황에서.

철거민 사건의 일반적 구조와 전개

재개발조합은 철거민들에게 ‘토지 및 건물 인도소송’을 제기해서 1심과 2심에서 이미 승소했으며 철거민들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아 확정된 상태였다. 판결문은 간단했다. 감정평가한 금액 또는 공시지가 또는 국가기구인 수용재결위원회의 결정 금액 정도를 재개발조합이 공탁했으니까 철거민들은 각자 자기 집과 땅을 내놓고 나가라는 내용이다.

철거민들은 합의 과정에서부터 시종 ‘보상금이 충분치 않다’는 주장이다. 보상금이 충분한지 아닌지 다툼인데 법원은 철거민들이 요구하는 만큼을 절대 인정해 주지 않는다. 철거민들이 요구하는 만큼 다 들어주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서울시내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주변 집값, 땅값이 너무 인플레이션 되어 있어서 그 시세 또는 호가를 객관적 보상금으로 인정해 주기가 법원으로서도 곤란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길게 봤을 때도 지금의 비정상적인 부동산 ‘거품’을 법원이 공식적으로 용인하는 것이 타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철거민 중 소송을 진행할 경제적, 정신적 여유가 있는 분들이 간혹 보상금 증액청구 소송이라는 것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법원으로서는 일단 기존의 수용재결위원회 결정금액에 따라 책정된 보상금을 재개발조합이 공탁한 이상, 우선 집에서 나가라는 판결을 내린다. 보상금 증액은 별도의 소송에서 알아서 다투라는 것이다. 재개발 공사 진행은 해야 하니까 집을 부수고 땅을 일구게끔 철거민들은 어서 나가라는 취지다. 철거민들이 집안에서 버티는 바람에 공사가 늦어지면 지자체나 업체의 손해가 일파만파 커진다는 이유도 법원의 근거다.

최근 전광훈 목사의 사랑제일교회 알 박기 사건도 이런 철거투쟁과 같은 양상이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사건과 같은 지역인 장위동 재개발구역이기도 하다. 전광훈 목사 사례도 인도소송과 가처분에서 져서 강제집행 당하는 과정이었다. 다른 사회적 갈등이 다 마찬가지지만 재개발 갈등 역시 선악의 문제는 아니다. 누구 한 쪽이 정당성을 다 가져가는 갈등은 없다. 결과적으로 적절한 보상금이 얼마인지 문제다. 그 과정에서 합리적인 협의와 민주적인 대화가 있었는지도 주요한 사회적 문제다.

그리고 결과인 보상금 액수와, 과정인 협의·대화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자본과 보수언론은 전자에 있어 철거민의 요구를 강조하면서 과도한 사익추구로 몰아 공격하고, 철거민과 진보언론은 후자에 있어 재개발조합과 건축주, 지자체가 힘으로 밀어붙이는 폭력성을 강조하면서 반인권·반민주·재산권침해 요소를 공격한다. 해결책은 그래도 후자의 문제를 해결한 후 전자의 문제를 부드럽게 해결해나가는데 있다.

재개발조합은 인도소송 승소 확정 후에도 나가지 않는 철거민들을 더 강하게 압박하기 위해 한 가지 소송을 더 건다. 바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이다. 인도소송에서 철거민이 최종 패소 확정된 날 또는 퇴거하라는 가처분소송에서 진날 집에서 나가야 하는데 안 나가는 경우, 그 나가야 하는 날 다음날부터 그 집에 머무르면서 생긴 이익을 ‘부당이득’으로 규정하고, 그 집을 부수거나 활용해서 공사를 해야 하는 재개발조합에 부당이득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이다. 인도소송에서 패소 확정된 철거민이 자동으로 지는 성격의 소송이다. 논리구조상 그렇지 않은가.

▲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던 노원구 백사마을 재개발정비사업이 인가된 2021년 3월 4일 마을의 모습. ⓒ연합뉴스

장위동 철거민 소송

장위동 재개발구역에서 끝까지 버티면서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 피고로 응소 중이던 가구는 두 가구였다. 철거민 대표자 가족과 또 다른 한 가족이었다. 두 집 모두 부동산 인도소송은 패소 확정,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의 경우 한 집은 1심에서 패소한 상태, 다른 한 집은 1, 2심 모두에서 패소한 상태였다. 나는 상소하여 각각 2심과 3심을 대리하면서 일을 시작했다. 이보다 막막한 경우가 있을까. 이미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에서 최종 패소 확정된 집들이 잔뜩 있기도 했다. 그래서 마음이 편했다고 해야 할까. 온갖 궁리를 해보았다.

그러던 중 기록을 보다 재개발조합이 주거이전비, 이주정착금, 이사비 이 세 항목을 아직 공탁하지 않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자, 꼬리를 흔들어 몸통을 흔들자’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위 세 항목은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재개발사업 시행자가 철거민(현금청산대상자나 세입자)을 상대로 부동산 인도청구를 할 때 먼저 지급할 의무가 있는 돈이다. 금액으로 치면 많아야 몇백만 원 정도 될까. 10억 원 이상의 해당 토지, 주택 가액에 비할 때 소액이고, 해당 가구 때문에 지연된다고 하는 공사의 수천억 원 전체 비용을 생각하면 호수 앞 한 컵의 물 정도라고 재개발조합 측이 주장할 게 뻔히 보였다.

게다가 이미 1심, 2심 법원은 위 세 가지 항목이 심지어 ‘손실보상금’에 포함조차 안 되는 것이라고 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그 근거는 다른 사건 1심, 2심 하급심 선행판결이나 재판부 해석 따위가 아닌, 확고한 대법원 판례였다. 1심, 2심 판결문 관련 내용은 아래와 같다(서울북부지방법원 2018가단126754 판결).

“피고들은 이 사건 변론종결 이후 주거이전비, 이사비 및 이주정착금을 지급받기 전까지는 이 사건 부동산을 사용·수익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하나, 주거이전비, 이사비 등은 주거용 건축물이 공익사업시행지구에 편입되어 당해 건축물 소유자나 그 세입자가 주거를 이전하여야 할 경우 공익사업의 추진을 원활하게 함과 아울러 주거를 이전하게 되는 거주자들을 보호하려는 사회보장적인 차원에서 지급하는 금원인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서(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7다8129 판결, 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6두2435 판결 참조), 정비사업의 시행으로 인해 거주자들이 주거용 건물을 사용․ 수익할 권능을 제한받음으로써 입게 되는 손실에 대한 보상 즉 사전보상원칙이 적용되는 손실보상금에는 해당하지 않으므로, 피고들이 손실보상금이 아닌 주거이전비 등의 미지급을 이유로 이 사건 부동산의 인도를 거절하고 사용·수익할 권리가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래도 주장하기 시작했다. 위 대법원 해석을 뒤집어야 했다. 앞서 말한 세 항목도 손실보상금이라는 점, 그래서 그걸 안주면 부동산인도를 거부할 수 있다는 점까지 말이다. 민법상 ‘동시이행의 항변권’이다. 내가 받을게 있으니까 아직 집에서 나갈 수 없다는 주장이다. 상점에서 물건 값을 덜 치르면 주인이 물건을 손님에게 내놓지 않을 수 있다는 법리다.

놀랍게도 우리 사건에서 대법원은 철거민 손을 들어주었다. 세 항목에 해당하는 돈을 안 줬으니까 철거민들은 그걸 다 받기 전에는 집에서 안 나가도 된다, 즉 부동산 인도를 거절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부동산 인도소송도 대법원에 상고했더라면 이겼을 텐데 2심까지 연이어 패소한 후 상고하지 않아 확정되어 버린 게 못내 아쉬웠다. 여하간 이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 대법원 판결의 주요 부분은 아래와 같다(대법원 2019다207813 판결).

“위에서 본 사실관계를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보면, 피고는 이 사건 사업구역 내에서 주거용 건축물을 소유하면서 거주하던 사람으로 토지보상법령에서 정한 주거이전비 등의 지급요건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고, 피고가 주거이전비 등의 지급대상자인 경우에는 원고가 피고에게 협의나 재결절차 등에 의하여 결정된 주거이전비 등을 지급하여야 구 도시정비법 제49조 제6항 단서의 손실보상이 완료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원심은, 원고가 주거이전비 등에 대하여 재결신청을 하지 아니하여 수용재결에서 주거이전비 등에 대하여 심리·판단하지 않은 채 산정한 토지나 지장물 등 보상금을 공탁한 것만으로 구 도시정비법 제49조 제6항 단서에서 정한 손실보상이 완료되었다고 단정하고 원고의 이 사건 부동산에 대한 인도 청구를 인용하였다. 이러한 원심 판단에는 구 도시정비법 제49조 제6항 단서에서 정한 토지보상법에 따른 손실보상 완료의 의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법원의 용기

재개발 사건을 여럿 해왔다. 철거민을 대리해 재개발조합과 싸우는 소송이다. 재개발 전문 법무법인은 넘쳐난다. 그런데 다 재개발 조합, 사업자 대리만 하지, 철거민 대리 전문 변호사는 어디에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상대방은 늘 돈이 많고, 재개발 사업자측 전문 변호사들은 몹시 사납게 달려든다. 한 건이어도 선례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중요성은 철거민, 재개발조합 둘 다 마찬가지로 존재 전부를 걸 정도다. 그러나 우리는 최소한의 생존권을 지키려는 목적이고, 그들은 돈을 더 많이 벌려는 목적이다.

수십 년 일궈낸 마을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재개발 조합의 감언이설에 속아 아직도 보상 또는 새 주택을 받지 못한 원주민들이 있다. 나머지 원주민들은 사실 어느 정도 부족하나마 현금 보상을 받고 대부분 마을을 떠난 후 연락도 안 된다. 연락하면 화내기 일쑤다.

앞서 소개한 장위동 철거민 소송은 초장부터 패색이 짙게 드리워진 소송이었다. 자기 가슴에 칼을 꽂은 철거민, 수십 년 거주한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또 수십 년 거주한 단독주택에서 쫓겨나고 철거당한 가족을 생각하면 그래도 악착같이 뭐라도 주장하고 내볼 수밖에 없었던 2년간의 민사소송이었다.

우리 사건에서 대법원은 기존 대법원의 해석을 정반대로 고치고 우리 손을 들어줬다. 판사가 기록을 꼼꼼히 봐줬고, 법리해석도 정확하게 했으며, 과감하게 기존 대법원 해석을 시정한 결과다. 법원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승소의 기대가 별로 없었는데 깜짝 놀란 선고결과였다. 법원이 늘 이렇게만 해준다면 정말 소송할 맛, 연구할 맛이 날 것 같다.

철거민 대표자 부부는 무너진 집을 뒤로하고 어느 산속으로 들어갔다. 다 싫어져서 산속에 집을 지었다고 하신다. 위 대법원 판결 선고 직후 전화를 드렸다. 안부 인사를 서로 나누었다. 사바세계를 떠나셨으니 부디 안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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