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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장’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다. 공수처장 후보군이 2명으로 압축된 지 한 달이 지났으나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1인’을 지명하지 않고 있는 탓이다. 채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과 관련, 이종섭 전 호주 대사에 대한 소환 조사를 두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맡아야 할 사건마저 쌓이고 있어 공수처 수사가 ‘속 빈 강정’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장 자리가 공석이 된 지 71일째에 접어들었다. 김진욱 전 공수처장 임기가 만료된 건 지난 1월 20일이다. 여운국 전 차장도 8일 뒤에 퇴임해 처·차장 자리가 비어 있다. 이후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가 8차례 회의 끝에 지난 달 29일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이명순(22기) 변호사를 공수처장 후보자로 선정했지만, 최종 1인은 정해지지 않았다.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수처법)에 따른 대통령 지명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수처법 제5조(처장의 자격과 임명)에서는 ‘추천위가 2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 중 1명을 지명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대통령이 꼽은 최종 1인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거쳐 공수처장으로 임명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추천회 선정 등 차기 공수처장 임명을 위한 절차가 대통령의 최종 후보자 지목에서 멈춰선 셈이다. 최종 1인이 꼽히더라도 내달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어, 차기 공수처장 선정까지는 두 달여가 더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4·10 총선이 끝나고 인사청문회가 열릴 가능성이 커 빨라야 5월께에야 차기 공수처장이 임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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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길어지고 있는 수장 공석이 수사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전 대사는 지난 29일 사의를 표명했다. 같은 날 이 대사를 대리하는 김재훈 변호사는 같은 날 기자들에게 보낸 공지에서 “(이 전 대사가) 그동안 공수처에 빨리 조사해 달라고 계속 요구해왔으나, 공수처는 아직도 수사 기일을 잡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본인을 수사하라고 재차 요구한 것이다.
공수처 측 관계자는 서울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수사) 일정대로 하는 것”이라며 밝혔다. 아직 조사가 어렵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한 셈이다. 공수처는 앞서 22일 기자들에게 “수사팀은 해당 사건의 압수물 등에 대한 디지털포렌식 및 자료 분석 작업이 종료되지 않은 점, 참고인 등에 대한 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대사) 소환조사는 당분간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공지했다. 이어 “수사팀은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대한 수사에 전력을 기울인 뒤 수사 진행 정도 등에 대한 검토 및 평가, 변호인과의 협의 절차를 거쳐 소환 조사 일시를 통보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대사는 지난 19, 21일, 27일 세 차례에 걸쳐 공수처에 의견서를 내고, 소환 조사를 촉구했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부 군 인사에 대해 참고인 조사를 통보하더라도, 훈련 등을 사유로 불응하고 있다. 여러 모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게 공수처 관계자의 귀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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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맡아야 할 사건도 연일 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앞서 22일 이 전 대사 출국과 관련, 허위 공문서 작성·행사 혐의로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관계자에 대한 고발장을 공수처에 제출했다. 같은 달 19일에는 미래를 생각하는 의사 모임(미생모)과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들의 법률지원단 ‘아미쿠스 메디쿠스)가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박민수 2차관을 공수처에 고발했다.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은 지난 11일 윤 대통령과 박성재 법무부 장관, 조태열 외교부 장관 등을 직권남용, 범인도피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공수처는 해당 사건을 최근 수사4부(이대환 부장검사)에 배당했다. 수사4부는 해병대 수사단이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채 상병 사건 책임자를 조사할 때 국방부 장관이던 이 전 대사 등이 경찰에 이첩된 자료를 회수하라고 지시하는 등 부당한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공수처가 지나온 길을 보면, 논란의 연속으로 설립 취지와도 거리가 먼 모습만 보여왔다”며 “정치권의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수사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정치권 논란의 한 가운데 서 있다”며 “현재와 같은 모습이 계속된다면, 유지보다는 폐지론에 힘이 실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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