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무소속 대통령 선거 후보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가 26일(현지 시각) 변호사인 니콜 섀너핸(Nicole Shanahan)을 자신의 러닝메이트로 공식 발표했다. 1985년생인 섀너핸은 정치 신인으로 알려진 바가 많이 없으나, 구글 공동창업자신 세르게이 브린의 전 부인이자 정치 큰 손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한때 민주당 기부자였던 섀너핸은 올해 수퍼볼 방송 중간에 나간 케네디 주니어의 광고를 위해 400만 달러(약 53억9440만 원)를 후원하기도 했다. 이는 수퍼볼 광고비의 절반 이상에 해당한다.
26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케네디 주니어는 이날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선거유세에서 “나에게 딱 맞는 적임자를 찾았다”며 섀너핸을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소개했다. 그는 섀너핸이 인공지능(AI)과 지적재산권 문제를 헤쳐온 경험이 있는 ‘재능 있는 관리자’이자 ‘열렬한 전사 엄마’라며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최고 수준에 도달한 이미자의 딸, 아메리칸드림의 꿈”이라고 소개했다. 앞서 케네디 주니어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젊은이들을 보살펴주고 그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대하지 않는 사람을 원한다”며 “섀너핸은 겨우 39세로 기술 분야 출신이고 소셜미디어를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섀너핸은 선출직에 오른 적이 없는 정치 신인이다. 10년 넘게 민주당에 기부했지만, 공직에 출마한 적은 없다. 섀너핸은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활동한 건강 및 환경 연구에 중점을 둔 변호사이자 기술 기업가로 경력을 쌓았다. 섀너핸은 형사 사법 개혁, 건강하고 살기 좋은 지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바이아-에코(Bia-Echo)’ 재단을 설립해 현재 운영 중이다. 이전에는 특허 분석 회사인 ‘클리어액세스IP(ClearAccessIP)’를 설립하기도 했다.
◇ 브린과 지난해 이혼, 머스크와의 불륜설로 유명세…‘정치 큰손’이기도
섀너핸은 브린과 이혼하는 과정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섀너핸은 2018년 11월 브린과 결혼해 지난해 이혼했다. 이 과정에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22년 “섀너핸이 브린과 불화를 겪던 중 2021년 12월 머스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보도했다. 섀너핸과 머스크는 WSJ 기사가 보도된 이후 이를 부인했지만, 브린과는 결국 지난해 5월 이혼했다. 섀너핸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7월, 피플지와의 인터뷰에서 “전문직 여성에게 성적 행위로 공개적으로 수치심을 주는 것보다 나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 큰손이기도 하다. 브린과 이혼하기 전에는 다양한 민주당 측 조직에 자금을 지원하는 ‘세르게이 브린 패밀리 파운데이션’에서 일했다. 케네디 주니어가 무소속으로 출마하기 전인 지난해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을 때 법적 최대 금액인 6600달러(약 890만 원)를 기부하기도 했다. 또한 수퍼PAC 기간에만 50만 달러(약 6억7440만 원)를 추가로 기부했다. 지난 2020년 민주당 경선 기간에는 마리안 윌리엄슨에게 2800달러(약 377만 원), 조 바이든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도 2만5000달러(약 3372만 원)를 기부했다.
섀너핸은 케네디 주니어에게 매력을 느낀 것에 대해 지난 2월, NYT와의 인터뷰에서 백신을 포함한 문제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백신 반대자는 아니지만, 백신에 의한 위험이 궁금하다”며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케네디 주니어는 홍역, 소아마비, 파상풍, 뇌수막염, 코로나19 등 기타 질병에 대한 예방접종의 위험성에 대해 사실과 다른 주장을 펴왔다. 또한, 섀너핸은 환경 변호사로서 케네디 주니어의 업적을 칭송하기도 했다. 그는 “이 나라가 환경 보건 위기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며 “미국인이 깨끗한 물을 마실 자격이 있다고 믿으며, 현재의 정치 환경에서는 이를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NYT는 “하지만 케네디 주니어는 백신 반대 운동, 정치 음모론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섀너핸은 이날 케네디 주니어의 러닝메이트로 소개된 뒤 무대에 올라 백신에 대한 회의론, 미국의 만성 질환 및 부패에 대한 우려 등을 언급했다. 그는 “처음에는 케네디 주니어를 지지할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면서도 “인간의 건강과 복지가 매우 중요함에도 우리 정부가 지속해서 무시하고 있는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을 발견했고, 오랜만에 처음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느꼈다”고 강조했다.
섀너핸의 딸은 자폐증 진단을 받은 상태다. 섀너핸이 만성 질환과 환경 오염에 대해 연구하는 계기가 됐다고 전해진다. 섀너핸은 이날 “환경 오염으로 인한 독성 물질이 건강에 위협을 주고 있다”며 “만성 질환 문제는 케네디 주니어가 백악관에 입성할 경우 주요 초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중국인 이민자 어머니·약물 중독 아버지, 자폐인 딸이 정치 입문 동력
오클랜드 출신인 섀너핸의 유년 시절은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날 무대에 올라 오클랜드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면서 슬픈 표정을 지었다. 청중에 있던 섀너핸의 어머니는 중국에서 온 이민자로 회계사가 되기 전까지 비서 등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아버지는 약물 남용과 정신분열증을 앓았으며 직장을 자주 옮긴 것으로 알려진다. 섀너핸은 피플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가끔 폭력도 썼다”며 “슬픔과 두려움, 불안이 가득한 매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말한 바 있다.
섀너핸은 이날 아버지가 약물 남용에 시달렸던 것을 언급하며 “나는 중독, 우울증, 고통을 겪고 있는 수백만 명의 미국인에 대한 통계를 볼 때마다 아버지를 생각한다”며 “이것은 우리 시대의 전염병 중 하나로 거의 모든 미국 가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어 “아시다시피 저는 매우 부유해졌지만, 오클랜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결코 잊지 못할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며 “부의 목적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것”이라고 했다.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 섀너핸이 찾은 안전한 피난처는 학교였다. 섀너핸은 “5살 때부터 판사가 되고 싶었다”며 “유년 시절 집에 돈이 없으면 창의적이고 지략이 풍부하면서도 행동력이 빨라진다”고 말했다. 섀너핸은 12살 때 햄버거 전문점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15살 때부터는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섀너핸은 17세에 워싱턴 주 퓨젯사운드대에서 아시아연구, 경제학, 중국어를 공부했다. 이후 법률 보조원 및 특허 전문가로 일한 뒤 2015년 산타클라라대 법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섀너핸이 브린을 만난 것은 2014년 레이크 타호에서 열린 원더러스트 요가 페스티벌. 이후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브린과 교제하기 시작했다. 섀너핸은 “브린과 스탠포드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양자물리학에 관해 이야기했다”며 “브린은 석사를 밟을 때 자주 갔던 곳, 래리 페이지 구글 공동창업자와 함께 구글을 만든 곳을 보여줬다”고 피플지에 회고했다. 섀너핸은 2018년 브린과 결혼한 뒤 불임으로 한동안 고생하다 딸 에코를 낳았다. 섀너핸은 이날 “여성의 건강과 자폐증 진단을 받은 딸을 돌보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