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서비스 물가 둔화세가 더뎌지면서 상품 물가 상승률을 넘어서고 있다. 서비스 가격에 반영되는 각종 에너지값과 인건비 등 비용인상 압력이 현실화된 데 따른 현상이다. 서비스 물가 상승세가 잡히지 않으면 인플레이션 둔화추세(디스인플레이션)도 정체될 수 있어 금리를 인하하기 어려워진다.
◇ 1월 근원물가 상승률, 서비스가 상품 앞질러
2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근원서비스 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근원상품 물가 상승률을 큰 폭으로 밑돌았다. 격차는 작년 1월 0.4%포인트(상품 4.3%·서비스 3.9%)에서 7월 0.8%포인트(상품 3.9%·서비스 2.8%), 9월 1.1%포인트(상품 3.9%·서비스 2.8%) 등으로 확대됐다.
근원물가는 에너지와 식품 등 변동성이 큰 품목을 제외한 물가를 말한다.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로 활용된다. 이 중 근원상품 물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전후로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지정학적 갈등까지 겹치면서 급등했다. 그러나 서비스물가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낮아 근원물가의 상승폭이 제한됐다.
하지만 작년 말부터 상품물가가 빠르게 하락하면서 격차가 축소됐다. 작년 11월엔 0.1%포인트로 낮아졌고 12월에는 서비스와 상품 상승률이 같았다. 1월에는 상승률이 아예 역전(상품 2.4%·서비스 2.6%)됐다. 상품물가가 다시 치솟으면서(상품 2.7%, 서비스 2.5%) 2월에는 역전 현상이 다시 해소됐지만, 근원서비스 물가 상승률이 더 높아질 가능성은 여전하다.
서비스 물가 상승률이 상품 물가 상승률을 넘어서는 것은 미국 등 주요국에서도 나타나는 상황이다. 미국은 올해 2월 근원상품 물가 상승률이 -0.1%(전년 동월 대비)였지만, 근원서비스 물가 상승률은 5.2%에 달했다. 영국도 2월 상품물가 상승률은 1.1%, 서비스물가 상승률은 6.0%로 나타났다.
이는 물가 상승 압력이 서비스로 이어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통상 서비스 물가는 상품 물가가 오른 뒤에 뒤따라 오른다. 서비스 가격에는 에너지값과 원자잿값, 인건비 등 비용이 반영되므로, 상품가격 변화 흐름을 반영해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 공공요금 곧 오른다… 디스인플레이션 정체 가능성
물가를 관리해야 하는 중앙은행으로서는 서비스물가가 경직적인 흐름을 보이는 것이 달갑지 않다. 전체 물가 상승률 둔화속도가 지연될 수 있어서다. 특히 엔데믹(endemic·감염병의 풍토병화) 후 음식·숙박 등 서비스 수요가 늘어난 상황에서는 더욱더 우려스럽다.
한은은 작년 6월 낸 ‘최근 물가 흐름에 대한 평가’ 보고서에서 근원서비스물가가 근원상품물가에 비해 느리게 둔화하는 현상을 조사한 바 있다. 당시 한은은 외식물가가 서비스물가 인플레이션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한은은 이런 해석을 근거로 “향후 물가 경로와 관련해 상방리스크가 적지 않다”고 진단했다.
현재 한은은 서비스물가의 하방 경직성이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하고 있다. 근원서비스물가 상승률과 근원상품물가 상승률이 모두 물가안정목표인 2%대로 낮아지면서 둔화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다. 한은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서비스물가 상승률이 둔화하는 가운데 상승 폭이 역전된 것이라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면서 “전체 근원물가는 꾸준히 둔화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누적된 비용상승 압력이 낮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물가가 다시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간 정부와 지자체는 경기부양을 위해 공공요금 인상을 자제해왔지만, 한전 등 공기업 적자 문제가 불거지면서 전기·가스 요금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에 작년부터 공공요금이 오르고 있으며, 올해도 일부지역에서 지하철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2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도 이런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금통위원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농산물 등 공급충격과 그동안 누적된 비용상승 압력이 서비스 물가로 전가되고 있는 데 기인할 것일 수 있다”면서 “앞으로도 비용상승 압력 전가 등에 따라 근원서비스 물가가 예상보다 경직적인 둔화흐름을 이어갈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용상승 압력이 서비스물가로 전가되는 과정에는 시차가 있으므로 상품물가 상승이 서비스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면서 “금리를 내렸는데 물가가 다시 오르면 중앙은행으로서는 치명적인 실수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 통화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에 고민이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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