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뇌의 흑역사’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킴 픽은 날 때부터 머리가 컸다. 너무 커서 목이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네 살이 지나서야 스스로 걷기 시작했고, 열 네살까지 혼자 계단을 오르내리지도 못했다. 수업 시간에는 혼자 떠들다 쫓겨나기 일쑤였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여러모로 정상 생활이 힘들었다.
약점이 많은 그였지만, 남들과 비교하기 어려운 어떤 비범함도 있었다. 그는 세 살 때 스스로 알파벳을 깨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전에서 단어를 찾았으며 책 한 페이지를 8~10초 만에 읽어낸 데다 심지어 그 내용을 줄줄이 암송하기까지 했다. 그는 58세로 죽을 때까지 책 1만2천권을 암기했다. 지능지수(IQ)는 평균을 약간 밑도는 87이었다. 그는 서번트(savant), 그러니까 특정 영역에서 비상한 능력이나 특기를 보이지만 대개 뇌 손상, 발달장애, 뇌 질환 등으로 인해 장애가 있는 사람이었다. 킴 픽에게는 뇌의 좌반구와 우반구를 연결해주는 통로인 뇌량이 없었다.
마크 딩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가 쓴 ‘뇌의 흑역사'(원제: Bizarre)는 기이하고 특이한 뇌 질환 환자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뇌에 대한 저자의 전문 지식이 책 곳곳에 담겨 있지만, 흥미로운 사례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과학책이다.
저자는 인지·강박·신체 등 12개 장으로 나눠서 내용을 전개한다. 자신은 이미 죽었으니 묻어달라고 가족에게 요구하는 힐데, 13년 동안 고양이로 살아온 데이비드, 신체의 일부를 절단하고픈 욕구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자기 신체를 훼손한 칼, 담뱃재를 먹고 싶은 욕구를 끊을 수 없었던 엘리프 등 수많은 기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런 기이한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은 저마다 병력은 다르지만, 뇌에 일정한 문제가 있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뇌종양, 뇌 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고, 뇌량처럼 뇌의 한 부분이 없거나 우울증이나 조현병 등 정신질환에 걸려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기이한 행동이 질환에 걸린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강박 장애가 없는 사람도 강박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곤 한다. 또한 많은 사람이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물건을 마치 인간처럼 대하거나 자기 몸의 실제 모습을 잘못 이해하기도 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는 “여기(책) 등장하는 인간의 다양한 행동들이 아무리 특이해 보여도 결국 나와 당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겪는 일”이라며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다”고 말한다.
부키. 이은정 옮김. 3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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