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20도까지 올라 봄 날씨가 완연했던 지난 17일. 여야 현역 의원인 박수영 국민의힘(초선·부산 남갑) 의원과 박재호 더불어민주당(재선·부산 남을) 의원이 부산 남구 대연동에 위치한 UN평화공원에서 마주쳤다. 두 의원은 각자 공원의 끝과 끝에 빨간색과 파란색의 텐트를 치고 야외 민원실을 꾸렸다.
주민과 ‘친근한 스킨십’이 장점으로 꼽히는 박재호 의원은 야외 민원실에 머무는 시간보다 공원을 활보하며 지역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길었다. ‘일 잘하는 실력가’ 이미지가 뚜렷한 박수영 의원은 끊임없이 말을 거는 민원인들과 야외 민원실에서 대화를 나눴다. 자신의 파란색 텐트에서 출발해 평화공원을 가로질러 온 박재호 의원이 박수영 의원의 빨간색 텐트 앞을 스쳐 지나갔다. 민원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박수영 의원은 따로 박재호 의원과 인사를 나누지는 않았다.
주말을 맞아 나들이를 나온 주민들의 이야기도 엇갈렸다. 평화공원에서 만난 용호동 거주민은 “이번에 박수영이 된다고 하던데요. 일주일에 한 번씩 부산 내려와서 민원 듣는 사람은 처음이라 하더라”며 “박재호는 한 게 없다더라”고 했다. 산책을 나온 40대 주민은 “박수영과 박재호 둘 다 유세는 자주 나온다. 그래도 지난번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박재호를 뽑을 생각”이라고 했다.
박수영 의원, 박재호 의원 모두와 사진을 찍은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은 “석포초(부산 남갑에 위치)에 다니는데, 학교에 차 4대를 지원해 줬다고 해서 박수영을 안다”고 답했다. 용당동에 거주 중이라는 30대 부부는 “지역구 후보는 모른다. 그렇지만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가 반반 정도 되는 거 같은데, 그래도 국민의힘이 조금 더 우세한 거 같다”며 “선거는 공약 보고 그때그때 뽑는다”고 답했다.
◇남갑 ‘이재명 저격수‘ 박수영·남을 ‘상도동계 막내’ 박재호 데스매치
두 의원이 이날 마주친 UN평화공원은 부산 남갑(문현1~4동·대연4~6동·용당동·감만1~2동·우암동)과 부산 남을(대연1동·대연3동·용호1~4동) 선거구가 겹치는 장소다. 21대 총선까지 부산 남갑·남을로 분리되어 있던 부산 남구는 인구 수가 줄어들며 22대 총선에서 하나의 선거구로 합쳐졌다. 이에 부산 남구는 여야 현역 지역구 의원이 맞붙는 전국 유일한 지역구가 됐다. 대연역에 위치한 두 의원의 선거사무소는 약 300m 떨어져 있었다. 용호동에 위치한 후원회 사무소 역시 200m가량 거리를 둔 상태였다.
이날 펼쳐진 ‘야외 민원실 신경전’도 두 의원이 모두 현역 의원이라 벌어진 일이다. 지역 주민으로부터 민원을 받는 업무는 현역 국회의원의 업무다. 의원의 업무를 하면서 선거운동을 하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 그래서 두 의원 모두 민원실에 앉아 있을 때는 후보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점퍼를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점퍼를 입은 것이 선거운동으로 간주될 수 있어서다. 박재호 의원은 “민원실에 앉으면 후보 점퍼(후보 이름과 연락처가 새겨진 점퍼)를 입을 수 없다”며 민원실 바깥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박수영 의원도 “인사 다니려면 점퍼가 있어야 하는데…”라며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보였다.
경쟁자가 현역 지역구 의원인 만큼, 두 의원 모두 이번 선거에 임하는 긴장감이 남다르다. 서울대 법대와 하버드대 대학원을 졸업한 박수영 의원은 엘리트 관료의 길을 걸어와 행정 경험이 풍부하다. 초선 의원이지만 여의도연구원장으로 임명되는 등 존재감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대장동과 김혜경 법인카드 등의 의혹을 제기하는 등 ‘이재명 저격수’로 활동해 인지도를 쌓았다.
박재호 의원은 재선이지만 오랜 정치 경력을 자랑한다. 1986년 20대의 젊은 나이에 상도동계 핵심이던 서석재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인사재무비서관 등을 역임했고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거쳤다. 남을에서만 4수 끝에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는데, 그래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인지도와 친밀도가 높다.
◇관건은 상대 후보의 텃밭… 6070 많은 문현동과 젊은 외지인 많은 대연3동
두 의원의 지역구가 합쳐져 선거를 치르게 된 만큼, 부산 남구에서는 상대의 ‘텃밭’을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박수영 의원의 입장에서는 박재호 의원의 텃밭 용호동과 대연3동이, 박재호 의원 입장에서는 박수영 의원의 텃밭 문현동이 그렇다.
문현 1동부터 4동까지 모두 합쳐 약 2만1179명이 거주 중인 문현동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52.2%에 달할 정도로 고령층이 많이 사는 동네다. 그러다 보니 국민의힘 지지세가 강하다. 문현동에 10년 가까이 살았다는 74세 주민은 “연세 많은 분들은 다 박수영 찍을 거다. 국민의힘을 밀어준다고 하지”라며 “부산 시내에서 제일 연세 많은 분들이 많은 곳이 이 아파트인데, 여기가 950세대가 넘는다. 여기 주민들은 국민의힘을 많이 밀어준다. 내 생각에도 이재명은 영 아니고, 한동훈은 똑똑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문현동 아파트 단지에서 마주친 또 다른 73세 주민도 “국민의힘을 좀 더 선호한다”면서도 “그런데 요즘은 국민의힘 지지와 민주당 지지가 반반 같다. 지금 운동하러 가는 모임도 연령이 다양한데, 오히려 60대에서도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사람이 꽤 된다”고 말했다.
반면, 혁신지구가 들어서며 젊은 외지인들이 대거 유입된 대연3동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다. 실제로 지난 21대 총선 당시 대연3동의 민주당 후보(박재호)와 국민의힘 전신 미래통합당(이언주) 후보의 득표율 격차는 6%포인트(p) 이상이었다. 인근 못골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한 상인은 “나는 민주당 지지자다. 윤석열이나 국민의힘이 나오면 TV 채널도 돌린다. 어쩌다 대통령이 된 사람 아니냐”고 말했다.
박재호 의원이 오랫동안 다져온 텃밭인 용호2~4동도 박재호 의원 지지세가 강하다. 용호동 골목시장에서 10년 넘게 장사를 했다는 70대 상인은 “여기는 박재호 지역구라 박재호가 좀 더 우세하다. 그런데 이번에 합쳐지는 남갑이 선거인 수가 더 많다더라”며 “원래대로 선거구가 쪼개져 있었다면 박재호가 현역 의원이니 바로 당선됐겠지. 여기는 시골 사람들이 많은데 박재호는 시골풍이라 호응이 좋다. 그런데 박수영 그 사람은 실력파라는데 귀공자 타입 아니냐. 너무 양반 같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용호동에서 2년 정도 카페를 운영했다는 사장은 “박재호 의원이 용호동에서 인기가 많다. 친절하게 시민들의 마음을 다 읽어줘서. 박수영은 어제 큰아들을 데리고 여기 유세를 하러 왔더라”고 했다. 용호1동에 위치한 대단지 아파트에서 20여 년 넘게 살았다는 모녀는 “박재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고 했다.
◇與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조국 뽑겠다” 목소리도 커
부산·경남(PK) 지역은 일반적으로 여당 텃밭으로 분류돼 보수 지지세가 높다고 분석된다. 그렇지만 부산 현장에서는 ‘윤석열 정권 심판론’도 상당히 거론되는 모습이었다. 특히 양당 모두에게서 실망을 느낀 일부 중도 유권자가 ‘조국혁신당을 뽑겠다’고 하는 모습도 관측됐다.
대연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한 상인은 “이번에 박수영이 될 것 같다”고 전망하면서도 “난 그래도 이번에도 민주당을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동네는 그렇다. 아직까지는 당이 우선인데, 부산에서는 국민의힘이 우세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을 지지하긴 하지만 못마땅한 점도 많다. 이번 공천도 그렇고. 그래도 윤석열이 잘 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고 했다.
부산 북을에 산다는 50대 택시기사는 “40대까지 보수였지만 지금 완전히 진보가 됐다. 김영삼부터 이회창까지 찍었는데, 지금 윤석열 대통령이 너무 못한다”라며 “대통령이 우리가 상상을 못 하는 짓을 한다. 이종섭 주호주대사 같은 사람도 어찌 됐든 피의자 신분인데 출국시키는 것이 말이 되느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당 폭주를 멈춰야 한다. 비례는 무조건 조국을 찍을 거다”라고 말했다.
LG메트로시티 등 아파트 대단지와 고가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 원래는 보수 지지세가 강한 것으로 알려진 용호1동이 이번 남구 선거의 중요한 캐스팅보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용호1동에는 약 4000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있어 1만7000여명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의사와 교수 등의 직군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인 만큼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이종섭 주호주대사 임명 문제 등 현재 논란이 진행되고 있는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할 여지가 크다.
23년 동안 용호1동에서 거주한 50대 부부는 스스로를 ‘원래는 보수 지지자’라고 밝히면서 “이번에 박재호 찍을 것이다. 무조건 윤석열 정권 심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을 좋아하는 건 절대 아니다. 비례는 개혁신당 아니면 조국혁신당을 찍을 거다”라며 “보수라면 자기가 한 일을 부끄러워 할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 나는 이재명과 민주당도 너무 싫지만 정말 중도가 갈 데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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