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한다며 사직서 제출에 나선 지 한 달, 9000명에 달하는 전공의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정부는 ‘2000명 의대 증원’에서 한발도 물러설 수 없다고 밝히고, 의사들도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언론 보도 속 의사 증원 논의는 ‘숫자 줄다리기’로 모인다. 해결되지 않는 의문은 많다. 2000명 늘리면 이들이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현장을 채울까. 병원은 의사가 부족해 간호사에게 무리한 업무를 시킨다는데, 무급휴가를 강요하는 속셈은 뭘까. 수련생인 전공의들이 사직했다고 병원이 마비되는 사태의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 무엇보다, 정부는 늘린 의사를 어떻게 의사가 부족한 필수·지역의료에 배치한다는 걸까.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 정책위원장은 “언론과 정부, 의사집단 모두가 핵심을 빼놓고 얘기하도록 몰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증원 숫자가 몇 명이냐는 문제는 (한국의료의 총체적 문제라는) 코끼리를 두고서 코끼리 다리에 있는 점을 뺄지 다투는 것과 같다. 먼저 물어야 할 건 의사를 어떻게 양성해 어디에 배치할지”라는 것이다. 그는 “의료를 시장에 내맡긴 구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증원 의사가 모두 돈벌이에 투입돼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도 했다.
현 위원장은 서울대병원 분만실 간호사로 일했다. 병원이 간호사를 충분히 배치하지 않아서 밤사이 태어난 아이들이 인공호흡 기회를 놓치는 일을, 간호사 수에 따라 사망자 숫자가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100여 직역의 의료시설 노동자가 속한 의료연대본부에서 노동운동과 공공의료운동에 몸 담았고, 지난해까지 3년 간 24만 명 조합원이 가입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을 지냈다. 1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분회 사무실에서 만난 현 위원장에게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논의해야 할 핵심을 물었다.
-최근 의사파업 보도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드나?
“답답함을 많이 느끼고 있다. 사회 전체, 그리고 구조를 말해야 하는데 현상과 숫자만을 얘기하고 있다. 의사를 몇 명 증원해야 하느냐만 논의하는 건, ‘한국의료의 총체적 문제’라는 코끼리를 두고서, 코끼리 다리에 있는 점을 빼야 할지 다투는 것과 같다. 사람들도 ‘그래서 윤석열 정권 말이 맞아, 의사 말이 맞아?’ ‘몇 명 늘려야 돼?’라고 묻는다. 그러나 의사 증원은 (총체적인 의료 정책 가운데) 의료인 공급, 그 중에서도 의사 공급의 문제다.”
-언론이 빼놓은 중요한 이야기는?
“한 마디로 ‘공공의료’다. 중요한 건 의료가 왜 이렇게 됐느냐, 왜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를 책임질 의사가 부족하느냐는 질문이다. 이는 정부가 공공의료를 성장시키지 못하고 의료를 시장에 내맡겼기 때문이다. 지역 공공의료기관은 절대적으로 적고, 가난한 사람이 가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군사독재정권 때 공공의료기관 비율이 20~30%였는데 지금은 5%다. 아예 공공병원이 없는 시군구도 많다. 전체 병원 95%가 민간병원인데, 나머지 5%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의 80%를 봤다. 전염병 대유행이나 국가 정책을 시행할 때도 공공병원의 역할이 따라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기다.”
의사 돈벌이 쏠림 못 막으면, 증원 ‘양날의 칼’ 될 수도
-의사증원과 파업을 논할 때 공공병원이 왜 중요한가.
“어떤 병원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의사 역할이 달라진다. 지금 사회 문제로 지역의료, 필수의료가 떠오른 것도 그런 이유다. 내과와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필수의료에 일하는 의사가 없고, 서울 아닌 지역에서 일할 의사가 없다. 증원된 의사를 국공립의대에서 공공적으로 양성하고, 여기서 배출된 의사들을 10년 이상씩 지역에서 필수의료에 의무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의사가 늘어나도 이들이 돈벌이에 쏠리는 구조를 막지 않으면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공공의료의 중요성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어찌 보면 (정부가) 일부러 안 드러내는 것으로도 보인다.”
-정부는 ‘의료개혁’이라고 주장한다. 정부 정책은 개혁적인가.
“숫자 자체는 의미가 크지 않다. 증원 규모는 열 사람이 열 개 의견을 내놓을 만큼 근거가 다양하다. 중요한 건 국민들이 필요한 진료를 받고 소아과 ‘오픈런’하지 않아도 되도록 대책을 내놓는 것이다. 즉, 의사를 어떻게 공공적으로 양성해 의사가 필요한 곳에 배치할지다. 정부안엔 그게 없다. 이대로라면 의사들이 지금처럼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으로만 와서 미용·성형 등 돈벌이에 몰리지 않는단 보장이 없다. 총선에 임박해 숫자를 불쑥 내놓은 데에도 의도가 있다고 본다.
윤석열 정부는 어느 정권보다도 의료 민영화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환자 정보를 민간의료보험사에 넘겨 상품화할 길을 터주겠다고 한다. 코로나19 시기 절대다수의 환자를 맡은 공공의료기관은 적자로 고사 직전인데 최소한의 보상도 하지 않고, 민간병원엔 수천억원의 지원을 한다. 20년 넘게 싸워 제주 영리병원을 막아내자 이젠 강원도에 열어주겠다고 한다. 공공병원인 지역의료원이 없는 두 광역시, 울산과 광주에선 의료원 설립을 무산시키고 있다.”
-정부가 내놔야 하는 대안은 무엇인가.
“의사를 증원해 지역과 필수 의료에 배치하겠다면 정부는 공공의대 먼저를 이야기해야 했다. 의사를 어떻게 양성하고, 어떻게 배치할지를 건드리지 않으면 늘어나는 의사가 돈벌이로 갈 가능성을 그대로 노정하고 있다. 공공의료 정책 없이는 의사 증원이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단 얘기다.
의료를 상품 취급하면 안 된다는 점을 전제로, 의료는 일반상품과 다르다. 공급자에 의해 가격이 매겨지고, (병원과 의사의) 의료행위 공급이 (환자의) 수요를 창출하는 특이한 상품이다. 우리나라에선 행위별 수가제가 이를 가속화한다. 거즈값과 주사기값, 피검사비, 처치료, 엑스레이비용 등 각 의료행위에 따로 수가를 매기는 제도다. 여기에 행위 횟수도 중요하다. 똑같은 감기라도 다시 오면 또 수가를 매긴다. 이와 달리 많은 나라들은 포괄수가, 즉 이를테면 맹장수술 (회복 때까지) 수가, 제왕절개 수가를 정부가 정해 과잉진료를 막는다.”
-의사들은 수가가 낮다며 결정 과정에 의사들의 의견을 더 많이 반영하라고 주장한다.
“수가를 결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는 오히려 국민에 개방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아이를 출산하는데 자연분만의 가격과 제왕절개의 가격을 어떻게 매겨야 할까? 예전에는 수술하는 쪽에 더 많은 가격을 매겼다. 그러면 병원들은 자연분만보다 수술을 유도한다. 거기다 제왕절개는 손 빠르면 30분에도 끝이 나는데 자연분만은 몇시간, 며칠도 걸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료를 상품으로 취급하고 상품은 돈 벌기가 목적일 수밖에 없으니, 이러한 복합적인 측면을 모두 고려해 수가를 정해야 한다.”
-최근에 의대 증원을 신청한 현대의 울산의대가 울산이 아닌 서울아산병원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정부가 울산에 울산의대(현대의 학교법인) 설립을 허가했는데 서울아산병원(서울 송파구)에 운영하고 있다.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정부가 지역 공공의대를 늘리지 않고 기존 병원과 의대별로 증원 규모를 나눠주고 있다. 울산은 광역시인데도 불구하고 공공의료가 1%도 안 된다. 우리 요구는 지역에 공공의대를 만들라는 것이다.”
의사들 ‘미래 기득권’ 싸움, 안타까워
-의료연대본부는 의사파업이 시작된 지난달 20일 “노동강도를 낮춰달라던 전공의들이 증원은 반대하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전공의들이 자기 이해와 동떨어져 보이는 의사증원 반대 입장에 앞장서는 이유는.
“‘미래의 기득권’을 놓고 하는 싸움이다. 대다수 전공의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하다. 법적으로 주 80시간 노동이 허용되고, 이틀~사흘 연속 (밤샘) 당직을 선다. 상급종합병원과 대학병원이 수련생이란 빌미로 전임의의 30~50%만 주면서 일은 두 배로 시킨다. 이곳 서울대병원에만 전공의가 의사의 46%다. 미국과 일본에선 이 비율이 10%에 그친다. 이렇게 큰 병원들이 수련의들이 수련을 중단했다는 이유로 마비되는 현실이 웃기지 않나. 병원이 얼만큼 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해왔는지 보여준다. 전공의들이 의사 증원에 반대하는 이유는 이렇게 추측한다. 전공의들도 미래에 병원 원장을 할지, 봉직의가 될지, 의원을 열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어쨌건 공급 숫자가 많아지면 자기 상품성이 떨어질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최근 대형병원들이 간호사들에게 무급휴가를 시행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의료대란에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병원 내 40%가량의 진료가 이뤄지지 않으니 병원들은 병동을 폐쇄하거나 통합하고 있다. 서울대병원도 7~8개 병동을 폐쇄했다. 법대로라면 병원은 간호사에게 휴업수당을 주면서 쉬게 해야 한다. 귀책사유가 노동자가 아닌 (의사 고용을 전공의로 채운) 병원 경영진과 (의료정책을 내놓은)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병원은 경영상 부담을 이유로 ‘무급 특별휴가를 가라’거나 미래의 오프(휴일)을 당겨쓰는 ‘마이너스 오프’를 시행하면서 노동자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에선 마이너스 오프를 12~13개도 쓰는데 민간병원은 더할 것이다. 평소에도 병원이 간호사를 적게 고용해 간호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 노조는 무급휴가에 반대하고 간호사를 충분히 배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의료대란에 대처한다면서 전공의 업무를 일부 대체할 진료지원(PA) 간호사 합법화에도 나섰다. 언론은 ‘의사 기득권’ ‘진료 독점권’ 깨기라고 반기고 있다.
“초점이 빗나간 해석이다. 정부는 PA를 공식 직역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PA는 의사파업 전부터 언급된 문제인데, 근본 원인은 병원자본이 인건비가 많이 드는 의사의 일을, 인건비가 덜 드는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는 과정이다. 간호사들은 책임과 권한, 보상도 없이 의사의 일을 넘겨받으니 법적으로 문제가 되고 불안하다. 정부도 PA 시범사업이라고는 발표했지만 교육훈련, 책임, 권한, 보상 얘기는 안 한다. 결국 병원이 의사를 충분히 고용하면 해결된다.”
의사 노동3권도 보장해야, 문제는 명분
“지역·필수의료에 배치하라”며 파업했다면
-언론이 2020년 문재인 정부 당시 의사파업과 현재 의사파업을 다루는 보도에 차이가 있나?
“언론이 정부와 의사 양쪽에 대해 2년 전과 다르게 보도한다고 느낀다. 문재인 정부 때는 코로나19가 더 큰 쟁점이었고 의사파업은 상대적으로 쟁점이 되지 않았다. 정부가 발표한 증원 규모가 지금의 4분의1이기도 했지만, 이를 감안해도 언론이 의대 증원 취지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 지금 언론을 보면, 의사를 이기적이고 환자 진료를 외면하는 집단으로 보도하는 한편 정부 정책은 의료개혁으로 포장도 많이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와 주요 언론 모두 ‘의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환자 곁을 지켜야 한다’고 지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의사들의 파업을 법제도로 제한하는 데에 반대한다. 의사를 포함한 의료노동자들도 노동3권을 보장받아야 하고, 집단행동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의사들 요구에 명분이 너무나 없다는 것이다. 전 국민이 전 지역에서 의료공백을 경험하고, 필수의료가 안 돼 소아과 오픈런과 응급실 뺑뺑이를 몸으로 겪고 있지 않나. 지역에 의사들이 있어야 한다, 공공병원이 있어야 한다는 요구를 반영한 파업을 했다면 거꾸로 국민의 엄청난 지지를 받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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