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탄압’ 비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서 이뤄지고 있는 방송심의에 ‘이해충돌’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방송사들에 중징계를 의결하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와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심의위)에서 이해충돌 논란이 제기된 주요 장면 7가지를 꼽았다. 이 장면들은 류희림 위원장 이후 심의의 정당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한다.
#1 ‘가짜뉴스센터’에 번진 류희림 위원장 ‘민원사주’ 의혹
2023년 12월23일.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류희림 위원장과 관련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신고가 들어온다. 뉴스타파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인용 방송들을 심의해달라는 방심위 민원 다수가 류희림 위원장의 ‘사적 이해관계자’였다는 신고다. 류 위원장 아들, 동생, 조카, 처제 등 가족·친인척과 류 위원장이 일했던 경주엑스포 직원, 미디어연대 임원, KBS 입사 동기까지 수십명이 등장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뉴스타파를 ‘직접’ 심의해달라는 민원에도 이해관계자가 나왔다. 지난 4일자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류희림 방심위원장이 방심위 내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 설치를 공표한 직후 뉴스타파 인용 방송에 대해 민원을 넣었던 사람들이 동일한 패턴으로 뉴스타파에 대한 민원을 넣었다.
뉴스타파 인용 보도 심의는 방송심의, 인터넷언론 뉴스타파 심의는 통신심의를 통해 이뤄진다. 영역을 가리지 않고 ‘이해충돌’ 논란이 번진 것이다. 류희림 위원장이 사적 이해관계자의 민원을 알고도 심의했다면 이해충돌 방지법 등을 위반하게 된다. 하지만 류 위원장은 심의를 회피하지 않았다. 지난달 27일 나온 법원 결정문(김유진 위원 가처분 인용)은 민원사주 의혹이 사실일 경우 위원장이 이해충돌방지법을 어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 ‘바이든-날리면’ 심의, 대통령 추천 심의위원이 주도
대통령 명예훼손성 심의를 대통령 추천 방심위원이 주도한다. 류희림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 추천이다. 류 위원장 외에 문재완·이정옥 위원도 윤석열 대통령 추천이다. 현재 방송심의소위원회(방송소위)는 대통령 추천 위원들이 과반을 넘긴 상태에서 운영된다. 일례로 ‘바이든-날리면’ 보도로 MBC에 과징금을 부과한 지난달 20일 방송소위는 여권 추천 위원 4인이 참석했는데 이중 3명(류희림·문재완·이정옥)이 윤석열 대통령 추천 위원이었다.
#3 방심위 비판 보도를 방심위가 심의, 제척신청도 ‘거부’
방심위 비판 보도를 방심위가 심의한다. 19일 방심위는 방송사들에 대한 방심위 ‘과징금’ 의결이 정치적이라고 비판한 MBC ‘뉴스데스크’(2023년 11월13일)에 법정제재 ‘주의’를 의결했다. MBC는 이전 과징금 심의에 참여한 위원들은 이번 심의에서 제척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방심위는 거부했다. 방심위 법무팀은 심의위원들이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 정도가 돼야 이해충돌방지 위반에 해당한다며 취재 보도 대상이 된 경우에는 제척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인용으로 지난해 과징금을 부과받은 MBC·KBS·JTBC·YTN은 과징금에 대한 재심을 앞두고 ‘민원사주’ 의혹을 이유로 류희림 위원장 기피를 신청했다.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소지가 있는 류희림 위원장이 과징금 재심에 참여하는 것이 절차상 옳지 않다는 것이다. 방송사들의 신청은 방심위 상임위원회에서 기각됐는데, 현재 방심위 상임위는 여권 추천 2인(류희림·황성욱)만으로 구성돼 있다. 자연스럽게 기피신청은 기각됐고 과징금은 확정됐다.
#4 ‘정당 경력’ 심의위원들… 총선 출마 전적
여권 추천 방심위원 중 황성욱·김우석 위원(국민의힘 추천)은 과거 국회의원에 도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황성욱 위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대리인단에 참여했으며,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에 공천 신청했다. 황교안 전 대표의 상근특보를 맡았던 김우석 위원은 18대 총선, 21대 총선에서 각각 한나라당·미래통합당 서울마포갑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김우석 위원은 지난해 12월 ‘가짜뉴스 대상 시상식’에 토론자로 참여해 특정 진영에 속한 것처럼 발언했다. 김 위원은 “우리는 100% 벤치마킹해야 한다. 지금 전술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저쪽이 잘하는 거 우리가 따라 해야 한다”며 “총선을 앞두고 정책은 100% 여론전이다. 여론전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는데 시민단체들이 많은 도움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5 시민단체 연결고리… 선방심의위에도 ‘셀프심의’ 논란
‘이해충돌’ 그림자는 방심위가 구성한 선방심의위에도 번진다. 언론노조 방심위지부는 지난달 19일 선방심의위원 2인(권재홍·최철호)을 권익위에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으로 신고했다. 보수성향 시민단체인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에서 방송 모니터링 후 선방심의위에 민원을 제기했고 공언련 임원 출신인 권재홍·최철호 위원이 그 민원을 심의했다는 주장이다. 권재홍 위원은 현재 공언련 이사장이며 최철호 위원은 전 공언련 대표다. 권 위원은 공언련 추천 심의위원이기도 하다.
최철호 위원(국민의힘 추천)은 지난해 10월 말 심의위원 위촉 전 대표직을 사퇴해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철호 위원은 지난해 11월 1~2일 공언련TV에서 공언련 대표로 나와 라이브 방송한 기록이 있고, 지난 1월 각종 행사에서도 언론에 공언련 대표로 보도됐다. 공언련은 현직 공언련 이사장인 권재홍 위원 역시 형식상 이사장일 뿐 실질적인 모니터링 업무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최근까지도 실제 심의 현장에서 최철호 위원이 ‘저희가 모니터링한 바에 의하면’이라고 발언하는 등 해명과 무관하게 ‘셀프심의’ 논란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22대 총선 선방심의위는 종편은 배제한 채 MBC, CBS 등 정부·여당 비판 보도에만 연달아 중징계를 의결하고 있다. 모두 공언련 모니터링에 등장하는 방송들이다.
#6 TV조선 안건 회피 않는 TV조선 추천 위원
TV조선과 관련된 이해충돌 논란도 있다. 이번 선방심의위에선 처음으로 방송 관련 협회가 아닌 방송사 TV조선이 위원 추천권을 가졌다. 그 결과 손형기 전 TV조선 보도본부 시사제작에디터가 TV조선 추천 위원으로 TV조선 심의에 참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권재홍 위원은 TV조선 시청자위원회 부위원장 출신이고, 이미나 위원은 TV조선과 관련한 자문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22일 7차 회의에선 권재홍·이미나 위원이 TV조선 안건에 대한 심의를 회피해 의결이 보류된 적도 있다. 손형기 위원은 TV조선 안건을 회피하지 않는다.
#7 방심위원장 지도교수가 방심위원장 민원사주 보도 심의
선방심의위원장은 방심위가 추천한다. 22대 총선 선방심의위원장으로 임명된 백선기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류희림 위원장의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다.
선방심의위는 ‘민원사주’ 의혹과 관련해 류희림 위원장에 “구속시켜야 한다”(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고 발언한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법정제재를 예고했다. 마찬가지로 방심위 ‘바이든-날리면’ 심의와 방심위원장 ‘민원사주’ 의혹을 다룬 MBC ‘뉴스데스크’에도 법정제재를 예고했다. 백선기 위원장은 자신의 제자와 관련된 안건을 회피하지 않았다.
이는 이전 방심위 사례와 대비된다. 2012년 박만 당시 방심위원장은 현재 선방심의위원인 권재홍 당시 MBC 앵커가 노조원들의 저지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심의하게 되자 “권재홍 앵커와는 고교 선후배간으로 가까운 사이”라며 심의를 기피했다.
두 방송에 모두 법정제재 의견을 낸 백선기 위원장은 “MBC는 나름의 이유로 언론 자유 침해, 특히 방심위와 선방심의위가 특정한 편향성을 지니면서 심의하고 있지 않은가 비판하고 있지만 그들은 저희들이 하고 있는 의사결정을 정확히 모르면서 진단하고 있다”며 “그런 부분에 대해선 위원장으로서 대단히 불쾌하고 모욕적이다. 우리가 의사결정하는 과정을 한 번이라도 와서 본다면 심의위원들이 편향적이라고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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