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일본은행(BOJ)이 17년만에 금리를 올리면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했지만 시장이 예상했던 ‘엔고(円高)’ 현상은 없었다. 원·엔 환율은 전날과 같은 890원대를 기록했고, 149엔 초반이었던 엔·달러 환율은 오히려 150엔을 돌파했다. 금리 정상화에도 BOJ가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엔화 가치 상승 폭이 제한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 BOJ, 마이너스 금리 종료… “임금·물가 목표치 달성”
일본은행(BOJ)은 지난 18일부터 이틀간 개최된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당초 -0.1%였던 단기 기준금리를 0~0.1% 수준으로 인상했다. 이로써 2016년 2월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8년만에 종료됐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란 중앙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용을 지불토록 한 제도다. 시중은행이 여유 자금을 쌓아두지 않고 민간에 대출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도입됐다.
BOJ는 마이너스 금리 종료와 함께 수익률곡선통제(YCC) 정책도 중단했다. YCC란 장기국채(10년 만기) 시장금리를 0% 부근, 상한을 1%로 유지하기 위해 국채를 무제한으로 매입·매각하는 제도를 말한다. BOJ는 작년 10월 시장금리 상한을 넘더라도 허용하는 방향으로 YCC를 완화한 뒤 이번에 아예 폐기했다.
BOJ가 정책 전환에 나선 것은 물가와 임금 상승률이 목표치를 달성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BOJ는 그간 ‘임금 인상을 수반한 2% 이상의 물가 상승’을 마이너스 금리 해제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해왔다. 물가 상승률은 지난 1월(2%, 전년동월대비)까지 22개월 연속 2%를 웃돌면서 조건에 부합했고, 올해 평균 임금 상승률도 최근 마무리된 춘투(春鬪·봄에 하는 노사 임금협상)에서 5%를 웃돌면서 목표를 달성했다.
일본은행은 금융정책결정회의 후 낸 결정문에서 “물가 2% 목표가 지속적·안정적으로 실현해 나갈 것을 내다볼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면서 “(마이너스 금리 등 금융 완화 정책의 틀이)그 역할을 다했다”고 했다.
◇ 추가 인상 가능성에 주목… 달러·엔 환율 출렁일듯
당초 시장에서는 BOJ가 마이너스 금리를 종료하면 그간 저평가됐던 엔화의 가치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5.6%포인트(p)였던 미·일 기준금리 격차(상단 기준)가 소폭 작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ECB) 등 주요국 중앙은행도 연내 금리 인하를 예고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엔화의 매력이 높아질 것으로 봤다.
그러나 시장은 오히려 반대로 움직였다. 달러·엔 환율은 이날 오후 1시30분쯤 150엔대를 돌파하면서 이달 6일(150.10엔, 고가 기준) 이후 처음으로 약 2주만에 150엔대를 넘어섰다. 이날 오전 897.18원까지 올랐던 원·엔 재정환율도 기준금리 결정 직후 하락하면서 오후 2시반쯤 890.98원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시장이 예상과 다르게 반응한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들고 있다. 먼저 장기 국채(10년물) 매입 제도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BOJ는 YCC 정책을 폐기하면서도 시장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현재 월 6조엔 수준인 장기 국채 매입 규모를 유지하기로 했다. BOJ의 국채 매입이 지속되면 장기 금리가 지금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엔화의 상승 폭이 제한될 수 있다.
당분간 BOJ가 현재 금리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영향을 줬다. 결정문을 보면 기준금리 결정에 참여한 7명 중 2명은 금리 인상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 임금·물가 간 선순환 흐름을 보다 신중하게 확인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이처럼 금리 인상에 대한 의견이 합치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추가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
우혜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BOJ가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면 (시장이)오늘 같은 흐름을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관련 메시지를 내놓지 않아 엔화가 약세를 보였다”고 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도 “BOJ가 향후 통화정책과 관련된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아 이번 결정이 일회적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고 했다.
◇ 시장은 FOMC 결과에 주목… “당분간 약세 지속”
전문가들은 BOJ가 보다 긴축적인 메시지를 내놓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엔화가 약세를 보일 수 있다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특히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가 결정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가 오는 20일(현지 시각) 열리는 만큼, 그 전까지 엔화가 강세를 보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은 BOJ가 금리 정상화를 넘어 연내 추가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BOJ의 금융 정책을 분석하는 전문가 28명을 대상으로 마이너스 금리 해제 이후 추가 금리 인상 시기에 대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응답자 중 15명(54%)은 ‘올해’라고 답했다. 추가 금리 인상을 내년과 2025년으로 예상한 전문가는 각각 5명(18%)이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유한 엔화 예금 잔액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달러화로 환산한 국내 거주자의 엔화예금 잔액은 한 달 전보다 4억6000만달러 늘어난 98억6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엔화예금 잔액은 작년 11월 99억2000만달러를 기록한 후 내리 감소하다가 3개월만에 증가 전환됐다.
장희종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은행 통화정책 변화는 엔화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면서 “일본의 정부부채 부담 등으로 통화정책 정상화는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변화의 시작은 엔화 환율 반전의 단기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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