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갈등이 재연되는 게 아니냔 말이 나온다. 국민의힘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가 18일 발표한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두고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확연한 견해차를 보이기 때문.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보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말까지 나온다.
국민의힘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는 18일 35명의 비례대표 후보를 발표했다. 여성이자 장애인 등 인권문제 전문가인 최보윤 한국장애인고용복지공단 위원을 1번에, 사격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진종오씨를 4번에, 인요한 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을 8번 등에 배치한다는 발표였다.
발표 후 정치권이 술렁였다. 윤 대통령 최측근인 주기환 전 광주시당 위원장이 당선권 밖인 24번에 배치돼서다. 검찰 수사관 출신인 주 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꼽힌다.
주 전 위원장은 명단 발표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후보직에서 사퇴하겠다고 했다.
그는 “국민의힘은 비례대표 당선권에 호남 인사를 25% 우선 추천하는 내용을 당규에 담았지만 이번 공천에서 광주는 완전히 배제됐다”며 “당이 당원들과의 약속을 져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는 2022년 광주시장 선거에서 역대 보수 정당 후보 중 최다 득표(15.9%)를 얻었고 오직 광주 발전을 위해 정치를 했다”며 “광주의 청년 당원과 정치 지망생들에게 희망을 주고 광주의 정치 구도를 바꿔 발전을 이루고자 했으나 실현하지 못하게 돼 송구스럽다”고 했다.
한겨레 19일자 보도에 따르면 여권 관계자는 “비례대표 명단을 보고 윤 대통령도 황당해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이번 사태를 대통령실이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친윤(친윤석열)계 핵심인 공천관리위원 이철규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오늘 발표된 국민의힘 비례정당인 국민의미래 후보 공천 결과는 아쉬움이 크게 다가온다”며 “문재인 정권에 저항하며 당을 위해 헌신해 온 동지들이 소외된 데 대해 당 지도부는 후보 등록일 전까지 바로잡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특히 비례대표를 연속으로 두 번 배려하지 않는다는 당의 오랜 관례는 깨어지고, 당을 위해 헌신해 온 사무처 당직자는 한 명도 포함되지 못했다”며 “비대위원 2명이 비례대표에 포함되고, 생소한 이름의 공직자 2명이 당선권에 포함된 상황에서 온갖 궂은 일을 감당해 온 당직자들이 배려되지 못한 데 대한 실망감은 더욱 크다”고 했다. 현역 비례대표인 김예지 비상대책위원을 다시 비례대표 당선권에 넣고 한지아 비대위원을 당선권에 배치한 데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권은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갈등이 국민의미래 비례 공천을 계기로 ‘2차전’으로 확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안 그래도 당정 기류가 심상찮은 상황이었다. 한 위원장이 ‘해병대원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와중 출국해 논란을 빚은 이종섭 주호주 대사와 ‘언론인 회칼 테러’ 발언으로 설화를 일으킨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을 향해 날 선 발언을 내놨기 때문이다.
한 위원장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대사에 대해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이 대사를) 즉각 소환하고, 이 대사는 즉각 귀국해야 한다”고 했고, 황 수석에 대해선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발언이고 본인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윤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맞선 언급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위원장의 이 같은 입장을 밝힌 이유는 이 대사와 황 수석을 둘러싼 논란이 수도권·중도층 표심 이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민의힘을 향한 수도권 민심이 예사롭지 않다는 말이 나오는 형편이다.
대통령실은 한 위원장의 요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이 대사 임명과 출국 과정엔 문제가 없으며, 황 수석도 본인이 사과한 만큼 사퇴할 사안은 아니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수도권 등 격전지에서 총선 패배 우려가 비등하면 국민의힘이 용산 쪽을 향해 목소리를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수도권 출마자들이 이 대론 힘들다며 아우성을 치면 한 위원장 등 지도부가 대통령실을 향해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당정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한 위원장은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에 두고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들께서 걱정하실 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가 대통령실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은 바 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갈등은 충남 서천군 화재 현장에서 두 사람이 만나면서 극적으로 봉합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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