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불가’ 고수하던 정부, 용산發로 미묘한 변화 내비쳐
의료대란 장기화, 내달 총선에 부정적 영향 우려했을 수도
의정 입장차 커 실제 대화 ‘물꼬’ 트기 쉽지 않을 듯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절대 불변’이라며 의대 입학정원 증원 규모(2천명)를 고수하던 정부에서 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아직도 2천명 증원에는 변함이 없다는 게 정부 공식 입장이지만,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기존 입장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듯한 발언이 나왔다.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의료 공백’ 장기화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이 누적된 점이 부담이 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18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대통령실 장상윤 사회수석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에 출연해 ‘정부가 증원 규모를 못 줄인다는 입장을 접어야 대화의 장이 열리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 의제에 대해서 저희는 오픈돼 있다(열려 있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향후 의료계와 협상 과정에서 증원 규모에 변화를 줄 가능성을 시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무엇보다 최근 들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한 점이 이런 해석에 무게를 더했다.
한국갤럽이 이달 12∼14일 전국 만 18세 이상 1천2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한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직무 수행을 긍정 평가한 응답은 직전 조사(5∼7일) 때보다 3%포인트 내린 36%였다.
한국갤럽은 “긍정 평가를 견인하던 ‘의대 증원’에 대한 언급이 이번 조사에서 줄었다”며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 의료 공백 장기화에 따른 우려감이 반영된 것으로 짐작한다”고 분석했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 의뢰로 지난 11∼15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천504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2.0%포인트)한 결과에서도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38.6%로, 일주일 전 조사보다 1.6%포인트 낮아진 수치를 기록했다.
취임 이후 줄곧 ‘여소야대’의 높은 벽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던 대통령실이기에 이런 여론 때문에라도 증원 규모 조정에 실낱같은 가능성을 남긴 것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장 수석은 자신의 발언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하기도 했다.
장 수석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저희가 왜 2천명 증원을 결정했는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설명하고, 설득하겠다는 것”이라며 “의료계에서 350명, 또 500명(증원) 이렇게 (말)하는데 왜 350명이고, 왜 500명인지 그 근거를 제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도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장 수석의 발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묻는 말에 “(장 수석은) 의료계가 (정부보다)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한다면 논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차원에서 말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과학적 근거와 함께 1년여간 의료계를 포함해 사회 각계각층과 의견을 나눠서 (규모를) 결정했다”며 “정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모든 논제를 대화할 수 있지만, 정부는 2천명 증원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당장 ‘물밑 접촉’ 외에 의정(醫政) 간 본격적인 대화의 물꼬가 트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료 공백의 장기화로 환자들의 고통이 갈수록 커지면서 정부와 의사들이 ‘환자들을 생각해서’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한희철 대한민국 의학한림원 부원장은 “정부와 의료계가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면 환자만 힘들어진다”며 “양쪽 모두 환자를 바라보면서 고집을 꺾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서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s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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