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업무에 선제적으로 AI 도입한 KISTEP
정병선 원장 직접 ‘Kistep GPT’ 만들기도
“정부·공공기관 일하는 방식 혁신에 앞장”
“여기가 코딩학원이야, 공공기관이야”
언뜻 보기엔 여느 정책연구소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직원 책장마다 C, C++, 자바, 파이선 등 코딩(컴퓨터 언어) 학습 교재, 활용도서가 빼곡하다. 국가 과학기술을 기획하고 연구성과를 조사 분석하는 과기정책 전담기관치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코딩 기술 서적이 왜 꽃혀 있는 걸까.
최근 방문한 충북 음성군에 위치한 KISTEP(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모습이다. 국내 공공기관 중 처음으로 모든 업무에 AI를 도입해 화제가 된 곳이다. 정병선 KISTEP 원장은 기자와 만나 “아침 월요회의 때마다 임직원들에게 새로 나온 AI 소프트웨어를 직접 소개하다 보니 다들 열공 분위기”라며 “기관 핵심 업무에 다양한 AI 서비스를 도입,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자에겐 ‘허깅챗'(HuggingChat)을 한 번 써보라며 관련 사이트 주소를 알려줬다. 이는 독일 비영리단체인 오픈어시스턴스가 오픈AI의 챗GPT에 대항할 목적으로 만든 대화형 AI 챗봇으로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특징은 허깅페이스 API를 통해 기존 앱(애플리케이션) 및 서비스에 AI 기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 정 원장은 이를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직접 제작하고 테스트 해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깃허브(Github)나 허깅페이스(Huggingface)에 공개된 프로그램 소스나 모델을 다운받아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얼마든지 원하는 AI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며 “이런 방식을 통해서 Kistep GPT를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 음성 같은 멀티모달을 지원하는 서비스로 고도화하기 위해 테스트 중”이라고 말했다.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KISTEP의 업무 수행 방식도 360도 바뀌었다. 구체적으로는 △챗GPT와 유사한 방식으로 자연어 문장 입력을 통해 국가연구개발사업(과제) 정보를 검색·분류하는 ‘지능형 분석시스템’ △해외 유관기관 사이트로부터 크롤링한 데이터나 및 뉴스 기사로부터 관심 이슈를 선별·분석하는 ‘글로벌 S&T 모니터링 시스템’ △자체적으로 생산·수집한 국내외 보고서로부터 정보를 검색해 질문에 답하고 내용을 요약하거나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는 ‘Kistep GPT’ 등을 자체 개발해 쓰고 있다. 이중 Kistep GPT는 정 원장이 직접 프로그래밍해 만든 것이다.
KISTEP 관계자는 “이러한 AI 서비스를 통해 실제로 자율주행시스템 및 양자컴퓨팅 등 국가전략기술 분야의 핵심 이슈와 R&D 투자현황을 분석하고 신흥 핵심기술 후보를 도출했다”고 설명했다. 기존 KISTEP 담당자와 해당 분야 전문가가 협업해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처리했던 업무를 AI가 수분 내로 처리한 것이다.
이 변화는 외부로 번지고 있다. 요즈음 각 부처에선 AI를 도입·활용하는 이른바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구현하려는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KISTEP 사례를 전 공무원이 열공 중이다. 강사로 초청 받은 정 원장은 주기적으로 AI 트렌드를 알리고 사람이 하는 일을 AI가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는지 KISTEP 사례를 통해 시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의를 접한 과기부 내부에선 업무 효율성 제고 효과에 주목하고 바로 데스크포스(TFT)를 구성했으며, 정 원장이 과기정통부 TFT를 지원하기 위한 폐쇄형 홈페이지를 구축해 지속적으로 자문 중이다.
KISTEP은 전 직원의 AI 활용사례를 공유하고 확산하기 위해 ‘AI 활용사례 경진대회’를 지난해 10월 개최했고 총 15팀이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사회문제 해결 R&D 사업·과제 분석용 다중분류 AI 모델 △거대언어모델 기반 R&D 사업의 실시간 빅데이터 기술분석 및 지능형 사업 분류에 관한 연구 △정기 인사이동 업무 효율화를 위한 ChatGPT 활용 △챗GPT를 통한 회의 내용 요약 및 주요 키워드 분석서비스 등이 주요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정 원장은 “AI를 과학기술 혁신정책 연구에 활용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며 “KISTEP이 R&D 정책기획, 예비타당성 조사, 예산배분-평가, 성과 확산 등 전주기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쌓아온 각종 데이터를 기반으로 부처, 연구관리전문기관, 연구소, 기업, 학계 등의 정책 고객들이 일하는 방식을 혁신하는 AI 플랫폼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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