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대부분 미복귀 장기화에 병원마다 의료 공백 커져
(전국종합=연합뉴스) 전공의 이탈이 장기화하는 와중에 병원을 지탱해온 의대 교수들마저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결의하자 환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17일 전국 주요 대형병원에는 집단 이탈한 전공의 대부분이 복귀하지 않으면서 응급, 중증, 암 환자에 대한 수술을 중심으로 병원을 운영하는 등 진료 차질을 빚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소속 교수들이 오는 25일부터 집단 사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혀 의료공백 사태는 악화하는 모습이다.
◇ 의대 교수 집단 사직 결의에 ‘수술 또 연기되나’ 불안한 환자들
수원시에 사는 40대 A씨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사태로 지난달 22일 아주대 병원에서 예정돼 있던 표피모반 제거 수술을 현재까지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해 4월 외래 진료를 받은 뒤 1년 가까이 기다렸던 수술이 갑자기 뒤로 미뤄졌다는 소식에 그는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A씨는 수술을 오는 9월로 연기한 상황이다. 그러나 교수들의 집단 사직 의사에 수술 일정을 다시 조정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A씨는 “수술 일정이 미뤄지는 동안 병세가 악화하지는 않을지 걱정”이라며 “나보다 더 심각한 병을 앓는 환자들은 얼마나 상심이 클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대형병원들의 환자나 보호자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서울 아산병원 안과에서 망막주름 수술을 받은 최모(54)씨도 4월 초로 예정된 정기 진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수술 이후 2개월 간격으로 경과를 살펴야 하는데 최근 3차 병원 교수들까지 집단으로 사직서를 낸다고 하자 가슴을 졸이고 있다.
최씨는 “큰 병원에서 수술받아야 한다고 해서 어렵게 서울까지 가서 수술했지만, 수술 이후 검사 등에 있어 너무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 의료에 대한 믿음이 커져야 서울 원정 진료가 사라질 것”이라며 “의료 개혁의 방향은 지지하지만 당장 환자 불편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호소했다.
심장 질환으로 대학병원에서 정기 검사를 받는 박모(65)씨도 “올해 초 처방받은 약이 거의 떨어져 4월에는 받아야 하는데, 제대로 진료나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정부도 의사들을 몰아칠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대구시의 한 대학병원은 병원에 남은 환자들이 불 꺼진 접수창구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였다.
유방암 초기 환자의 보호자인 박모(61)씨는 “의료진의 힘으로 치료해야 하는데 (의대 교수 사직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며 “결국은 환자만 불안하고, 환자만 피해자가 된다”고 불안함을 내비쳤다.
그는 이어 “바라는 건 하루빨리 정상화가 돼서 마음 놓고 치료받을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전공의 대부분 여전히 미 복귀…병원, 공보의 투입에도 진료 차질
경기 수원 아주대 병원의 경우 전공의 225명 중 다수가 사직서를 제출한 뒤 현재까지 근무에서 이탈한 상태이다. 아주대병원은 치과를 제외한 의사 인원이 총 650여명으로, 전체의 30%가량이 자리를 비운 셈이다.
충북도에 따르면 전날 오후 2시 기준 충북 유일 상급 종합병원인 충북대병원에선 전체 의사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전공의 149명이 여전히 복귀하지 않고 있다.
이 병원에는 공보의 9명이 투입됐다. 하지만, 진료 차질을 줄이는 데 역부족인 모습이다.
이 병원 하루 평균 수술 건수는 평소에 비해 50%가량 줄었고 입원 병상 가동률도 40%대에서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인천에서도 지난 15일 오후 기준 11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 540명 가운데 471명이 사직서를 낸 상태다. 이들 중 실제로 근무하지 않는 전공의는 365명이다.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사태 초기 80%대를 유지하던 인천 상급종합병원 3곳의 병상 가동률은 지난 14일 기준 57.5%에 그쳤다. 종합병원 15곳의 병상 가동률은 76.8%, 공공의료기관 5곳은 64.2% 수준이다.
대전·충남 대학병원 역시 전공의 복귀자가 없는 가운데 대학·종합병원 응급실에서 특정 진료과는 아예 진료를 보지 않는 등 파행 운영이 심화하고 있다.
응급실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대전 건양대병원은 성형외과·피부과·소아과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공지했다. 충남대병원도 이번 주말 의료진 부재로 응급실 소아과 진료를 볼 수 없다.
대전성모병원 응급실에서도 소아과·성형외과·안과 진료를 볼 수 없으며 이비인후과·정형외과도 야간시간 대 진료가 어렵다.
전공의 108명 중 101명이 이탈한 제주대병원은 교수급 의사들까지 빠지게 되면 사실상 병원을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제주대병원은 내과 중환자실 운영 병상수를 20개에서 12개(내과 8·응급 4)로 축소해 운영하고 있다.
또 간호·간병서비스 통합병동을 2개에서 1개로 통폐합했다. 수술실도 12개에서 8개로 축소한 상황이다.
제주대병원 병상 가동률은 70%대에서 현재 30%대까지 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 병원 파행 운영 속 환자보다 제자 편에 선 의대 교수들
조선대 의대 교수들은 지난 14일 교수평의회 임시총회를 열어 비대위 구성 여부 등을 논의했다.
임시총회 참석자의 3분의 2가 비대위 구성에 찬성하면서 조만간 비대위원장을 선임한 뒤 전국 의과대학 교수비상대책위원회와 공조할 계획이다.
16개 의대 교수가 오는 25일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의견을 모은 만큼 전남대나 조선대 의대 교수들도 조만간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대 의대의 한 교수는 “의대 교육 정상화, 충북대병원 운영 정상화, 국민의료 불편 해소를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달라는 취지에서 사직을 고려할 수도 있다는 설문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결과는 다음 주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에서는 지난 14일 대구가톨릭대 의대 교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전체 교수(176명)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전공의·의대생에 대한 제재가 있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답한 교수(123명)의 89.4%가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답했다.
계명대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3일 성명을 내고 “전공의들과 의과대학생에 어떠한 피해라도 발생한다면 교수들은 제자를 지키기 위한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산대 의대 교수협의회 역시 지난 15일 오후 전체 교수회의를 열어 사직 등 단체행동 여부와 이번 사태와 관련한 사회적 합의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교수협의회는 다음 주 중 설문조사를 실시해 교수 개개인에게 사직 여부를 묻는 동시에 구체적인 사직 시일과 방식을 결정할 예정이다.
교수협의회 측은 “전체 교수회의에 참여한 교수들은 사직에 전반적으로 동의해 개개인에게 의사를 물을 예정”이라며 “다음 주 중 현 사태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는 성명서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지역도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 움직임이 현실화하자 지역 의료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강원대학교 의대 교수 10명 중 7명 이상은 정부가 협상의 자리로 나오지 않는다면 개별적 사직서 제출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우용 김솔 형민우 윤관식 우영식 홍현기 박주영 박성제 백나용 백도인 김선경 양지웅 기자)
wy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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