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코인(가상자산) 공약’을 잇달아 내놨다. 국민의힘은 코인 투자 소득에 대한 과세 시기를 늦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 더불어민주당은 비트코인의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투자가 가능하도록 하는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대선 때 쏟아졌던 코인 공약처럼 결국 지키지 못할 약속을 너무 많이 내놓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는 사안들이 여럿 포함돼있기 때문이다.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4월 총선에서 코인이 중요한 정책 의제로 급부상했다. 지난 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에 이어, 가파르게 상승한 비트코인 가격이 대중의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는 5월에는 SEC가 이더리움 현물 ETF 승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 대중의 관심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대 대선 때도 상승장에 힘입어 코인 공약이 쏟아진 바 있다.
◇ 與 코인 과세 유예 vs 野 코인 ETF 허용
국민의힘이 추진하는 공약 중 핵심은 코인 과세 유예다. 오는 2025년 1월부터 시행되는 코인 과세를 한 번 더 연기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22대 국회에서 국민의힘은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 2단계를 발의하기로 했다. 코인 과세를 위한 선결 조건인 최소한의 시스템부터 마련하겠다는 의미다.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은 가상자산사업자 규제에 초점을 맞춘 1단계 입법이다. 2단계 법안엔 코인 발행과 가능 업권 등에 대한 실질적 규제가 담긴다.
코인 전담위원회 설치도 추진한다. 건전한 투자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그 일환으로 ▲거래소 간 정보 비대칭 문제 완화 및 투자자 보호를 위한 거래소 표준 공시제도 추진 ▲고위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코인 백지신탁 도입 ▲코인 발행의 단계적·조건부 허용 등을 제시했다.
민주당 공약의 핵심은 비트코인 등 주요 코인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현물 ETF의 발행·상장·거래 허용이다. 투자 접근성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또 코인 ETF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편입시켜 비과세 혜택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매매수익은 금융투자소득으로 분류 과세해 다른 금융투자 상품들과의 손익통산 및 손실 이월공제를 적용할 방침이다.
코인 매매수익에 대한 공제 한도 확대안도 추진된다. 현행 250만원에서 5000만원까지 늘리고 손익통산 및 손실 이월공제를 5년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당은 국회 회기 중 국회의원의 코인 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지난해 ‘김남국 코인 이상거래 의혹’ 사태를 의식한 결정이다. 이외에 ▲코인 업권법 제정 ▲통합감시시스템 설치 및 개별 거래소 오더북(거래장부) 통합 ▲증권형 토큰 법제화 추진 ▲블루리스트(공적기관 심사를 거친 가상자산 발행 조건부 허용) 제도 도입 등도 검토된다.
◇코인업계 “與野 공약 실효성 의문”
코인업계는 여야 공약이 공염불에 그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한다. 대선 때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당시 대선주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코인 공약을 내놓았지만, 선거가 끝난 뒤 제대로 추진된 건 별로 없었다.
단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때 선보였던 공약 중 시행된 건 가상자산기본법 1단계가 유일하다. 당시 윤 대선 후보는 ▲투자수익 비과세 한도 5000만원 ▲거래소공개(IEO) 도입 후 가상자산공개(ICO) 허용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디지털산업진흥청 설립 ▲대체불가토큰(NFT) 거래 활성화·디지털자산시장 육성 등을 공약을 내건 바 있다.
주무부처인 금융당국과의 협의가 지지부진한 것도 큰 한계로 지적된다. 금융당국은 여전히 코인 규제 완화에 신중한 입장이다. 코인업계 관계자는 “현재 정치권이 표심을 잡겠다고 여러 공약을 내세우지만 업계에선 회의적”이라며 “김남국 의원 사태 때도 법안을 발의하는 주체인 국회가 코인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었다”고 했다. 코인을 ETF의 기초자산으로 인정하려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은 필수 조건이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을 패싱하고 코인 투자자 표심만 노리는 ‘공약 던지기’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부는 코인 정책의 방향을 아직 고민하고 있다. 잘못된 정책이 시행됐다가는, 코인이 투기 수단으로 변질되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형중 호서대 디지털금융경영학과 석좌 교수는 “코인 공약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일단 던지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라면서 “투자수단으로서 코인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가 사회에 자리잡을 수 있느냐가 우선 중요한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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