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오늘부터 17일까지 3일간 8대 대통령 선거가 열린다. 이번 대선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72) 현 대통령이 수월하게 당선되면서 5번째 집권에 성공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그의 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경쟁자들도 모두 사라졌다. 지난해 6월 군사 반란을 일으켰다 실패한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두 달 만에 전용기 추락 사고로 숨졌다. 푸틴의 ‘마지막 정적’으로 평가받았던 알렉세이 나발니마저 지난달 교도소에서 의문사했다. 나발니의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와 그의 지지자들이 대선 마지막 날인 17일 투표소에 나와 반푸틴 시위를 벌이자고 촉구하고 있지만, 대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많다.
2000년 5월 러시아 3대 대통령에 취임한 푸틴은 헌법상 연임 제한 규정 때문에 총리로 물러났지만 사실상 실권을 행사한 2008∼2012년을 포함해 24년 가까이 러시아를 통치해왔다. 이번 대선에서 연임에 성공할 경우 2030년 5월까지 30년간 집권한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푸틴의 재집권은) 명실상부한 21세기 ‘차르’의 등장”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옛 소련과 러시아를 통틀어 20세기 이후 최장 집권을 한 이오시프 스탈린 공산당 총서기의 기록(29년)을 뛰어넘는 것. 20세기 이후 푸틴의 기록을 넘어서는 권위주의 통치자는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49년), 북한의 김일성(46년),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42년) 정도다. 기존 임기를 백지화하는 2020년 개헌으로 푸틴은 2030년 대선에 출마해 6번째 대통령 집권도 가능하다. 이 경우 자신이 만 83세인 2036년 5월까지 36년간 집권, 18세기 제정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의 34년 집권 기록마저 뛰어넘는다.
푸틴 집권 5기의 성공의 최대 변수인 우크라이나 전황은 러시아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을 잘 막아내면서 러시아 영토로 편입한 점령지를 지키는 데 성공했다.
이와 관련해 독일 주간 슈피겔은 “푸틴은 전쟁을 통해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서방으로부터) 말살의 위협을 받는 러시아’ ‘조국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는 인식을 확산,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對)서방 에너지 수출에서 비롯된 풍부한 재정도 큰 힘이 됐다. 서방 제재로 에너지 수출이 잠시 막혔지만, 중국과 인도 등이 ‘큰손’으로 등장하며 해결됐다. 지난 1월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의 올해 성장률을 2.6%로 예측했다. 지난해 10월 전망치(1.1%)의 2.4배다. 외교적으로는 중국과 더욱 밀착하며 북한·이란 등과 ‘권위주의 동맹’을 강화할 전망이다.
한편 이번 대선을 앞두고 사전투표가 실시된 일부 지역에서 ‘속이 훤히 보이는’ 투표 방식이 드러나 국제사회에서 빈축을 사고 있다.
러시아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말부터 14일까지 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주(州) 등 러시아가 자국 영토 편입을 주장하는 우크라이나 일부 점령지 및 사할린·하바롭스크주 등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전 참전 군인, 국경수비대원, 목축민 등을 대상으로 사전투표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도네츠크 등 점령지 곳곳에서 군인 등 유권자들이 속이 다 보이는 투명한 투표함 속에 접지도 않아 누구를 찍었는지 보이는 투표용지를 넣는 등 비밀투표 원칙이 보장되지 않는 모습이 포착됐다.
현지 언론 등을 통해 공개된 영상을 보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투표함에 유권자들이 투표용지를 넣었다. 바로 앞에선 선거관리 직원들과 무장한 군인들이 이 같은 모습을 지켜봤다. 일부 유권자들은 투표용지를 접지도 않았다.
선거관리 직원이 군인을 대동해 유권자 집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자포리자 지역 선거관리위원회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유권자의 안전을 걱정한다”며 “투표를 위해 집을 나올 필요가 없다. 우리가 직접 투표용지와 투표함을 들고 여러분의 집으로 찾아가겠다”고 홍보하기까지 했다. 이 경우 유권자는 선거관리 직원 바로 앞에서 기표를 하고, 투명한 투표함에 용지를 넣어야 한다. 사실상 익명성 보장이 어려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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