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시장은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재래시장이다. 서울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경동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서울로 들어온 각지의 한약재가 청량리역을 통하면서 1960년대부터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됐다. 현재는 청과부터, 축산물과 수산물 등 없는 게 없다. 제기동에서부터 용두동까지 걸친 이 시장의 면적은 약 23만5500㎡로 서울 전통시장 중 가장 넓다.
이곳은 원래 한약을 사러 나온 노인들이 많아 ‘노인들의 홍대’라고도 불렸다. 상가 건물 대부분이 한옥이거나 낡은 건물이라 시간이 멈춰 서 있는 듯하다. 스타벅스가 복고풍을 살려 경동극장 자리에 ‘경동1960점’을 열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점심 한 끼도 1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고물가 시대, 경동시장이 최근 MZ세대(1980~2000년대생)에 화제가 됐다. 인기 유튜버 등이 방문해 현장의 저렴한 물가를 보여주면서다. 순대 1kg이 단돈 4000원밖에 하지 않는 식이라 ‘10년 전 가격’이라는 말이 나온다. 분위기뿐 아니라 가격까지 복고라는 반응이다.
지난 13일 오후 4시 경동시장을 찾았다. 시장 내부에는 주로 중장년층이 많았지만, 청년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각기 쇼핑한 검은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걷다 멈춰서 군것질하기도 했다. 저렴한 가격으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순댓집과 분식집을 지나면서는 행인들이 “최근에 여기가 젊은 사람들한테 인기가 많다”며 얘기를 나눴다 .
H순댓집에 들어서 가격을 살펴보니 순대가 1kg당 4000원에 판매됐다. 간과 허파는 손바닥보다 큰 한 덩이가 1000원이다. 머리 고기 반 마리는 1만 2000원이다.
이곳 단골이라는 이모(35)씨는 “근처에서 자취를 하는데 순대와 머리 고기를 사서 쟁여놓고 먹는다”면서 “원래 동네 단골이 많은 곳인데 유명해지면서 줄을 서야 해 고생”이라고 말했다.
직접 튀김만두를 만들어 분식집에 납품하고 있다는 수제 튀김만두집은 이미 품절로 영업을 종료한 상태였다. 허탕을 친 손님들은 “아깝다”며 탄식했다. 메뉴판을 보니 만두는 30개에 1만원, 꼬마김밥은 20개에 4500원이었다. 인근 찹쌀도넛 가게에서는 도넛이 10개에 2000원이었다. 찐 옥수수를 파는 곳은 옥수수가 3개 3000원이다.
슬슬 파장에 들어간 청과시장도 목청 좋은 상인들이 열심히 ‘떨이’를 외쳤다. 딸기가 500g에 5000원밖에 하지 않는다. 현재 대형마트 할인가가 9900원이라 반값인 셈이다. 체리도 1근에 1만원, 망고도 4개 1만원이라 수입가격 과일도 저렴했다.
가격이 폭등한 사과는 떨이로 10개에 2만원에 판매됐다. 이날 기준 대형마트·전통시장 등에서 사과 10개당 소매가격은 전날 3만97원이다. 1년 전(2만3063원) 대비 30.5% 올랐다.
저렴한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를 묻자 상인들은 ‘박리다매’가 비법이라고 답했다.
순댓집 사장 A씨는 “엄청 많이 팔면 남는다”면서 “안 남을 것 같아도 남는다”고 대답했다. 과일가게를 하는 박모(55)씨도 “엄청 싸보여도 다 남으니까 파는거다. 오늘 다 안 팔리는 것이 손해”라고 말했다.
고물가에 채소와 과일 가격이 폭등하면서 장을 보려 경동시장을 일부러 찾는 사람들도 늘었다.
김모(24)씨는 “보통 장보기에는 컬리나 쿠팡을 이용했는데 물가가 오르면서 오이나 양배추, 과일같은 식자재 가격이 감당이 안되서 맘먹고 왔다”면서 “고기나 과일같은 식자재가 너무 싸서 일부러 손수레까지 가져왔다”고 말했다.
장을 보다 출출해지면 경동시장은 지천이 맛을 인증받은 노포다. 특히 연탄갈비와 냉면 등이 유명하다. 점포 사이 사이 자리한 술집과 식당안에는 노인들이 많았지만, 대학교 로고가 박힌 야구점퍼를 입은 청년들도 찾기 어렵지 않았다.
경희대생 이모(21)씨는 “안주도 맛있고 가격도 싸서 술마시고 싶을 때 대학생들이 많이 찾아온다”면서 “재래시장 분위기를 싫어하는 편이 아니고 요즘은 오히려 노포를 찾아다니는게 더 유행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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