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시민과 동떨어지고 고루한 ‘여의도 문법’에서 벗어나겠다고 선언했던만큼 그의 화법은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취임 이후 두 달 동안 한동훈 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젊고 신선한 지도자 이미지가 강하고 말하는 스타일이 다변가여서 개인플레이가 능하다는 평이 나왔다.
하지만 메시지를 분석해보면 한계에 직면했다는 지적도 따라붙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타깃으로 한 메시지에 즉각 반응하는 ‘틱톡’ 화법이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상대방 흠결에만 집착하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메시지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부정적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재명’ 9차례 회의에서 65번
실제 지난 2월 13일부터 3월 11일까지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한동훈 위원장은 “이재명 대표”를 무려 65번이나 언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 동안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는 9차례 열렸는데 2월 19일 회의를 제외하고 8차례 회의에서 모두 이재명 대표를 언급했다.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제기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재명 대표가 사적 이해관계에 따라 공천을 하고 있다는 비판, 이재명 대표와 ‘종북세력’을 연계시키는 내용, 이 대표가 “정적인 임종석 후보를 무리하게 찍어내고 있다”고 한 발언 등이다.
한 위원장은 7일 회의에서 “이재명 대표의 막말과 천박한 언행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그런 것에 익숙해진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이다. 정말 해로운 정치”라며 유세 과정에서 나온 이재명 대표의 ‘2찍’ 발언을 비난했다. 출입기자들은 정당 대변인 선에서 논평을 낼만한 이슈에 한 위원장이 뛰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비난성 내용에 메시지가 집중되면서 집권 여당 대표로서 책임있는 메시지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특히 경제 관련 메시지를 회피하면서 정부의 실정을 감추고 있다는 비판이다.
9차례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경제 관련 메시지가 나온 회의는 지난 7일과 11일이다. 7일 한 위원장은 “최근 물가 문제로 인해서 국민들의 걱정이 크다. 정부 여당으로서 더 노력하겠다는 말씀드린다. 우리 여당은 민생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사과 한 개 값이 1만원이라며 천정부지 치솟은 물가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11일 한 위원장은 “1인당 GDP 4만 달러의 안정적인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저희는 반도체 규제 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용인 반도체 부지의 경우 선정된 지 5년 지났지만,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하는 것은 각종 규제에 얽혀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반도체 규제의 원샷 해결을 최우선 정책 과제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도 부정적 평가 시작
최근 언론에서 한동훈 위원장의 화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부쩍 늘었다. 서울신문은 12일 <4대 난제 직면한 한동훈… ‘바람 키울 +α가 없다’ 위기감 커진 與>에서 “취임 초기 탈여의도 화법으로 신선함을 불렀던 것과 달리 전통적인 비난 화법에 적응했다는 평가도 있다. 지지자의 속은 시원하겠지만 총선 공약과 어젠다에 힘이 붙지 않는다는 분석”이라고 보도했다.
시사저널은 “정부와 여당을 향한 야권의 공세에 매일 유효한 반격을 하고 있는 인물은 여권 내 한 위원장뿐”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한 위원장의 ‘말’에도 기존에 그가 강조한 ‘탈(脫)여의도’ 화법은 사라지고, 지지층에게만 소구력이 있는 ‘대야 메시지’만 가득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2대 총선전망 토론회’(폴리뉴스, 상생과통일포럼,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주최)에서 장성철 공감과논쟁정책센터 소장은 한동훈 위원장에 대해 “집권여당의 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정말 큰 그림을 그려서 ‘우리한테 표를 주시면요. 저희 국정 운영 어떻게 해나갈게요’ 이런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재명 나빠요, 민주당 나빠요’ 이런 얘기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 취재 기자들도 한동훈 위원장 취임 초 신선하다는 평을 내렸지만 질의응답 패턴이 반복되면서 평가가 부정적이다. 헤럴드경제는 10일자 <“이재명은요”·“개혁신당은요”…‘비판’엔 ‘질문’으로 답하는 한동훈 화법> 기사에서 “국민의힘 공천의 부족한 점을 말하면 ‘민주당은 그럼 잘 하고 있냐’는 취지로 반문하는 식이다. 민주당 부진에 대한 ‘반사이익’을 얻는 국민의힘 상황 상 불가피하지만, 당을 둘러싼 비판에 한 위원장이 명확히 답을 내놓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 기자들이 “친윤계 인사들이 대거 생존했다”며 공천 혁신에 대한 질문을 하고 문제를 지적하면 “내가 안 나가지 않느냐”며 엉뚱한 말로 답을 회피하는 식의 화법도 도마에 올랐다. 한 위원장이 경동시장 안 스타벅스를 상생모델 맥락으로 설명하면서 “서민이 오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한 기자가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고 질문하자 한 위원장은 대뜸 “기자님 보기시에는 제 말뜻을 이해 못하셨어요? 그때 계셨잖아요. 이해 못 하셨어요?”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익명의 한 기자는 “우린 질문을 하고 구체적인 입장을 들으려고 하는데 한 위원장이 반문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을 때는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대야 메시지를 낼 때와 문제를 지적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할 때 차이를 현장 취재기자들이 체감하고 있다는 것으로, 불리한 이슈에 대한 질문엔 회피성 혹은 논점일탈 화법을 구사하면서 공정 이미지가 깎이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얘기다.
여당 대표 대안 제시 필요
이런 가운데 ‘5·18민주화운동’ 폄훼 논란을 일으킨 도태우 후보에 대해 국민의힘은 사과의 진정성을 따져 공천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는데 논란이 거세지면서 한 위원장이 이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낼지 주목된다. 한 위원장이 찬성한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입장과 도태우 후보 공천 유지 결정이 어떻게 나란히 갈 수 있느냐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고, 특정 지역 표심 눈치를 보고 정치적 약속과 신념을 저버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위원장은 15일 호남을 방문한다.
최요한 시사평론가는 “한동훈 위원장이 여의도에 왔을 때 윤석열 대통령 아바타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정치 어법은 기존과 차이가 나서 ‘한동훈 효과’라는 게 명백히 있었다”라며 “문제는 그 어법이 정치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긴 한데 검사의 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최 평론가는 “검사가 잘 하는 게 집중적으로 캐서 자백을 받는 건데 정치 어법과는 전혀 다르다”며 “정치 지도자는 상대방을 완벽히 제압하지 못했어도 메시지 전달에 성공하면 되는데 한 위원장은 메시지 전달보다는 상대방을 꺾고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해서 이겼다라고 주장하는데 집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평론가는 “이 같은 화법이 반복되면 여론은 피곤해한다. 현장 기자들 사이에서도 컨벤션 효과도 이젠 없다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느냐”라며 “정치 지도자로서 넉넉하게 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어찌됐든 국정운영을 책임지는 여당 대표로서 대안을 제시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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