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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가격 급등에 ‘질’ 보다 ‘양’으로 공급 정책 전환… “제2의 샤인머스캣 되나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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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시장에서 한 시민이 사과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시장에서 한 시민이 사과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사과 물가 안정을 위해 품질보다 생산량을 우선시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변경한다. 물가 안정을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품질 하락으로 이어지면 장기적으로 사과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대한 취재를 종합하면 농식품부가 이달 중 마련해 발표할 ‘과수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에는 사과의 생산 단수를 확대하는 방안이 담긴다.

생산단수는 농지 면적 당 생산되는 양을 말한다. 통상 10아르(a, 1000㎡) 당 생산되는 양을 기준으로 삼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사과 생산 단수는 1598kg으로 전년 대비 27.3% 감소했다. 봄철 냉해와 여름철 집중호우, 가을 우박 및 수확기 탄저병 확산 등이 이어진 여파다.

한훈 농식품부 차관은 지난 4일 업무계획 브리핑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사과 등의) 수급 우려가 커지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적정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는 부분, 생산 단수를 높이는 쪽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내용은 이달 중 발표할 과수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통해 공개하겠다고 했다.

생산 단수를 확대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품종 개량’과 ‘신농법 도입’, ‘착과수 확대’ 등이 거론된다. 기후 변화에 잘 적응하는 품종으로 개량하는 게 최선책이지만, 새 품종을 개발하는 데만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돼 즉각적인 성과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정부는 신농법과 관련해선 ‘다축형 과원’ 등 새로운 과수 재배 방식을 확산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현재 많은 과수 농가가 굵은 원줄기에 난 곁가지에 과일이 맺히는 방식으로 사과를 재배하고 있다. 나무를 키우는 동안에는 손이 덜 가지만, 수확 시에는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등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과일이 맺히는 지점에 따라 채광에 차이가 있어 품질 격차가 벌어지기도 한다.

기존 사과 재배 방식과 다축형 과원 비교. /경북도 제공
기존 사과 재배 방식과 다축형 과원 비교. /경북도 제공

다축형 과원은 이러한 단점을 해소한 과수 재배 방식이다. 뿌리에서 여러 줄기(다축)가 나도록 하고, 미리 설치해 둔 봉이나 선을 따라 나무가 성장하도록 유도를 한다. 처음 나무의 형태를 잡기까지 손이 많이 가지만, 틀이 잡힌 후로는 관리가 수월하다. 전지와 열매솎기는 물론, 수확도 수월해 수확기 인력이 더 적게 소요된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다축형 과원은 새로 심는 묘목에만 적용할 수 있어, 정책 효과를 내기까진 다소 시간이 걸린다.

두 방안이 장기적 대책이라면, 단기 대책으로는 가지 당 맺히는 과실의 수를 늘려 생산 단수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많은 과수농가들은 고품질의 사과를 생산하기 위해 한 가지당 재배하는 과실의 수를 1~2개로 제한하고 있다. 이렇게 착과 수를 제한하면 영양분이 집중돼 크기가 커지고, 맛도 좋아진다.

착과 수를 늘리면 과일의 품질은 이전보다 떨어지지만 생산량 자체는 늘릴 수 있다. 과수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400g대로 사과를 출하하기 위해 가지에 착과하는 양을 제한하고 있다”면서 “착과수를 기존보다 1개 이상 늘리면 300g대로 제품 크기는 작아지겠지만, 생산 단수는 1.2~1.5배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생산 단수 확대 정책을 펴는 것은 한 차관의 말처럼 기후 변화로 적정 생산량을 유지하는 게 힘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데 따른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과수농업의 방향성을 계속 품질로 갈 것인가, 아니면 안정적인 생산으로 갈 것인가 하는 정책적 고민이 필요한 단계”라면서 “생산량 중심으로 과수농가의 농작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7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최근 농축산물 물가와 관련한 긴급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7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최근 농축산물 물가와 관련한 긴급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최근 과일 값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못난이(비정형) 과일’을 찾는 경우가 많아진 것도 이러한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고품질의 프리미엄 상품 생산을 고집하기 보다 외관이 떨어진 상품이라도 적정 물량을 시장에 공급하는 게 소비자 후생에 긍정적이라고 정부가 판단한 것이다.

이 같은 판단의 연장선상에서 농식품부는 현재 과일 물가 대책 중 하나로 못난이 사과와 크기가 작은 소형 딸기를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7일 농축산물 물가 관련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햇과일 수확 전까지 비정형과를 중심으로 적정 물량이 지속적으로 공급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생산량에 초점을 맞춘 과수 농정 정책이 국내 재배 농산물의 품질 하락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자칫 생산량만 중시하다 과잉 공급이 돼 사과 가격이 폭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급 과일로 인기를 끌자 재배 농가가 급증하고, 품질 하락해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은 ‘샤인머스캣’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정부가 구상 중인 방안은 안정적인 생산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핵심”이라며 “생산량을 확보하기 위해 품질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시장에 다양한 등급의 상품을 공급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검역 문제로 막힌 수입 논의도 과학적 검증을 가속화하는 등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를 잡으려고 생산량 확대에만 주력했다가 과잉 공급이 될 경우 가격이 폭락하게 된다. 이는 ‘정부 실패’로 남게 될 것”이라며 “계란처럼 필요할 경우 일정량을 외국에서 수입해 시장에 탄력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비즈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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