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외출 제한 명령을 어겨 재판에 넘겨진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의 발언에 따옴표를 붙여 받아쓰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공적 가치보다 대중의 분노 자극과 클릭 유도에 매몰된 기사들이 ‘2차 가해 확성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검찰은 지난 11일 조두순에 대한 전자장치부착 등에 관한 법률 위반 공판에서 조두순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조두순은 2008년 12월 초등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중상을 입힌 혐의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2020년 출소했다.
언론은 이날 재판 과정과 재판 후에 이어진 조두순의 발언을 자극적으로 인용한 기사를 쏟아냈다. 다음은 주요 신문, 방송, 통신사 등의 언론보도 제목이다.
조선일보 <기자한테 “아줌마” 제지하자 “돈 터치 마이바디”…조두순 재판 뒤 횡설수설>
중앙일보 <조두순 재판뒤 횡설수설 “8살짜리에 그짓, 난 그런 사람 아니다”>
동아일보 <“여덟 살짜리가 뭘 아나”…조두순, 재판뒤 횡설수설>
YTN <“그게 사람 XX냐” “돈 터치 마이보디”…조두순, 재판 뒤 횡설수설>
SBS <[영상] 조두순 피식 웃으며 “그래요, 잘못했어요. 잘못했는데…” 하면서 횡설수설 늘어놓은 말…검찰, 무단 외출에 징역 1년 구형>
뉴시스 <조두순 “아줌마, 돈 터치 마이 바디”…횡설수설 ‘분노’>
뉴스1 <조두순 “여덟살 계집에 그 짓? 사람 새끼냐…난 아니다” 재판 뒤 횡설수설>
자극적 발언 인용이 극대화된 보도들은 전형적인 ‘클릭 유도’ 기사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람들의 분노를 유발해 기사를 눌러보게 하는 목적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반해 경향신문 <조두순, 한밤중 ‘무단 이탈’…검찰 징역 1년 구형>, KBS <검찰, ‘야간외출 제한 명령 위반’ 조두순 징역 1년 구형> 등과 같이 제목에 조두순의 발언을 인용하지 않은 언론사도 있다. 두 기사는 본문에도 재판 후 법정 앞에서 나온 조두순의 발언을 인용하지 않았다. 한겨레는 이번 재판 관련 기사를 쓰지 않았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는 12일 미디어오늘에 “최근 온라인 환경에서 아동 성범죄 관련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한 상황인데 일회적이고 일탈적인 사안이자 흥미거리로만 다뤄지고 있다”며 “대부분 언론은 (조두순이) 자신의 범죄를 부인하고 있다는 식으로 제목을 뽑아 독자들이 분노 때문에 클릭을 하길 바라고 있다. SBS 인터넷 뉴스는 분노유발을 강화하기 위해 ‘웃었다’ 등의 지문도 넣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가해자 개인의 감정 분출에 불과한 발언을 제목과 본문에 그대로 인용한 보도는 공적 가치가 없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수아 부교수는 “법적 처벌을 받은 사람의 말을 언론이 일일이 옮길 필요성이 전혀 없다”며 “해당 내용이 범죄 사실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개인사 혹은 개인 감정의 토로여서 보도의 유익이 있다고 하기 어렵다”고 했다.
소위 유력 일간지로 분류되는 곳들이 조두순의 성범죄 관련 2차 가해성 발언을 그대로 인용하기도 했다. 중앙일보 <조두순 재판뒤 횡설수설 “8살짜리에 그짓, 난 그런 사람 아니다”>, 동아일보 <“여덟 살짜리가 뭘 아나”…조두순, 재판뒤 횡설수설> 등 이를 제목에 올린 경우가 상당수다. 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은 13일 미디어오늘에 “가장 심각한 것은 피해자가 느낄 분노와 공포”라며 “(조두순이) 또다시 2차 가해 발언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걸 언론이 그대로 받아써 다시 퍼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련의 보도는 성폭력·성희롱 보도 관련 준칙을 어긴 채 가해자 발언을 흥미성 소재로 부각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제정한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은 △가해자의 가해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춰 자세히 묘사하면 피해자를 자극적인 성적 행위의 대상자로 연상하도록 만들어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착화시키고 피해자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을 재경험하게 할 수 있다 △가해행위를 미화하거나 모호하게 표현해 가해자의 책임이 가볍게 인식되게 하거나 가해행위의 심각성을 희석하는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가해자의 사생활 보도가 지나쳐 사건의 심각성을 희석하거나 본말이 전도되지 않도록 한다 등의 원칙을 밝히고 있다.
김언경 소장은 “조두순이 뭐만 하면 뉴스에서 화제가 된다는 것 자체가 조두순이 가장 좋아할 만한 일이라는 점에서 이런 보도 자체는 무의미하고 공익적 가치가 없다. 2차 피해를 주고, 피해자가 아닌 대중에게도 불쾌감만 주는 내용의 보도”라고 지적했다.
김수아 부교수는 “이번에 기소된 범죄의 경우 경찰의 관련 제도 보완 방식 등으로 사회적 담론화되는 게 의미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언경 소장도 “마이크를 조두순에게 들이댈 것이 아니라 검찰에 들이댔어야 한다”며 “법적으로 접근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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