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국가인권위원회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이 유엔(UN·국제연합)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에 낼 독립보고서를 심의하는 과정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다 알고 있는 데 자꾸 (이야기를) 꺼내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이냐”는 등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이 “반인권적 망언”이라며 비판했다.
13일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80여개 단체에 따르면 이들 단체는 전날 성명을 통해 “국가인권위원회 (이하 인권위) 상임위원으로서의 역할을 망각하고 있는 두 상임위원을 규탄한다”며 “공식석상에서의 반인권적·반여성적 언행을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지난 11일 인권위는 전원위원회(이하 전원위) 회의를 열어 ‘CEDAW 대한민국 제9차 정부보고서 심의를 위한 독립보고서(안) 채택’ 안건을 심의했다. 그 과정에서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이 반대를 해 독립보고서는 의결되지 못했다. 지난달 27일 전원위에서 안건이 다뤄지지도 못한 채 폐회된 것에 이은 두 번째 무산이다.
이에 따라 해당 안건은 오는 25일 진행되는 전원위에 다시 상정될 예정이다.
단체에 따르면 김·이 상임위원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의 진상규명과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 진실과 정의 원칙에 기반한 배상 촉구’ 및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관련 내용을 독립보고서에 절대 포함할 수 없으며, 이 두 가지 내용을 삭제하지 않으면 독립보고서(안) 안건을 통과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독립보고서의 유엔 제출기한이 오는 4월 중순임을 고려할 때 매우 시급하게 논의되어야 할 안건임에도 불구하고, 의결이 벌써 1달 반째 미뤄지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김 위원의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와 관련한 발언에 대해 강하게 규탄했다.
이들은 “김 위원은 ‘현 국제정세에서 북한, 중국, 러시아로 이어지는 블록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필요한데, 자꾸 일본군성노예제 타령을 해 반일감정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며 “이는 이미 유엔 자유권위원회, 고문방지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등 다수 유엔 조약기구들이 공통적으로 일본정부의 공식사과와 진실·정의에 기반한 해결을 수차례 권고해 왔던 보편적 인권문제”라고 짚었다.
이어 “이 문제가 보편적 여성인권의 문제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수십년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피해생존자분들의 용기 있는 증언과 활동, 전시성폭력 문제를 여성인권의 문제로 의제화하기 위한 활동가들의 헌신과 투쟁이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회의 시간 내 두 위원의 발언 대부분이 여성인권에 반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들 단체는 “이 위원은 정부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추진을 찬성하는 이유로, ‘인구절벽으로 나라가 망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본 정책을 도입해야 하며, 홍콩과 싱가포르 등지에서 일하는 동남아 여성 가사노동자들이 한 달에 70~100 만원 남짓의 낮은 월급을 받고 있지만 불평하지 않고 일하니 괜찮다’는 논리를 펼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추진하려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제도는 저출산의 근본구조는 외면한 채 국적·인종 차별과 노동 착취에 기반한 사적 돌봄에 불과하다는 반인권적 해법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비판해야 하는 책무를 가진 인권위 상임위원이 이 같은 망언을 공식 회의석상에서 늘어놓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이들 단체는 인권위 상임위원으로서의 역할을 망각하고 있는 김·이 위원에게 앞으로 공식석상에서 반인권적·반여성적 언행을 당장 중단하고 독립보고서를 조속히 통과시킬 것을 촉구했다.
같은 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 등 전국 34개의 인권단체가 참여하는 경로이탈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성명서를 내고 김·이 위원에게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공동행동은 “두 상임위원의 만행으로 인권위가 제대로 된 인권기구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지 수개월 째다”며 “이제는 그걸 넘어 인권위 회의석상에서 혐오와 차별 선동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 두 상임위원의 발언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를 방해하는 극우 친일 세력과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극우개신교 등 혐오선동 세력의 주장과 동일한 것”이라며 “혐오와 차별에 맞서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제도와 관행을 개선해야 할 인권위원이 가해자와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짚었다.
CEDAW 보고서를 포함해 인권현안이 산적해 있고 구제를 바라는 피해자들이 있음에도, 오히려 인권위가 절차를 지연시키고 피해를 확대하는 두 상임위원이 사퇴해야 한다는 것이 공동행동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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